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을 통해 본 利用厚生學派의 사상적 특징과 학문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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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연암 박지원

Ⅲ. 연암그룹의 학문성향

Ⅳ. 연암의 문학관

Ⅴ. 이용후생학파의 사상적 특징

Ⅵ. 연암 사상의 한계

Ⅶ. 나오며

본문내용

대해 비하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연암이었지만 반면에 자국민족의 실체인 인민의 문명적인 선진화에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연암의 이러한 문명 선진화에 대한 열정이 역대로 중국 문화에 힘입어 온 우리 민족의 관성을 고도로 강화해야 한다고 추동하게 되어 언어 문자도 우리의 그것을 버리고 ‘중화’의 그것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민족에 몰입하다 민족을 등지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이는 결과에 대해서 기능적인 정적(正的)면만 생각했지 민족의 존립에 관계되는 부적(負的)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국의 언어 문자까지 ‘중화’의 그것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연암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골수 모화주의자다. 그것은 본류는 목적적(目的的) 모화주의자임에 대하여, 연암은 방법적(方法的) 모화주의자란 점이다. 본류 모화주의자는 민족의식을 중화 안으로 스스로 소멸시켜 갔음에 대하여 연암의 모화주의는 민족 주체의 문명적,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암의 민족주의는 그 시대의 역사적인 한계를 그 자체의 한계로 짊어진 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다.
Ⅶ. 나오며
지금까지 연암을 통해 利用厚生學派의 사상적 특징과 학문성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실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데는 사실과 증거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굴림으로 하였기에 이론과 학설만을 따지는 당시의 유학과는 달리 우리의 역사, 지리, 언어 등에 관한 국학의 연구를 중요시 하였다. 또한 실학은 민족의식과 민족에 대한 자각을 높여 현실 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던 민족적, 근대 지향적 성격의 학문인 것이다. 성리학이 초기의 참신한 기운을 잃고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이론에만 치우치자, 사실에 입각한 비판 정신이 일게 되어 청나라에서 들어온 고증학과 서양의 과학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풍으로 일어나게 된다. 실학자들의 학문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백성들의 실생활에서의 쓰임과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개혁을 주장하였고, 연암 박지원은 이용후생학을 중점적인 학문으로 삼으면서 이러한 사회를 추구한 것이다.
※ 참고 문헌
1. 이우성,『韓國의 歷史像』, 창작과 비평사, 1982.
2. 이종주,『북학파의 인식과 문학』, 태학사, 2001.
3. 吳壽京,『연암그룹 연구』, 한빛, 2003.
4. 이동환,『실학시대의 사상과 문학』, 지식산업사, 2006.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7.03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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