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의이해]오페라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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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오페라의 정의 및 어원

2. 오페라의 역사

3. 오페라의 용어

4. 오페라의 종류

5. 오페라의 나라별 특징

6. 오페라의 대표작

7. 오페라의 명지휘자들

8. 한국의 오페라

본문내용

로 오페라와 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음악적 여정은 오페라로 시작되었으며, 평생을 오페라의 영감 속에 살았고, 오페라를 준비하다 사망했다. 나중에는 음악계의 제왕으로 불렸지만 카라얀이야말로 악단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자로서,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쓴맛을 참으며 자신의 길을 닦은 사람이다. 그는 10년 동안이나 울름, 아헨과 같은 소도시 극장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했다. 그 시절의 피눈물 나는 단련은 나중에 어떤 경우에서도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카라얀의 오페라 세계는 베르디·바그너·모차르트·슈트라우스로 크게 대별되는데, 특히 베르디와 바그너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명반을 꼽으라면, 프라이스가 주연을 맡아 칼라스의 녹음과 쌍벽을 이루는 ‘카르멘’과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일 트로바토레’, 라 스칼라의 베를린 연주 실황인‘루치아’, 그리고 빠뜨리기 쉬운 것이 초기에 슈바르츠코프와 녹음한 ‘장미의 기사’와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이다.
(3) 현재 활동중인 원로급 지휘자
1)게오르그 솔티(헝가리, 1912~ )
게오르그 솔티는 21세 때부터 부다페스트 가극장에서 연습지휘자로서 지휘자 수업을 쌓았다. 바르토크·코다이·도흐나니 등이 그의 스승이다.
2)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이탈리아, 1914~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젊어서부터 일류무대에 섰다. 그는 55년 비스콘티가 연출하고 칼라스가 주연했던 역사적인 라 스칼라의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했으며, 82년 코벤트 가든에서 지휘한 제피렐리 연출의 ‘팔스타프’는 그에게 최대의 찬사를 쏟아지게 했던 유명한 공연이다.
(4) 현역 5인방
1)로린 마젤(미국, 1930~ )
로린 마젤은 8세 때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신동이지만, 전인 교육을 모두 거친 다음 23세에 다시 데뷔했다. 젊은 시절의 연주는 관객의 머리에 각인시키는 생명력 넘치는 강인한 연주였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예리함보다는 심오한 예술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마젤은 아직도 눈을 뗄 수 없는 최고의 거장이다. 대표적인 레코딩은 로시 감독의 영화 ‘카르멘’, 라 스칼라의 ‘아이다’ 등을 들 수 있다.
2)카를로스 클라이버(오스트리아, 1930~ )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현역 중 가장 독특한 카리스마와 저력을 가진 지휘자일 것이다. ‘마
탄의 사수’와 ‘라 트라비아타’, 비디오로도 출시된 뮌헨의 ‘박쥐’ 실황은 빼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다.
3)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1933∼ )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서 근간 교향곡 연주에 주력하고 있지만, 줄리니를 계승하는 이탈리아의 정통 오페라 지휘자이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음반은 역시 로시니와 베르디이다. 특히 ‘랑스로 가는 여행’과 ‘세빌랴의 이발사’를 추천한다.
4)리카르도 무티(이탈리아, 1941∼ )
리카르도 무티가 30대의 나이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된 사실은 그의 놀라운 실력을 증명한다. 게다가 당시 그는 필라델피아·런던·피렌체 등 음악감독을 한꺼번에 겸임할 정도였다.
86년 그는 드디어 최대의 라이벌인 아바도에 이어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전격 취임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콘서트 활동을 줄이고 오페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는 한때 아바도 등 기성 대가들에 대해 시노폴리, 샤이 등을 이끄는 ‘영 제너레이션’의 대표자였으나, 라 스칼라의 수장이 됨으로써 완전히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카리스마로 라 스칼라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수십 년에 걸쳐 베르디의 전 작품을 새로 제작하고 모두 녹음·녹화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므로 이전까지의 그의 음반들보다는 앞으로의 녹음들이 더욱 기대된다. 현재까지 나온 것은 ‘라 트라비아타’‘돈 카를로’ 등이 있다. 무티의 레퍼토리는 로시니에서 베르디에 이르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모차르트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자신의 정열과 순간적인 열기가 배어 있는 라이브를 크게 선호하는 편이다.
5)제임스 레바인(미국, 1943∼ )
제임스 레바인은 76년부터 미국 오페라의 메카인 메트로폴리탄을 지키고 있다. 그는 토스카니니 등 유럽의 대가들이 군림해오던 메트의 3대 징크스였던 “안경 낀 사람과, 뚱뚱한 사람과, 미국인은 메트를 지휘할 수 없다”는 말을 일거에 모두 깨뜨려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비록 그 자신은 토스카니니를 가장 존경한다지만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려한 음악을 들려주며, 친절한 매너로 인간관계도 좋아 큰 극장을 4반세기 동안이나 잘 이끌어 오고 있다.
다양하고 융통성 있는 음악세계를 갖고 있는 레바인은 특히 베르디와 바그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의 공연들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76년 잘츠부르크에서 공연한 포넬 연출의 ‘티토 왕의 자비’이다. 그리고 82년 바이로이트에서 ‘반지’를 지휘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메트에서도 생크의 연출로 제작해서 그 후 ‘반지’는 매년 공연되는 메트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 현재의 오페라 계는 라 스칼라의 무티와 메트의 레바인이 양분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양대 체제는 21세기에도 당분간 오페라 계를 이끌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오페라>
한국에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것은 1940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한 《흥부와 놀부》가 효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연주회 형식의 공연이었으며, 본격적인 오페라 운동이 시작된 것은 48년 1월 국제오페라사가 주최한 《라 트라비아타》 공연부터이다.
50년대 이후에는 창작 오페라가 등장했는데, 50년 초연된 현제명의 《대춘향전》이 최초의 창작오페라이다. 이후 김대현의 《콩쥐 팥쥐》, 김달성의 《자명고》, 홍연택의 《논개》, 장일남의 《원효대사》 등 많은 창작오페라가 발표되었다.
또한 서울 오페라단·한국 오페라단·푸리마 오페라단·고려 오페라단·대한 오페라단·김자경 오페라단 등 많은 오페라단이 생겨나면서 오페라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특히 62년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일남의 《왕자 호동》을 시작으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도니체티의 《루치아》, 푸치니의 《라보엠》과 《아이다》, 공석준의 《결혼》, 이영조의 《처용》등을 공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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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0.24
  • 저작시기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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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3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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