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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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론

본 론
1. 한인동포(韓人同胞)의 만주지역 이주와 정착
2.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단체의 성립

결 론

본문내용

1913년에는 이승희와 이상설의 후원으로 이갑(李甲)을 교장으로 하는 밀산무관학교(密山武官學校)가 밀산부 봉밀산자에 설립되어 민족인재와 독립군양성에 기여하였다. 한흥동 이외에도 밀산지방 여러 곳에 한인촌이 형성되었다. 노령과 밀산을 거쳐 이곳에 들어온 강우규는 동광학교(東光學校)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에 전력하였다. 앞의 책 p156
결 론
만주 각지에는 1860년대 이후 지속적인 한인이주와 정착을 통한 한인사회 형성을 기반으로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한인 자치단체와 한인 민족학교, 무관학교가 설립됨으로써 반일역량의 축적과 함께 독립전쟁기지 건설의 기반이 마련되어 갔다. 특히 한인학교는 근대적 민족교육과 군사교육을 동시에 실시하여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항일 독립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독립운동단체들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투철한 의욕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이상에서 살펴본 만주지역의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모두 무장력을 갖추거나 군사훈련이 잘 된 정예부대는 아니었다. 그러한 단체들은 일부 단체들에 한정되었고 그래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운동단체의 활동은 일시적으로 침체 국면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들은 이러한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농장 등의 이름으로 독립운동 기지로서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다져나갔다.
이 시기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은 독립전쟁을 지향하면서도 그 명칭과 강령 등에서는 대다수 경제 교육운동을 표방하였다.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앞서 한인사회의 경제적 안정과 정치적 자치를 이뤄 지속적 항일투쟁의 근거를 마련하고 민족교육 군사교육을 통해 항일역량을 축적시켜 장기적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들 1910년대 독립운동기지 건설의 결과물인 만주 각 지역의 한인자치기구와 독립운동단체들은 국내의 3 1운동 발발을 즈음해 대한군정서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등 수많은 독립군부대를 결성해 본격적인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의 항일무장투쟁은 항일독립투쟁에 있어서의 새로운 장을 엶과 동시에 한민족독립운도사의 확고한 기반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앞의 책 p157
☆참 고 문 헌☆
「가라문화 제 18 집」. <경남대학교 가라문화 연구소>-김 봉렬
「가라문화 제 19 집」. <경남대학교 가라문화 연구소>-김 봉렬
www. naver. com,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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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6.03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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