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와 라깡의 욕망과 무의식, 그리고 주체 형성에 대해서 살펴본 후 영화를 통해 그 이론을 접목시켜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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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본론
1. 프로이드와 라깡의 욕망
1)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2) 라깡과 그의 언어론
2. 프로이드와 라깡으로 본 영화
1) 영화 <히 러브스 미(원작명: He Loves Me, He Loves Me Not)>
2) 영화 <지구를 지켜라>
3) 영화 <거미숲>

Ⅲ. 결론

본문내용

이 때 타자는 상징계와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의미하다. 상징기능의 역량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은유의 형성 과정과 타자의 욕망이 되고자 하는 환원되지 않는 욕망을 통해 억압의 주위에 형성된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은 절대적 타자에 대한 욕망의 억압에서 태어난다. 자크 라깡, 여인석 역,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 (서울: 민음사, 1995), p.82.
따라서 억압 속에 가둬진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의 의식 저편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민수인이라는 사진관 여자를 통해서 듣는다. 마치 꿈처럼. 겉모습은 다른 사람인데 안에 있는 모습이나 목소리는 또 다른 사람인 거다. 즉, 어린 시절의 민수인을 불러내서 아내의 모습으로 변형시킨 거다. 아내에 대한 기억도 그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만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기억을 낳은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가지 기억처럼 기억 그 자체는 불완전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왜곡해서 기억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관성 있는 실재로서의 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자아와 적응과 방어기전을 배열하는 자아의 능력을 강조했지만 라캉은 일관성 있는 실재로서의 자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아는 허위와 왜곡된 상호 투사의 혼합물이므로 ‘나’와 ‘타자’는 ‘자기’의 무의식의 언어 속에 풀 길 없이 뒤엉켜 있다. 여인석 역, 위의 책, p.14
- 영화는 꿈이다.
거미숲은 실제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실제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다. <꽃섬>에서 환상적인 이미지를 영화 속에 간헐적으로 삽입한 송일곤 감독은 <거미숲>에서 아예 환상의 공간 자체를 창조해냈다. 그는 미스터리 스릴러 속으로 관객을 부른 뒤 "고통스럽고 심난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환상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로 인도한다. 꿈과 무의식이 답을 알 수 없는 퍼즐처럼 자리를 틀고 있는 거미숲에서 그는 관객에게 한 뭉치의 꿈을 던진다.
그런 환상과 판타지가 영화가 줄 수 있는 큰 매력인 것 같다. 영화가 매력적인 장르인 건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하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어떤 특별한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여 주고 들려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외에 또 다른 세계를 제공한다. 그 세계는 우리가 보고 싶은 한 번 쯤은 꿈꾸는 세계이다. 따라서 영화적인 것은 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있는 어떤 이미지에 있다.
우리나라는 환상적 리얼리즘에 대한 계보가 짧다. 당시에는 사회를 고발하는 것에 더 치중하고 그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믿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 역시 대중들에게는 낯 선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현실 고발, 현실에 대한 반성에만 그쳐서는 늘 그저 그런 영화, 똑같은 영화만 재생산 되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영화가 또 다른 세계를 간접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환상체험 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이러한 정신세계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사람들의 더 많은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Ⅲ. 결론
라캉의 상상계는 상징계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아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 대한 욕망으로 남아 지속되고 있으며, 상징계에서 남근처럼 보이는 결핍의 대상은 사실은 죽음이고 그것을 이루는 순간 바로 실재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조영환, 위의 논문. pp. 48-50.
세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다소 과장되고 환상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현실에 사는 우리 인간 모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언뜻 생각하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나’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지극히 상대적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주체 의식은 데카르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가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서 통일된 자아라는 데카르트적 인식은 프로이드와 라깡에 의해 전면 부정된다. 주체란 완전한 통일체가 아니라 무의식과 의식으로 분열된 주체이다. 더구나 라깡은 실질적인 존재라고 간주해왔던 주체가 구체적인 실체물이 아닌 언어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그것도 ‘나’가 아닌 타자의 담론에 의해서 주체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즉 타자의 언어의 존립 없이는 ‘나’의 존립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와 의미가 항상 ‘나’의 밖에 존재하는 상대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서인숙, 위의 논문, p.124.
이와 같은 라깡의 무의식, 언어, 주체 형성의 상호 연관성의 메커니즘은 영화 관람에서 더욱 강화되고 영화 담론에 의해 관객은 주체로 구성된다. 라깡이 말한 아이가 보았던 거울과 스크린이 유사하기 때문이다.(선생님의 강의록 참고)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 욕망을 해소하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확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에 대한 부재이다. 물론 이런 정신세계를 다루는 영화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 노력의 발을 내딛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존재가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위치에서 성립되는 거라면, 이 문제 역시 영화를 관람하는 각 주체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영화는 언제나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질문을 던져 생각하게 한다.
[참고문헌]
김지훈. 「판타지와 대항 - 기억으로서의 브리콜라주: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양가적 상상력」.『문학과 사회』. 2003년 8월 16일 수록.
자크 라깡. 여인석 역.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 서울: 민음사. 1995.
로버트 랩슬리 마이클 웨스틀레이크 지음, 이영재 이소영 옮김. 『현대 영화이론의 이해』. 서울: 시각과 언어.1999.
마르트 로베르. 이재형 역. [정신분석 혁명: 프로이드의 삶과 저작]. 서울:문예출판사. 2000.
서인숙. "영화와 정신분석학적 기호학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1997.
마단 시럽. 김해수 옮김.『알기 쉬운 자끄 라깡』.서울: 백의. 1994.
조영환. "상징적 질서의 거부-영화 『레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읽기-".[STEM Journal] 제2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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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03
  • 저작시기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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