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성적인 요소만이 아닌 인격체로 바라본 그녀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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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능해야 했고, 그의 행동 은 큰 비난을 받아야 마땅했겠지만 그렇기는커녕 그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주위 사람들로 부터 환영을 받는다.
크로넨버그 감독의 'M. 버터플라이'라는 영화에서는 이러한 distinction of gender의 문제가 영화 흐름의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다. 푸치니의 '마담 버터플라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는데 푸치니가 그의 작품에서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동양 여성과 권력을 가 지며 잔인하고 매정한 서양 남성을 그리며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성 정체성을 확인 시 켜 주었다면 'M.버터플라이'에서는 이러한 편견을 뒤엎으려는 시도가 명백히 보인다. 제목의 'M'이라는 것이 결국은 영화 속 인물인 '마드모아젤 송'과 '머슈 송'이 결국 동일 인물이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보면 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결국 무슈(Monsieur)와 마드모아젤(Madmoiselle), 남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M을 사용하여 성 정체성과 관련해 보다 신비롭고 애매한 'M. 버터플라이'를 탄생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투시'에서와 마찬가지로 'M. 버터플라이'에서도 한 인간의 젠더구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결국 여성과 남성의 젠더 구분이 가시적인 것이며 의복만으로도 바뀔 수 있는 개념임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구분 기준은 될 수 없으며, 나아가 여성성 남성성의 개념 역시 사회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불변의 개념이 아니며, 성차별 이데올로기의 개입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허구임을 보여준다. '투시'의 마이클과 'M. 버터플라이'의 송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성성에 부합되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여성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성 정체성과 젠ㄴ더는 연기이며 결국 사회적인 역할 놀이의 차원임을 지적해준다. 특히 'M. 버터플라이'의 송이 남녀의 역할을 모두 두르는 모습에서 영화는 사회적인 남녀의 구분의 경계선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7. 우리조원들의 의견
그동안 가부장적 남성 지배 사회에서 억압되고 종속되어 온 여성의 사회적, 역사적인 위치는 대중매체 속에서 수동적 이미지로 고정되었으며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단순히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표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투씨'에서 보여 지는 모습들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으며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그 첫째가 여성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남자의 역할로써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여장을 하게 된 후 부터, 관심을 받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성공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라면 불가능했을 것이 여자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인데 이는 분명한 가부장제에 대한 뒤통수치기다. 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여성의 출산 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혼자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그 주된 역할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이자 고통인 것이다. 그리고 따져 봤을 때 여자이기에 가능한 것이, 남자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것들 보다 훨씬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니 남자라서 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은 흙으로 빚으시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듯이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성분(?)면에서 여자가 훨씬 남자를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즉 굳이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는 그 우월성을 따질 수 있는 개체가 아니며 굳이 평가를 하자면 여자가 오히려 남자가 가지지 못하는 절대적인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남과 여는 동반자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여장을 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즉 여 주인공은 극중에서 동성애를 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가치관의 혼란과 심적인 고통이 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다. 물론 여장을 한 남자 주인공에게서 그 동안 여성으로서 찾기 힘들었던 당당한 모습이나 자신감 넘치며 때론 박력 있는 모습에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녀는 여자의 탈을 쓴(?)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의 색깔을 바꾸어도 그 본질적인 성질에 따라 서로 인력이 작용한다는 사실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결론
여성성과 남성성을 특별히 구분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분명 존재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차이에 남과 여는 서로 한배를 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워낙 여성이 억압되어 있었기에 여성의 위치와 권리를 찾는데 주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핵심은 여성과 남성과의 화합과 조화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면에서 어차피 여자와 남자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 졌으며 한배를 탄 여정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사회적 영향에 억눌린 여성의 올바른 위치 확립과 존중을 통해 진정한 화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를 실으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성은 항상 그 불리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길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여성은 그야말로 세상의 반이며 생명을 잉태하고 남성과 같이 감성을 지닌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삶을 이어온 여성들도 이제는 그들만의 가치를 빛낼 자격을 가지지 않았을까?
친애하는 당신은
당신
자신의 여린
그러나
당신의 어머니가 우리들 머리 위로
펼쳐놓은 이 근심을 살펴보라
그녀는 결코 이러한 심연에 고통 받지 않았던
한 사람임을 알면서
『친애하는 당신』
참고문헌
현대 영미 비평론, 정정호 편저, 신아사, 2000
전환기의 영미문학, 김의락, 한신문화사,1999
페미니스트 시학, 여성의 비유와 여성의 신체, 김경수 옮김,1992
조이럭 클럽, Amy tan 박봉희 옮김, 문학 사상사
쉽게 쓴 여성 문화 /예술 이론, 심정순 저, 숭실대 여성문화 연구소
문학과 영화이야기, 김동규, 임선애, 심지현 편저, 학문사, 2002
영화 속 문학 이야기, 문학과영상학회 , 동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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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13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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