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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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체주의란?

북한의 체제는 전체주의 체제인가?

유일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

유일당으로서의 조선로동당

사회통제장치로서의 경찰조직과 정치범 수용소

북한 대중매체의 당적 장악

체제유지장치로서의 조선인민군

본문내용

있다. 통일교육원, 앞의 글, p.210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이것은 정치기구!
인민군 내에는 군의 당적 장악을 위해 로동당 조직과 로동당 외곽단체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조직으로 이루어진 정치기구가 조직되어 있으며, 이들 기구를 통해 당이 군을 통제하고 정치사업을 전개한다. 그 구성을 잘 살펴보면 중앙에 인민군대 내의 전체 당조직을 총괄하는 ‘조선인민군 당위원회’가 있고, 대대급 이상에는 당위원회가, 중대소대 단위에는 당세포와 당분조가 구성되는데 이들 기구는 군사지휘관과 정치간부 등이 참여하여 군대 사상교육 등 정치사업과 관련한 주요 정책 및 집행방향 등을 토의결정하는 회의체 역할을 한다. ‘인민군 당위원회’는 로동당 중앙위원회 직속으로 그 지도 밑에 사업을 하고 있으며 군대 내각급 로동당 조직은 유일사상체계 확립, 당 대열의 확대 강화, 군사사업의 당적 지도 강화, 당 군사노선 관철, 청년동맹의 조직 강화지도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 이름까지도 완벽하다. 비밀정보원!
보위군관 및 보위군관을 보조하는 비밀정보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 요원의 충원은 투철한 김일성김정일주의자들이며 사업과 생활에서 결함이 없는 자, 성장배경과 과정이 좋은 자, 친인척 문제가 없는 자, 장차 당과 수령에 대한 배신행위를 할 우려가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자 중에서 선발된다. 물론 청소년시절의 생활정형기록이 중요한 자료가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최주활, 앞의 글, p.53.
인민군 내 비밀정보원은 대채로 10명당 1명꼴로 비밀리에 배치되며, 소대인 경우에 3~4명, 사단급, 군단급, 인군관, 소장 이상의 장령들의 경우에는 주로 운전수, 부관들이 비밀정보원의 임무를 수행하며, 군관 가족들 속에도 서로 감시하도록 비밀정보망이 조직되어 있다. 이들의 임무는 보위군관의 지시에 따라 자기가 근무하는 부대 안의 병사, 군관, 장령들 속에서 제기되는 부정적 자료, 즉 김일성김정일의 사상 반대 및 권위훼손, 북한체제 비방 및 중상, 남한에 대한 찬양 및 선전, 국가물자 및 군사물자 절취, 군사규율 위반행위 등을 시기별로 종합하여 보고한다. 이 밖에도 군관, 장령들의 인맥관계를 구체적으로 종합 보고한다. 위의 글, p.55.
그러나 최근 군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인인 당적정치적 통제가 김정일의 권력장악과 함께 상당부분 약화되고, 군부가 정치권력 실세로 등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권 붕괴와 그에 따른 경제난, 그리고 세습체제 구축과 김일성 사망으로 초래된 체제위기 관리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김정일은 체제 내부단속을 위해 군부를 강화시키고 이를 철저히 장학함으로써 군대를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또한 이를 위하여 군대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총대우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가 있다. 군대를 틀어쥐지 않고서는 사회주의를 고수할 수 없으며 조국통일도 실현할 수 없다” <로동신문>, 1997년 7월 3일자.
고 강조한 것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의 김정일체제가 가지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특징은 군사우선체제라는 데 있다. 북한은 이처럼 군사를 우선시하는 것을 가리켜 ‘선군정치’라고 부르고 있다. 1998년에 구호로 등장한 선군정치는 김정일체제의 공식출범 이후 더욱 크게 강조되고 있다.
경제문제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가 난관에 처한 ‘고난의 행군’(1996~1997), ‘강행군’ (1997~1998)시기에도 중공업위주의 경제구조를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고수하고 강화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실제로 1998년과 1999년의 경제부문에 대한 김정일의 ‘현지지도’가 중공업지대의 자강도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이러한 정책과 결부된 것이었다. “중공업제일주의로 경제부흥 구상”, <연합뉴스 : 북한통일재외동포> 제 1196호(2000. 1. 20), p.F가7
북한이 이처럼 최근에 다시 중공업을 중시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대량파괴무기(WMD) 개발과 함께 ‘벼랑끝 외교’전술을 통해 체제안보를 기하려는 의도로 엿볼 수 있다.
한편 북한의 경제정책의 특징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중공업위주의 경제성장전략을 군수산업의 육성과 병행시키는 군산복합형산업체제로 발전시켜왔다는 데 있다. 이 정책은 1966년 10월 제 2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제기되었고, 당중앙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채택된 이래 줄곧 북한 경제운영의 기본전략으로 유지되고 있다. 북한의 군사비가 정부예산상으로는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이나 장비 등 군사력은 오히려 매년 증강되어왔다 경제발전과 경제력강화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이 정책은 1966년 10월 당 대표자회의에서 제기되었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채택된 이래 지금까지 경제 운용의 기본방침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1966년까지는 예산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 정도에 불과했으나 1970~1971년 동안은 군사비가 30%이상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들어오면서 동서화해와 남북대화가 시작됨에 따라 북한은 군사비를 종전의 절반정도 (예산총액의 17%이하)로 축소시켜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선전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예산상의 군사비가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병력이나 장비 등 군사력은 오히려 매년 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통일부 정보분석국, 앞의 글, p.263.
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상호연계성은 더욱 강화되어 왔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육원, <북한문제 이해 1999>, 앞의 글, p.143.
북한이 한정된 자원으로 군사력의 강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한 결과는 경공업과 농업 부문은 물론, 국방 이외 부문의 중공업과도 심각한 불균형 성장을 초래하였으며,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더욱이 제한된 자본과 자원의 제약 속에서 군사중심의 중공업 우선정책은 자연히 산업관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주민의 소비부문을 크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오일환정순원, <김정일시대의 북한 정치경제>(서울 : 을유문화사, 1999),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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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09
  • 저작시기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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