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남부 종족 조직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푸지엔성과 광똥성의 촌락과 종족
1) 촌락을 구성하는 종족의 형태
2) 종족간의 동맹
3) 종족들의 규모
4) 촌락의 형태

Ⅲ. 촌락생활의 경제적 기초
1)공동 토지
2)사유재산 및 토지세분현상

Ⅳ. 가족과 가구
1) 가족과 가구
2) 분가
3) 사회적 단위들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고찰

Ⅴ. 맺음말

Ⅵ. 참고 문헌

본문내용

생산노동에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갖지 못했으므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었다. 이것이 여성이 압박을 받았던 근본적인 원인이다.
셋째, 혼인의 자유가 없었다. 종법제도 아래에서 혼인의 목적은 종족이 번창하게 후대로 뻗어나가도록 하는 것과 재산을 계승하는데 있었다. 남자의 경우 결혼은 자기의 아내를 맞는 것이 아니라 종족 며느리를 얻는 것이었다. 여자의 결혼 역시 개인이 남편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 성(姓)의 가족에게 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혼인의 운명은 완전히 가장의 손에서 조종되었으며 반드시 부모의 명령과 중매쟁이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여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데 대해 선택할 자유가 없었으며 단지 부모의 결정에 따라야할 따름이었다.
넷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었다. 교육은 인류가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데도 여성에 대해서는 개방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에게는 재주가 없는 것이 바로 덕이다, 여자가 글을 알면 나쁜 짓을 하도록 교사하게된다 고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을 받는 여성은 매우 드물었다.
이렇듯 여성은 태어난 순간부터 그 가족에게는 손실로서 존재하게 되며, 결혼을 하면 원래의 가족을 떠나며 그녀의 아이들은 남편 쪽 집단에 속하게 되는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여성의 가사노동, 출산력, 주된 의례적 귀속들은 결혼에 의하여 그녀의 원래 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 이전되었던 것이고, 이렇듯 여성에 대한 권리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옮겨지는 것은 신부 값의 지불에 의해서 정당화 되었다. 여성의 친정 가족은 법적 권리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일단 결혼을 하면 여성은 일종의 손님으로서 친정을 방문하였으며 적어도 시집 측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또한 향신 층의 이상적 행동 규범에 따르자면 과부는 재혼하지 않았으나 재혼에 있어서 그녀에 대한 처분권은 대부분 첫 남편의 집안사람들이 갖고 있었고 토지 상속에 관한 법률에 과부 상속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항이 들어있었으며 과부의 친정가족은 그녀를 처리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없었거나 단지 이차적인 입장밖에 갖지 못했었다고 한다. 즉 일반적으로 신부 값의 지불에 의해 그것을 지불한 측은 여성에 대해 매우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통제권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혼인 여성에 대한 남편 쪽 집단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처녀 때의 성을 그대로 가졌으며 적어도 부모의 장례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통해 그녀가 친정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하며 남편 쪽 집단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주변적 존재임을 알 수 있고 또한 여성은 친정 쪽과 남편 쪽의 두 남계친 집단 간의 연결고리였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사회의 모든 단위들은 그 틀에 있어 남계친 단위였으므로 여성은 그것에 부수된 것이며 가족이라는 단위를 넘어서면 여성의 공식적 역할은 없었고 종족집단 운영에 있어서도 여자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동남부 지역의 종족 조직에 관한 탐구 중 그 기저를 이룬다 할 수 있는 종족과 촌락, 촌락의 경제적 기초, 가족과 가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중국에서의 일반적으로 보여 지는 종족과 촌락과는 다르게 동남부 지역의 씨족을 기반으로 한 특수한 종족의 형태는 다른 어떠한 촌락이나 종족보다 그들을 강한 연대감으로 이어 주었음에는 틀림없다고 본다. 이러한 강한 연대감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시피 그들이 엄격하게 외혼율을 지키고 같은 성을 가진 종족들은 족보상의 관계가 아무리 멀다고 하더라도 특정 상황 하에 공식적 협동을 이루게 함으로써 보다 큰 남계친 단위를 형성했으며, 전통적 관계에 기초하여 동맹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보다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동남부의 종족들이 강하게 유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중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집단적 토지 소유가 그들의 경제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동 토지를 마련하고 여러 세대 동안 그것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 종족이 계속 존재하고 번성해야 했으며, 공동 토지를 매개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오랜 시간 협동할 수 있었으므로 대가족 형태의 유지에도 훨씬 용이했고 이처럼 특수한 종족의 형태를 보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종족의 유대 안에서도 혼인과 가족의 확대를 통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분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가정의 단란함의 해체와 토지의 세분 현상이 공식적으로 일어나는 분가의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재산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았으며 분가 후에 형제들의 가구들은 법률상 협동적 경제 단위가 아니었다는 점을 통해 한국의 전통 사회와의 차이점을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가를 하였어도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는 분가를 하지 않는 것이 통례였으며 장남에게 보다 많은 재산을 주었고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 이였다는 점과, 여성의 지위가 낮았다는 점은 유교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한국의 전통사회 여기서 우리가 지칭하는 한국의 전통사회란 유교의 영향을 받았던 조선시대(특히 조선 중기 이후)를 의미하는 것이다
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 또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의 조사가 동남부의 일부 지역에 대한 특수한 연구였기 때문에 그 시대의 일반적 종족과 경제생활 형태, 가족과 가구에 대한 연구들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점은 비록 특수한 형태라 하더라도 중국의 전통적 가족체계에 대한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의 중국의 가족제도와 한국의 전통적, 현대적 가족제도와 충분히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교의 과정을 통해서 한국과 중국의 다름과 같음을, 과거와 현대의 다름과 같음을 좀 더 확연히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이 연구의 의의를 두고 싶다.
Ⅶ참고 문헌
-모리스 프리드만 저, 「동남부중국의 종족조직」,일조각,
-서양걸 저, 「중국가족제도사」 아카넷 펴냄,
-주영하, <<중국한족의지아(家),친지(親戚),쭝쭈(宗族)>>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키워드

추천자료

  • 가격1,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8.01.07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614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