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성립과 주자 성리학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왕조의 성립과 주자 성리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조선왕조의 성립과 주자성리학
조선의 건국
조선시대 주자성리학의 특징

본문내용

철학적 조류는 크게 경험적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파(主氣派)와 원리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파(主理派)의 두 계통으로 발전하였다. 주기파는 서경덕(徐敬 德)에서 비롯되어 이이(李珥)에 의해 대성되었는데, 경험적 현실세계를 존중하여 정치 경제 국방 등 현실문제에 대한 여러 개혁론을 제시하였다. 주기파는 이이의 벗인 성혼(成渾) 송익필(宋翼弼)과 그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등 이른바 기호학파(畿湖學派)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한편, 주리파는 이언적(李彦迪)에게서 비롯되어 이황(李滉)에 의해 대성되었는데, 도덕적 원리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을 중요시 하여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도덕규 범의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리파는 이황 조식(曺植) 이후 김성일(金誠一) 정구(鄭逑) 허목(許穆)등 영남학파(嶺南學派)에 의해 계통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성리학은 17세기에 이르러 신분질서의 안정에 필요한 의례를 중요시 하여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예학(禮學)으로 발전하였는데, 기호학파에서는 김장생 송시열이, 영남학파에서는 정구 허목이 이를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시켰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은 기호학파가 정권을 주도하면서 주기설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는 인간의 심성문제를 둘러싸고 큰 논쟁을 펴기도 하였다. 한원진(韓元震) 이간(李柬)등이 당시 심성론(心性論)의 대가였다.그러나, 가톨릭교를 비롯한 서양 문화의 자극을 받는 과정에서 주리설이 대두되어 위정척사(爲政斥邪)운동의 철학적 기반을 부여하였다. 이항로(李恒老) 기정진(奇正鎭)등은 19세기 중엽의 대표적 위정척사 운동가였다.
성리학의 발달과 아울러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운동도 일어났는데, 윤휴 박세당 (朴世當) 정약용(丁若鏞) 등은 유교의 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고, 정제두(鄭齊 斗)를 중심한 강화학파(江華學派)에서는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여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성리학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조선사회에서 그 지위를 굳히지 못하였다.
참고문헌&인터넷사이트
조휘각, 근대한국정치론(1999, 도서출판 보고사)
http://boinp.netian.com/index6.html
http://net-in.co.kr/dazzleme/
http://www.pcs21.net/gunji/e_go_20.htm
http://www.pochun.kyonggi.kr/gunji/e_go_20.htm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6.13
  • 저작시기2003.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939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