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세계를 덥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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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온돌은 무엇인가?

2. 온돌의 기원

3. 온돌의 구조와 원리
① 오랜 경험과 착오를 거친 산물
② 구들의 작용원리
③ 온돌의 구조 원리

4. 온돌의 과학성과 장․단점
① 온돌의 과학성
② 장점
③ 단점

5. 타문화와의 비교
① 다다미
② 벽난로

본문내용

구조 등)으로 온돌의 안전한 시공을 위한 시공자의 자격과 시공방법 등을 규제한다.
5. 타문화와 비교
① 다다미
한국에 온돌이 있다면 일본에는 다다미가 있다. 다다미는 일본 주거문화생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우리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몇평인가로 방의 크기를 말한다면 일본은 다다미 몇 장인가로 방의 크기를 말한다. 다다미 두장정도가 우리의 한평과 맞먹는다. 일본이 다다미 문화가 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다다미가 습기나 냉기 조절에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다미는 습기가 많은 여름철이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겨울철에는 방바닥이 차가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여름에는 돗자리, 겨울에는 카페트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생활 습관으로 볼 때도 다다미가 쿠션의 역할을 하면서 저리기 쉬운 다리를 보호해주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손님을 맞는 모든 일이 다다미(疊) 위에서 이루어졌다. 다다미라는 말은 ‘다다무’(たたむ-접다, 겹치다)에서 왔다. 습하고 더운 일본 기후의 특징으로 인해 한국처럼 돌과 흙만으로 바닥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짚단을 엮고 그 위를 돗자리로 씌운 깔개를 고안해 냈는데, 이것이 오늘날 다다미의 모태가 된다. 처음에는 방석 정도였지만 16세기 경에는 바닥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그 때는 황족이나 귀족, 관료나 승려 등 특정 계급만이 사용하는 호사품이어서 이사를 갈 때에는 다다미를 걷어서 수레에 싣고 가곤 했다. 서민들에게 널리 보급된 것은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서였다.
보통 다다미는 90×180cm, 무게는 15~30kg, 두께는 4~7센티미터로 규격화되어 있다. 이는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사지를 뻗어 편하게 누우려면 다다미 2장(우리 식으로 대략 한 평 정도 된다)이 필요하다. 일본 가정집의 평균적인 방 크기는 다다미 6장이고, 가게를 낼 경우에는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5장 반 크기를 고집했다. 다실은 보통 방보다 작은 4장 크기다. 서너 명이 다회라도 하려면 무릎을 꿇고 앉는 정좌를 해야 하는데, 이는 다실에서만큼은 무장해제를 바라던 옛날 사무라이들의 관습 영향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보면 자리에서 빨리 일어날 수 없고, 공간이 좁다 보니 갑옷을 벗고 무기를 밖에 놓아둔 채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다미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말린 짚단을 40cm 정도 모아 이를 5cm가 되도록 압축해서 대마나 면사로 꿰맨 것이 다다미도코(床) 즉 몸체다. 이 위에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인 등심초로 만든 다다미오모테(表), 즉 돗자리를 댄다. 가장자리는 명주나 삼베, 무명 등을 이용한 천인 다다미 헤리(緣)로 테두리를 한다.
② 벽난로
주택 내의 벽에 붙어 있는 개방된 형태의 난로이다.
주로 난방용이나 가끔 요리를 하는 데도 쓴다. 최초의 벽난로는 중세시대의 주택과 성에 연기를 빠져나가게 하는 굴뚝을 설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실생활에서 체험해본 결과 직사각형의 형태가 우수하고 일정한 깊이가 있어야 유리하며 난로의 받침쇠가 있어야 통풍에 좋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각 모서리가 비스듬한 경사면일 때 열의 반사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초기의 벽난로는 돌로 만들어졌고 그후엔 벽돌이 널리 사용되었다. 벽난로 맞은편에 두꺼운 석조벽을 설치하면 열을 흡수하고 재복사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중세시대에 발견되었으며, 현대의 벽난로도 그러한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벽난로가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벽난로 부속품과 장비는 장식의 대상이 되었다. 적어도 15세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반사벽은 주로 강한 열로 손상되는 벽난로 뒷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철판으로 만들었으며 보통 이곳에 장식을 했다. 19세기 이후 벽난로의 반사벽으로 내화벽돌을 쓰게 되었다.
벽난로의 장작받침쇠는 2개가 1쌍인 수평철제봉으로 짧은 다리가 달려 있으며, 타는 장작을 지지해주기 위해 벽난로 양 옆으로부터 평행하게 세워놓는데 이것은 철기시대부터 사용된 것이다. 정면에 있는 수직 보호봉은 장작이 방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대부분 화려하게 장식된다. 뒤편에 있는 보호봉은 14세기까지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에 들면서부터 난방용으로 개방된 벽을 중앙에 설치하는 유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철로 만든 일종의 바구니 모양의 받침쇠는 11세기부터 사용되었고 특히 석탄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불을 관리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들은 15세기 이래로 별로 바뀌지 않았다. 부젓가락은 타고 있는 연료를 다루는 데 사용되고, 화이어포크나 통나무포크는 연료를 제위치에 놓을 때 쓰이며, 손잡이가 긴 브러시는 벽난로를 청소할 때 쓰인다. 부지깽이는 타고 있는 석탄을 작게 쪼갤 때 쓰도록 만들어졌으나 18세기까지는 별로 쓰지 않았다. 석탄통은 18세기 초반에 처음 나타났으며, 후에 장식된 나무상자나 장작을 넣어두는 선반으로 쓰였다. 열가리개는 19세기초 불똥이 실내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되었고 이것 역시 꾸며져서 기능적인 목적 이외에도 장식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일찍이 중앙에 설치한 개방된 벽난로가 별로 쓰이지 않게 된 이후, 벽난로 그 자체는 별로 뚜렷한 개선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624년 이후 파리의 루브르 궁전의 건설에 채용되었던 건축가인 루이 사보가 벽난로를 발전시켰는데, 벽난로 밑과 난로의 쇠살대 뒤의 통로를 통해 공기를 끌어들여 벽난로 선반에 있는 그릴에서 방으로 배출되도록 했다. 이러한 형태는 20세기에 공기통로역할을 하는 움푹한 벽에, 조립식 2중벽의 철제 벽난로 라이너(liner:마모나 과열을 막기 위해서 두 면 사이에 끼우는 것)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일부 이러한 시스템은 전기환풍기를 사용해 강제 순환시킨다. 1970년대는 연료비의 급상승으로 에너지 보존방법에 관심이 집중된 때로, 연소를 돕기 위한 공기가 집 밖에서나 가열하지 않은 부분으로부터 들어오게 하는 밀폐된 시스템이 고안되었다. 벽난로 앞 가까이에 맞추어놓은 유리 덮개는 일단 연료를 자리에 놓고 점화하면 밀폐된다.

키워드

온돌,   구들,   난방,   방바닥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7.09.27
  • 저작시기2007.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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