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폭력과 테러가 만연한 사회 - 우리는 끊임없이 '억압'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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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학] 폭력과 테러가 만연한 사회 - 우리는 끊임없이 '억압' 받고 있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여는 말

Ⅱ. 중심 말
1. “폭력”과 “테러”의 의미규정
2. “폭력”이 가지는 의미 찾기
3. “테러”가 가지는 의미 찾기

Ⅲ. 닫는 말

본문내용

한 사건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아부다비를 출발해 방콕을 거쳐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버마 랑군의 지상통제소와 교신후 항로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항공기의 실종소식을 접한 한국 정부는 기상이변이나 기체이상 보고가 없었던점 등의 상황분석을 토대로 북한에 의한 테러리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버마와 태국 등 관계국가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수색작업을 벌인 결과 1987년 12월 3일 안다만 해에서 항공기 잔해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수사당국은 즉시 탑승자 조사를 하였고, 특히 아부다비에서 내린 15명의 승객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일본인 남.여 여행객인 신니치 하치아와 마유미 하치아를 주목하고, 레바논 정부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레바논 정부는 출국을 기도하던 이들을 공항에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체포과정 중에 이들은 극약으로 자살을 기도하였고, 이중 신니치는 사망하고 마유미는 한국에 인도되었다. 한국에 인도된 마유미(김현희)는 결국 모든것을 자백하게 되었다.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사건은 김정일이 직접 지시한 사건으로, 남한내의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여 1987년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대통령선거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게임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승객과 승무원 115명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중동건설현장의 무고한 근로자들이였던 이 사건은 북한의 공권력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오랜기간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국가 테러리즘에 의한 중대한 범죄행위였다. 이 사건은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서 북한은 어떠한 반 인륜적. 반민족적 테러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민간인 납치및 어선납북>
북한은 한국인과 외국인을 납치하여 이들을 테러리즘 수출과 공산주의 혁명 수출의 전위대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의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의 납치, 음악가인 윤정희.백건우씨 부부 납치미수,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일본여인의 납치, 그밖에 세계 각처에서 간첩교육에 필요한 외국인을 다수 납치하여 억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을 탈출한 최은희씨 등의 증언에 의해서 입증된바 있다. 북한은 또한 1958년 이후 1990년 초까지 백령도 공해상에서 어선 수원 32호 납치와 해왕호 납치등을 포함하여 거의 매년 동해와 서해에서 어로중인 한국어선과 선원을 납치하여 인질로 억류하거나 철저한 쇠뇌교육과 협박을 통해 간첩임무를 부여해 남파하기도 했다.
<주요 시설물에 대한 사보타지>
각종 폭발물을 주요 시설물에 은밀하게 장치하고 이를 폭파하여 인명을 살상하거나 장비및 건물을 파괴시키는 행위는 고전적인 테러리즘의 공격형태이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각종 폭팔물도 급격한 발전을 보여왔을 뿐만 아니라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폭발물을 이용한 주요 시설물에 대한 사보타지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타 지하주차장 폭파사건은 이러한 유형의 테러리즘 공격의 심각성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테러리스트 단체들은 주요 시설물에 대한 사보타지를 통해 특정국가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거나 공포감을 조성하여 국민들의 대정부 불신감 유도를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북한은 1967년 9월 5일에 경원선 열차폭파 사건을 일으킨 바 있고, 4일후에 서울 문산간 철도폭파 사건을 기도하기도 했다. 북한의 남한내 주요시설에 대한 공격은 김정일이 북한 내부에서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한 1980년대 들어 수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났고 심각성 또한 높아졌다.
1983년의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1986년의 김포공항 폭파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특히 1983년 7월 29일 북한 공작원들이 선박을 이용하여 감행한 월성지역 침투기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목적은 다름 아닌 월성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사보타지였다. 만약에 북한의 기습공격이 성공했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월성침투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은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공격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고도산업사회에서는 대형공업단지 및 핵발전소 등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목표선정이 용이하게 되어 이들 시설물에 대한 테러공격 가능성은 매우 높은 실정이며, 북한이 남한내부의 주요 시설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이상으로 우리는 테러의 변화와 함께 한국의 특수상황 속에서 북한의 테러리즘도 살펴보았다. 테러 역시 그 뿌리가 폭력만큼이나 깊다. 다수에 대한 폭력적 행위의 한 범주로서의 폭력은 분명 지양해야 할 대상이지만, 약국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유혹적이다. 911테러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을 테러 및 전쟁 보도와 접한다. 덕분에 테러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으며, 생활 속에서 쉽게 “테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의 테러 보도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게임이나 오락쯤으로 접근하여 테러의 전략적 요소 및 전망에만 치중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테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테러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반성 해 볼 필요가 있겠다.
Ⅲ. 닫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폭력과 테러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았고, 그를 통해서 각기 다른 사회적 구조 속에서 폭력과 테러가 어떤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알아보았다. 폭력과 테러 의미 변화의 배경에는 제도나 이념의 변화도 있었고,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오늘날 폭력과 테러가 훨씬 우리와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폭력과 테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많이 무뎌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개입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에 신경 쓸 우리는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폭력과 테러에 무뎌져 가는 우리를 돌아보고 반성하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억압”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견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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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04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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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1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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