[덕수궁][덕수궁을 다녀와서]덕수궁을 다녀와서(동상, 정관헌과 유현문, 함녕전, 석어당, 원구단, 구 러시아공사관, 정동교회, 경희궁지, 서울성공회성당, 증명전, 경교장, 덕수궁을 다녀와서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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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수궁][덕수궁을 다녀와서]덕수궁을 다녀와서(동상, 정관헌과 유현문, 함녕전, 석어당, 원구단, 구 러시아공사관, 정동교회, 경희궁지, 서울성공회성당, 증명전, 경교장, 덕수궁을 다녀와서 느낀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대한문(大韓門)

2. 어구와 돌다리

3. 하마비

4. 연못과 매점

5. 중화문(中和門)

6. 중화전(中和殿)

7. 광명문(光明門)

8. 포덕문(布德門)

9. 석조전 (石造殿) 『궁중유물전시관』

10. 서관 『덕수궁미술관』

11. 분수대

12. 준명당(浚明堂)

13. 즉조당(卽祚堂)

14. 세종대왕 동상

15. 덕홍전(德弘殿)

16. 정관헌(靜觀軒)과 유현문(有賢問)

17. 함녕전(咸寧殿)

18. 석어당(昔御堂)

19. 원구단

20. 구 러시아공사관

21. 정동교회

22. 경희궁지

23. 서울성공회성당

24. 증명전

25. 경교장

26. 덕수궁을 다녀와서 느낀점

본문내용

우측 내벽과 10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붙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문의 우측외벽을 보니 매표소의 높이로부터 바닥까지의 아래 부분의 목재들이 바깥족으로 눈에 띄게 휘어져 나와있었다. 반대편의 같은 부분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에 매표소에 의해서 차게된 습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 의의를 알 수 없는 싸구려 수영장 같은 연못(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의) 속의 거북상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자라들을 구경하다가...흡사 공원같은 잔디밭과 그옆의 전통건물형태의 화장실(가장먼저 보이는 건물이 다름 아닌 화장실이였다.)과 매점을 지나 세종대왕동상을 지나니, 그제서야 고궁다운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바로 중화문(中和門)과 중화전(中和殿)이었다.중화문은 중화전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전각과 함께 소실되었던 것을 190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중화전앞 계단을 향하니 대한문 앞에서 보았던 ‘서수’들이 보였다. 그리고 계단 복판의 문양은 중화문 앞의 것보다는 훨씬 선명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으로서 국왕의 즉위식, 공식적인 대례(大禮)를 거행했던 곳이다. 중화전 내부에는 어좌가 있고, 그 뒤에는 오봉산일월도 병풍이 놓여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이룡희주(二龍?珠)상이 조각되어 있다. 색바랜 문양과 기둥의 글귀들이 고색창연함을 더한다.
중화전의 좌측으로는 덕홍전(德弘殿)과 함녕전(咸寧殿)이 있다. 덕홍전은 고종황제가 내빈을 접견할 때 쓰던 건물이다. 나무로 조각된 황금색 봉황기둥과 이화장문양이 보이는데, 그 위쪽의 기둥은 검게 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썩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덕홍전은 화재로 지은 가장 최근(1911년)에 지은 전각이다. 함녕전은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덕홍전과 마찬가지로 서양식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데, 덕홍전의 것과는 달리 가장 가운데부분의 덮게가 없어져서 흉한 전선이 다 보인다. 또, 뒤쪽의 문들은 마지막으로 열었던 것이 언제인지 경첩이 녹이슬어 암수가 하나로 달라붙어 다신 열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쪽마루 밑쪽의 나무들은 많건 적건 곰팡이가 슬었있고, 그 마루 밑에서 용도를 알수 없는 DONG SUNG 2라는 완전히 녹이슨 열쇠가 쇠줄로 쪽마루 밑에 고정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옆의 나무기둥에 박혀있는 순찰함이였던듯한 상자의 흔적으로 보아 과거의 누군가가 편의상 그곳에 둔 것 같다.
그 뒤쪽으로는 즉조당(卽?堂), 석어당(昔御堂)이 있는데 즉조당은 화재로 1904년 준건한 건물인데 그안에서 온돌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바깥에서는 여간해선 보이지 않는 장지문의 한지들은 압정으로 대충 박힌체, 곰팡이가 슬었거나, 너덜너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석어당은 국내 유일의 2층전각이다. 지붕 아래 쪽에 자세히보면 보기 흉한 대못이 박혀 있고, 경첩도 녹이 슬어, 열리지 않을듯하고, 각종 쇠장식들도 썩어 문들어 지고 있다.
이 석어당 뒤쪽으로 가면, 화장실과 자판기가 있고, 고궁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닐 천막이 쳐져 있는데, 알고 보니 탈의실이었다. 이는 주말등을 이용 결혼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중화전 옆에서 전통결혼복장으로 사진찍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았다. 그길을 죽따라 왼쪽으로 가면, 산책로와 그에 접한 벤치들을 볼 수가 있는데, 일요일이여선지 소풍나온 가족들이나, 연인들이 꽤나 많았다. 그곳을 지나 중화전의 왼쪽 뒷켠에는 석조전(石造殿)이라는 서양식 건물이 눈에 띄는데, 지금은 궁중유물 전시관으로서 쓰이고 있었다. 현재는 그곳에서 東江 權五昌화백의 조선시대 궁중복식 회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안에는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다. 무선안내 헤드폰을 쓴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안들려서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듯, 주의를 주기는커녕 더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유리로 칸막이쳐진 유물들은 어떤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로 북적대는 실내는 너무나도 더웠다. 냉방시설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듯 했다. 그 석조전을 한 바퀴 도는데 탈의실이 또다시 눈에 띄었다. 건물밑의 들어간곳에 임시 주름문을 달아 만들었는데, 그곳거울에는 오래된 진로의 술선전 상표가 붙어있었고, 그 뒤쪽의 벽에는 신랑, 신부들이 새 옷에서 떼어내서 붙인듯한 (디자인으로 보면 70년대에서 최근의 것까지인 상표)상표들이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린곳이 정관헌(靜觀軒)이다.
정관헌은 석조전 보다 10여년 전에 건립된 건물로서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이건물은 서양식 구조에 전통의 문양이 섞여 있는 등 전통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의 혼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덕수궁을 한 바퀴 돌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건물들의 역사가 짧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20세기 초엽에 화재로 재건된 것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6,25등을 거쳐서인지는 몰라도 관리상태가 너무나도 허술하다는 것도 눈에 띄었다. 정관헌을 비롯해서 몇몇 곳에서는 보수작업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는데, 상상과는 달리 전혀 전문지식이 있을 것 같지 않는 일용직인 듯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관헌의 천장에 달린 최신식 샹들리에의 경우도 그렇고 동네 가정집 벽칠하듯 이루어지는 도색작업도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석조전이나 잔디밭등을 제외한 중화문, 중화전, 덕홍전, 함녕전, 즉조당, 석어당등의 고즈넉함은 오랜만에 맘의 여유를 되찾게 해주었다.
오후 두시쯤 대한문을 나서는데 전통의 근무교대식이 치루어졌다. 몇몇 행인과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행사였는데, 날이 더워선지 다들 기운이 없어보였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우리의 문화재들을 둘러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5대궁의 현실이 이럴진데,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않는 곳의 문화재들은 그 관리 상태가 어떨까 걱정이 사뭇 되었다. 이번 방학때는 여행을 다닐 계획인데, 그곳의 문화재들도 보다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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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7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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