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마르크스와 인간의 본질
Ⅲ. 인간소외와 이데올로기
Ⅳ. 자본주의와 인간소외
Ⅴ. 유물론적 역사관
1. 유물론적 역사 이해의 전제들
2. 유물론적 역사관의 특징 및 의의
Ⅵ.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의 문제점
1. 과학주의 또는 실증주의의 문제점
2. 역사주의의 문제점
3. 경제 결정론의 문제점
Ⅶ. 마르크스와 자본주의
Ⅷ. 마르크스 경제학
Ⅸ. 마르크스 생산양식과 경제결정론
1. 토대로서의 생산양식
2. 이데올로기 비판과 경제결정론
Ⅹ. 나가며
Ⅱ. 마르크스와 인간의 본질
Ⅲ. 인간소외와 이데올로기
Ⅳ. 자본주의와 인간소외
Ⅴ. 유물론적 역사관
1. 유물론적 역사 이해의 전제들
2. 유물론적 역사관의 특징 및 의의
Ⅵ.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의 문제점
1. 과학주의 또는 실증주의의 문제점
2. 역사주의의 문제점
3. 경제 결정론의 문제점
Ⅶ. 마르크스와 자본주의
Ⅷ. 마르크스 경제학
Ⅸ. 마르크스 생산양식과 경제결정론
1. 토대로서의 생산양식
2. 이데올로기 비판과 경제결정론
Ⅹ. 나가며
본문내용
사회적 상황’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정치적 실천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 속에 배치된 이론적 실천이다. 따라서 그의 결정론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역사 속의 개인의 자유의지, 인간의 실천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특수한 사회구성체의 특수한 정세를 배경으로 하는 계급투쟁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Ⅹ. 나가며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의 상호 개입이 가져온 결과는 심대한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정치 프로젝트에 중요한 수정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비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으로써, 단순히 소유관계의 집합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자본주의 또한 사회-자연과의 특수하며 역사적으로 특유한 신진대사이다. 생태학은 이러한 사회/환경적 상호작용의 양식들이 한정적인 물질적 내용 - 일상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물질의 뜻 뿐 아니라 생태학적,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물리적, 감성적, 심리적 물질 상호작용 - 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따라서 생태학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물론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 - ‘역사유물론은 인간 종의 생태학’ 등과 같은(Benton, 1989, p.54) - 를 요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 비판이 보여주듯, 역사유물론에 대한 이러한 생태적 해석에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해 - 재생산양식이기도 한 자본주의 - 를 필요로 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서 갖는 생태학의 중요성 또한 심대한 것이다. 생태적 시각이 요청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해방적 정치 프로젝트를 완전히 재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생태마르크스주의는 해방을 우리의 생태적,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과 체화성(embodiedness)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그 속에서의 자유로 새롭게 개념화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연(내적, 외적)을 자원(원료에서 유전정보에 이르기까지)의 창고 내지는 쓰레기통으로 보는 순수히 도구적인 시각의 측면에서 그에 대해 가하는 생태적, 도덕적 비판에 대해, 생태적으로 업데이트된 마르크스주의는 녹색의 도덕적 입장이 갖는 핵심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몇몇 근본적인 녹색 도덕적 비판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도덕 문제를 ‘자연의 인간화’가 아니라 ‘자연의 자본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녹색주의자들은 생태 위기의 책임이 자연의 인간화 프로젝트, ‘산업주의’, 근대성의 ‘자연의 탈마법화’ - 이 모두는 인간중심적인 도덕적 전망으로 뒷받침되는 것으로 주장된다 - 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휴머니즘의 오만’(Ehrenfeld, 1978)을 교정하기 위해 ‘생태중심적’ 즉 비인간중심적인 도덕적 입장을 옹호한다. 이러한 생태중심적 정치의 목적은 ‘자연 해방’(Eckersley, 1992)이다. 반면에 생태마르크스주의자들은 도덕문제가 휴머니즘에 대한 특수한 자본주의적 해석과 시행 속에 자리하는 것으로 본다. 급진적 녹색 이론과는 달리, 생태마르크스주의는 인간중심적 입장을 굳건히 견지하며, ‘휴머니즘’ 보다는 ‘오만함’을 해결해야 할 주된 문제로 본다. 인간과 인간 해방이 자연을 적대시하기보다는 그 속에 있다고 휴머니즘을 새롭게 개념화하는 것은 생태중심주의의 기본적인 윤리적 취지와 양립 가능하다. 인간이 비인간 세계와의 분리보다는 그 속에서의 차별화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일부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근거한 인간 해방의 새로운 전망은, 비인간 세계의 번성이라는 실천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Barry, 1995). 동시에, 최근의 생태사회주의 논자들이 보여주듯이, 수정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도덕적 관심을 비인간 세계에로 확장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고 실천적인 규범틀을 제공해주고 있다(Benton, 1993a; Hayward, 1995; O\'Neil, 1993; Kovel, 1988).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듯이, 해방은 자연 지배에 근거한 물질적 풍요의 가정을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의 인간화’라는 마르크스의 목표는 생태적 시각에서 보면 자연 지배, 내지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에서의 이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인간으로만 한정시키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생태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가 되고 있는 접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녹색 비판을 자연세계에 대한 정당화될 수 없는 남용, 인간의 필요를 전지구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없는 무능력, 미래세대에 대한 태생적 편견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 속의 생태 위기에 대한 모호한 경제적 시각을 대중에게 자본주의의 위기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녹색운동, 평화 및 반핵운동 같은 신사회운동이 사회주의자 및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해나가야 할 정치-규범적 과업이다.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와 환경과의 신진대사가 파괴되면서 생태적,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고 있는 지점에 다다르고 있다. 인간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더 많은 부분들을 자본화하는데, 자본주의는 환경이 자원투입물 또는 폐기물 처리장이 아니라 개인적, 집단적으로 이들의 정체성과 생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저항과 충돌하고 있다. 이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본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개인들의 생활세계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 위기가 언제 자본주의 속의 위기가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위기가 될 것인가를 숙고하고 알아내기 위해서는 과학과 윤리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두 시각이 정치적, 국제적으로 한데 모일 때만이 탈자본주의적인,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전지구적 질서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업데이트된 마르크스주의의 첫 발걸음을 위해서는 ‘진보’와 ‘해방’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가 요청된다. 잠재적으로 세계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는 이 때, (‘전세계의 노동자들’ 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들은 자신의 쇠사슬 이상으로 잃어버려야 할 것이 많다.
Ⅹ. 나가며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의 상호 개입이 가져온 결과는 심대한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정치 프로젝트에 중요한 수정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비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으로써, 단순히 소유관계의 집합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자본주의 또한 사회-자연과의 특수하며 역사적으로 특유한 신진대사이다. 생태학은 이러한 사회/환경적 상호작용의 양식들이 한정적인 물질적 내용 - 일상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물질의 뜻 뿐 아니라 생태학적,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물리적, 감성적, 심리적 물질 상호작용 - 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따라서 생태학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물론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 - ‘역사유물론은 인간 종의 생태학’ 등과 같은(Benton, 1989, p.54) - 를 요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 비판이 보여주듯, 역사유물론에 대한 이러한 생태적 해석에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해 - 재생산양식이기도 한 자본주의 - 를 필요로 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서 갖는 생태학의 중요성 또한 심대한 것이다. 생태적 시각이 요청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해방적 정치 프로젝트를 완전히 재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생태마르크스주의는 해방을 우리의 생태적,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과 체화성(embodiedness)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그 속에서의 자유로 새롭게 개념화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연(내적, 외적)을 자원(원료에서 유전정보에 이르기까지)의 창고 내지는 쓰레기통으로 보는 순수히 도구적인 시각의 측면에서 그에 대해 가하는 생태적, 도덕적 비판에 대해, 생태적으로 업데이트된 마르크스주의는 녹색의 도덕적 입장이 갖는 핵심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몇몇 근본적인 녹색 도덕적 비판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도덕 문제를 ‘자연의 인간화’가 아니라 ‘자연의 자본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녹색주의자들은 생태 위기의 책임이 자연의 인간화 프로젝트, ‘산업주의’, 근대성의 ‘자연의 탈마법화’ - 이 모두는 인간중심적인 도덕적 전망으로 뒷받침되는 것으로 주장된다 - 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휴머니즘의 오만’(Ehrenfeld, 1978)을 교정하기 위해 ‘생태중심적’ 즉 비인간중심적인 도덕적 입장을 옹호한다. 이러한 생태중심적 정치의 목적은 ‘자연 해방’(Eckersley, 1992)이다. 반면에 생태마르크스주의자들은 도덕문제가 휴머니즘에 대한 특수한 자본주의적 해석과 시행 속에 자리하는 것으로 본다. 급진적 녹색 이론과는 달리, 생태마르크스주의는 인간중심적 입장을 굳건히 견지하며, ‘휴머니즘’ 보다는 ‘오만함’을 해결해야 할 주된 문제로 본다. 인간과 인간 해방이 자연을 적대시하기보다는 그 속에 있다고 휴머니즘을 새롭게 개념화하는 것은 생태중심주의의 기본적인 윤리적 취지와 양립 가능하다. 인간이 비인간 세계와의 분리보다는 그 속에서의 차별화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일부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근거한 인간 해방의 새로운 전망은, 비인간 세계의 번성이라는 실천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Barry, 1995). 동시에, 최근의 생태사회주의 논자들이 보여주듯이, 수정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도덕적 관심을 비인간 세계에로 확장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고 실천적인 규범틀을 제공해주고 있다(Benton, 1993a; Hayward, 1995; O\'Neil, 1993; Kovel, 1988).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듯이, 해방은 자연 지배에 근거한 물질적 풍요의 가정을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의 인간화’라는 마르크스의 목표는 생태적 시각에서 보면 자연 지배, 내지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에서의 이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인간으로만 한정시키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생태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가 되고 있는 접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녹색 비판을 자연세계에 대한 정당화될 수 없는 남용, 인간의 필요를 전지구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없는 무능력, 미래세대에 대한 태생적 편견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 속의 생태 위기에 대한 모호한 경제적 시각을 대중에게 자본주의의 위기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녹색운동, 평화 및 반핵운동 같은 신사회운동이 사회주의자 및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해나가야 할 정치-규범적 과업이다.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와 환경과의 신진대사가 파괴되면서 생태적,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고 있는 지점에 다다르고 있다. 인간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더 많은 부분들을 자본화하는데, 자본주의는 환경이 자원투입물 또는 폐기물 처리장이 아니라 개인적, 집단적으로 이들의 정체성과 생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저항과 충돌하고 있다. 이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본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개인들의 생활세계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 위기가 언제 자본주의 속의 위기가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위기가 될 것인가를 숙고하고 알아내기 위해서는 과학과 윤리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두 시각이 정치적, 국제적으로 한데 모일 때만이 탈자본주의적인,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전지구적 질서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업데이트된 마르크스주의의 첫 발걸음을 위해서는 ‘진보’와 ‘해방’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가 요청된다. 잠재적으로 세계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는 이 때, (‘전세계의 노동자들’ 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들은 자신의 쇠사슬 이상으로 잃어버려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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