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와 신세기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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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희망을 갖게 됨으로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극복해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신지가 마지막에 말한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내가 항상 에바파일럿이 되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상상한 세계)도 역시 세상이야,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할수 있다"등의 대사를 미루어보건데 결국 늪에서 빠져나온 도구는 희망과 가능성확인이다.
이것이 바로 에바 TV판이 나타내고자한 인류보완계획인 것이다. 인류보완계획이 사해분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신지가 어느 정도 단계별로 사회를 겪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자꾸 자신을 자각해야만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의미한다.
그러나 가이낙스사는 너무 난해한 결론을 제작하여 일반 팬들에게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극장판이라는 새로운 엔딩을 만든것이다. 극장판에서의 인류보완은 형태가 분명히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극장판 스토리가 26화가 아닌 24화에서 이어지는 것이며 팬들의 요구를 너무나 잘 맞추어 놓은 것이다. 극장판에서의 인류보완및 서드임팩트는 가시적이며 표면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논리이다. 또한 방대한 스케일 및 숨겨온 모든 비밀을 밝히는 스토리는 팬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에반겔리온의 기본 주제를 돌이켜본다면 극장판의 엔딩은 지나치게 비극적이며 자학적이다. 이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미흡하게 여겨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학속의 쾌감을 자극했을 뿐이다. 마지막에 새로운 아담과 이브인 아스카와 신지를 남겨놓지만 그 끝은 결코 새로운 희망을 보이지 않는다. 아스카는 신지가 목을 조르고 있을 때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손을 풀자 "기분나빠"라고 한다.
결국 희망적인 엔딩은 아닌 것이며 이는 인간은 결코 인간으로서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V판에서 감독의 뜻을 알지 못한 오타쿠들에게 배신감과 함께 일침을 가한 것이다. 에반겔리온이 기본적으로 인간을 살리고 보완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때 극장판의 엔딩은 이에 부합하지 못한다. 인간이 죽는 것이 최고의 보완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보일 뿐이다.
에반겔리온의 결말을 극장판으로 보느냐 25,26화로 보느냐의 문제가 인류보완계획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러나 팬들은 극장판이 THE END OF EVANGELION이란 점에 너무나 집착하여 TV판에서 끝나는 본래 에반겔리온의 결말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25, 26화는 역시 장난이었다는 결론을 내게 되는 것이다.
극장판의 결론이 지나치게 SF적으로 흐르고 궁극적인 결말이 인류의 보완은 죽음으로 보는 극단적인 비극적 시각을 감안할 때(죽음은 하나의 끝일 뿐 인간을 지양해 주지 못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양, 발전시킴으로써 살아가는 존재이다. 죽음을 최고의 보완으로 본다면 인간의 생존 및 생활을 모두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허무주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신지의 인격, 성격결함을 처음부터 여실히 드러내며 결국 희망적인 인류보완을 담은 25,26화의 결말이 진정한 에반겔리온의 결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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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05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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