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릉 채만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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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가 백릉 채만식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채만식 생애

Ⅲ. 1930년대 당시의 시대 상황

Ⅳ. ‘풍자’란 무엇인가?

Ⅴ. 채만식에 있어서의 풍자성

Ⅵ. 채만식의 작품과 풍자 연관짓기(대표작품들 분석)

Ⅲ. 결 론

본문내용

를 거치고 해방이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토지 소유와 분배의 문제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전형적인 농민의 한 사람이다. 한생원은 해방이 되어도 전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나라’의 존재라는 것이 자신의 편한 삶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권력이라는 무소불위의 힘을 업고 자신을 못살게 구는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한생원이 금세 해방을 환호작약하게 된 것은, 일본인 소유의 토지를 원주인인 조선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는 소식을 듣고부터였다. 그는 해방 전에 일본인 길천(吉川)에게 팔았던 땅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금세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해방 직후의 그 혼란한 와중에 이른바‘적산 불하’과정의 갖은 음모와 비리 속에서 한생원이 길천에게 판 땅은 다시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나라가 이민족에게 국권을 읽어버리기 훨씬 전부터‘나라라고 하는 것은 내 나라였건 남의 나라였건 있었댔자 백성에게 고통이나 주자는 것이지, 유익하고 고마울 것은 조금도 없는 물건’이라고 철저히 믿어 왔던 한생원으로서는, 다시 이런 낭패를 당하자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더욱 굳히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한생원이 소설의 마지막에 내뱉는 독설은 국가 제도와 민중의 관계를 그 근본부터 문제 삼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 없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 길, 삼십육 년두 나라 없이 살아왔을려드냐.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 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그래, 백성이 차지할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이야?”
그러고는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독립 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
그러나 채만식 문학의 가장 이채로운 소설 미학을 형성하는 이‘풍자’는 섬세하고 주의 깊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의 풍자가, 다시 말하면 그가 공격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단순하지 않으며, 아주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이다. 바로 위에서 살펴본 <논 이야기>만 하더라도, 실상 채만식의 붓끝은 한생원을 비분강개토록 만든 적산 불하의 부패와 혼란한 사회 현실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해방이나 새로운 국가 건설과 같은 공동체 전체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을 오직 개인의 이해관계로만 파악하려는 농민의 무지몽매함도 아울러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이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로 인식하게 된 연유도 그 역사적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한말 지방 수령들의 가렴주구를 혹독하게 겪은 뒤에 생겨난 반봉건적 성향의 일면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치숙>의 ‘오촌당숙’은 이상주의자이며 생활에서는 무능력자이며, 조강지처를 버리고 신여성 애인을 가진 것이며, 여자의 고생은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조카의 비난을 허투루 피해 나갈 수 없는 부정성을 역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풍자는 복학접이며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현실을 이념이나 윤리에 의해 도식적으로 나누지 않으려는 그의 현실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부정성을 극복할 만한 적극적 대안의 모색보다는 부정성 자체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극복의 전망을 내면화시키는 그의 창작 방법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Ⅲ. 결 론
채만식은 그 누구보다도 능란하게 풍자를 잘 활용한 작가였다. 식민지 교육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 <레디메이드 人生>(1934)을 시작으로, 그의 풍자는 부정적인 인물, 무식꾼, 때로는 지식인의 고뇌하는 내면을 회화적으로 드러내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한다. 자녀 교육을 둘러싸고 지식인 부부가 다투는 <명일(明日)>(1936), 식민지 시대를‘태평천하’로 여기는 매판 자본가의 좌절을 희화화시킨 <태평천하춘>(1938,후에<태평천하>로 제목이 바뀜), 무식꾼인 좌가 사회주의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지식인 삼촌을 조롱하는 <치숙>(1938)에서 한껏 고조되다가 아내의 담론으로 투과시켜 사회적 무기력을 조롱한 <소망(少妄)> (1938)에서 침체된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부정적인 현실에 풍자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그는 외세에 결탁한 모리배의 전락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미스터 방>, 해방의 참된 의의를 떠올리며 이기적인 농군의 심리를 그린 「논 이야기」등을 발표한다. 채만식 소설의 이러한 지향은 “허위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위한 타락된 추구의 이야기”라는 골드만의 근대 소설에 대한 정의를 떠올려 준다.
그러나 채만식의 문학이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 현실에서 노린 풍자와 냉소를 통한 현실 비판은 단순히 기법의 차원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그의 문학에서 풍자란 일제 파시즘의 마각과 함께 준엄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감행된 우회 진술로서 “비판 정신의 간접 화법”이자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한 극점’에 올려놓는 양식적 특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채만식은 문학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이 인간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대한 감정적인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또한 1930년대에 시대적,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다른 작가들이 정치적 패배를 문학 작품으로 보상하려는데 반하여 채만식은 시대적 현실을 가장 진실하게 고민한 작가로서 작품의 기본을 건강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그런 채만식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작품에 흡수되어 풍자정신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상으로 채만식 문학의 강한 풍자성을 나타내는 작품을 중심으로 시대적 상황과 현실인식을 연관시켜 살펴보면서, 작품마다 나타난 채만식의 건강한 정신을 우리들은 배우고 느끼면서 변함없이 지켜 나가야 한다고 보는 바이다. 또한,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에 채만식이라는 작가가 존재하고 있음이 기쁠 따름이며, 근대 소설사의 이해를 위해선 반드시 알고 지나가야할 작가임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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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24
  • 저작시기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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