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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또는 죽음에 앞서서 다른 이들과 이제 아무런 것도 공유할 수도 없고 나 혼자서도 아무런 생각과 감정을 발산할 수 없을 때 느끼게 되는 허무감 혹은 공허의 폭풍우가 가슴을 꽉 막히게 할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죽음의 앞에서도 당당한 성인군자님들. 이 분 들처럼 죽음을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불교의 다비식. 스님들이 돌아간신 뒤 화장하는 사진)
나는 예전에 여행을 좋아하시는 큰아버지와 함께 절에서 몇일간 템플 스테이 처럼 생활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과정은 일반 현대인들이 계속해서 수행하기는 매우 힘이 든다. 이러한 수도생활을 수십년 해오고, 세속인이 말하기를 화장할 때의 재처럼 죽음도 훨훨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어떤 스님의 시체를 보면서 죽음을 당당히 극복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보였다.
결론은 죽음은 인간의 능력으로(과학적인 것 말고 정신적으로)극복할 수 없는 높은 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대한 단상을 단지 교양서적이나 명화(famous movie)에서 영감을 얻어 긍정의 상(像)으로만 채우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다소 비뚤어 보일 수는 있으나 순수한 그리고 능동적인 죽음에 대한 나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다.
(불교의 다비식. 스님들이 돌아간신 뒤 화장하는 사진)
나는 예전에 여행을 좋아하시는 큰아버지와 함께 절에서 몇일간 템플 스테이 처럼 생활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과정은 일반 현대인들이 계속해서 수행하기는 매우 힘이 든다. 이러한 수도생활을 수십년 해오고, 세속인이 말하기를 화장할 때의 재처럼 죽음도 훨훨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어떤 스님의 시체를 보면서 죽음을 당당히 극복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보였다.
결론은 죽음은 인간의 능력으로(과학적인 것 말고 정신적으로)극복할 수 없는 높은 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대한 단상을 단지 교양서적이나 명화(famous movie)에서 영감을 얻어 긍정의 상(像)으로만 채우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다소 비뚤어 보일 수는 있으나 순수한 그리고 능동적인 죽음에 대한 나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