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중심의 윤리관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생명적 세계관
- 이성의 반윤리성
- 관계의 통찰이 모든 윤리의 핵심
- 모든것이 하나라는 관점

2. 욕구의 교육
- 상황이 바뀌었다
-욕구에 대한 근원적 반성
- 장자의 기심
- 욕구 교육의 한 방법

3. 윤리 공동체의 외연 문제
- '인간' 대신에 '생명'
- 필로소피아에서 필로이오로지아레로

본문내용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다만 인간이 이유로 존엄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생명존재가 하나같이 거룩하다는 것을 잘 깨달았으면 그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매우 탁월한 윤리관을 남겨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의 윤리공동체는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지배하여 억압하지 않는다. 소유와 지배, 그리고 억압 이 모두는 생명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시각의 산물일 뿐이다 생명의 공동체는 옛날 중국인 철인 노자(老子)가 말한대로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生而不有 爲而不侍 張弛不宰)”이다. 낳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하면서도 자만하지 아니하고 기르면서도 지배하지 않는 것이 곧 본래 생명이다. 노자는 이를 그윽한 덕이라 하였다. 생각해보면 상호 갈등과 경재, 폭력 온갖 실상은 처음부터 소유의 지배에서 나온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교를 있게 한 모태요 과거처럼 지금도 서양 문명의 건설과 확산에 충분한 영향을 끼쳐오는 구약성서는 “하느님 오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27~28) 라고 말한다. 물론 하느님에 의해 사람과 함께 창조되었을 온갖 새와 짐승 생명들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룩할 터이나 이 말씀은 그 거룩함을 지우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생명들은 남자와 여자의 소유대상이요 지배 수단이며 이용물로 보여진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며 착취하고 억압해 왔다. 창세기의 말을 어떻게 달리 해석하든 그것은 오늘 생태계의 위기를 가져온 근본적인 이념으로서 사용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 관점은 오늘날 서양 문명 세계가 깊이 끌어안고 있는 주객 이원론과 인간 중심주의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문명인은 자연의 뭇 생명과 자기가 한 몸임을 보며 깨닫지 못하여 이제 몸도 마음도 영성도 온통 위기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쳐서 타락하게 되었다. 이렇듯 소유와 지배는 생명세계를 전체적으로 공멸시킬 가공할 위험의 뿌리이다. 창세기의 그 말은 그런 면에서 모든 반윤리성의 근원이요 속히 극복되어야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의 진정한 말씀이 아니라 그러한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의해 해석된 하느님의 말일 뿐이다. 온 생명의 근원인 실제의 하느님은 자기에게서 나온 모든 생명을 진실로 사랑하시지 않겠는가.
● 생명 공동체의 가장 뿌리 깊은 덕은 사랑
그렇다. 생명의 공동체 구성원이 지니는 가장 뿌리 깊은 덕은 사랑이다. 덕은 큰 것이요, 얻은 것이기도 하다 어디서 얻은 것인가. 하느님에게 하늘에게서 얻은 것이다. 중국의 고전『중용(中庸)』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였다. 성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하늘에게서 나온 것이니 큰 것이다. 모든 생명이 자기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으니 실로 큰 것은 사랑이다. 자기 속의 사랑을 찾아 드러내는 일이 곧 도를 닦음이요, 가르침이요, 깨달음이다. 사랑은 생명이 하느님을 닮아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증거이다. 생명의 공동체구성원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 탓으로 나서 자라 완성에 이르게 된다. 사랑에서 벗어나는 모든 마음은 생명 본래로부터 벗어남이요 삐뚤어짐이다. 그 벗어남과 삐뚤어짐이 곧 죽임과 죽음의 뿌리요, 반 윤리성의 토대이다. 오늘 자본적 산업문명은 말 그대로 사랑을 회복할 때 비로소 희망의 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생명인 우리 모두 사랑에서 왔고 사랑 안에 있으며 사랑을 하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랑을 보다 세밀히 느끼기 위해 그것을 자비(慈悲)와 관련시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즐거움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慈)요 남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이 비(悲)이다.
생명 공동체는 실상 자비롭다, 생명의 실상이 자비이겠기 때문이다. 남의 괴로움을 자기 아픔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인데 그 생명이 왜곡되고 타락하여 그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남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본래 생명의 일인데 그 생명이 온갖 장애와 무명(無明)탓으로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생명의 공동체 속에 인간이란 존재가 한자리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자비를 제대로 깨닫고 가르치며 행하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생명 공동체를 제대로 살리고 완성케 하는 몫을 자기의 참된 일은 맡은 존재일 터이다.
그러나 산업문명을 확산시키고 자기중심적이며 이원론적 시각에 젖어 있고 집단적 교만과 우월성에 빠져 있는 인간은 그 몫과는 전혀 상반되는 일 ,즉 오히려 생명을 살해하고 살상하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에 암암리에 그리고 공공연히 몰두하고 있으니 이것이 심각한 비극이요 위기이다. 이제 인간은 지구촌 전체생명 공동체 안에 있게 된 (또는 보내어진) 이유와 뜻을 섬세히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지구촌의 생명세계에서 암세포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암세포는 자기 스스로 집단적으로 역시 지구촌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지구 자신이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할 터이므로… 생명줌심의 윤리관은 생명의 사슬과 생명의 실상에 대한 여실한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생기는 것이요 확산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와 수행을 겸비한 존재에 의해 계속 구축되어 나갈 것이다. 늦었다 싶은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참고 문헌
1. 『녹색평론』(격월간)
2. 박이문, 『자비의 윤리학』, 철학과 현실사, 1990: 서울
3. 장일순, 『나락 한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1997: 대구
4. 야기 세이이치, 『불교와 그리스도교을 잇다』이찬수 옮김, 분도 출판사, 1996: 왜관
5. 『莊子』
◆연습문제
1. 어머니 자궁 속에 깃든 나 자신을 상상하면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2. 윤리의 핵심이 관게의 통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3. 왜 우리는 인간 중심의 윤리에서 생명 중심의 윤리에로 나아가야 하는가.
4.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읽고 토론해 보자.
5. 우리에게 사랑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논의해 보자.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8.01.07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620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