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서편제의 한(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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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서편제
*줄거리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특별한 만남 & 사연으로 소개되는 방식)

본론 (2) 한(恨)
*한이란 무엇인가
1.한에 관한 논의들
2.판소리와 한
3.이청준이 생각하는 한
*작품 내 인물들의 한과 한을 맺고 삭이는 과정-용서와 받아들임
1. 오라비
2. 눈먼 소리꾼 여인
* 상징들-햇덩이, 학, 새, 나무,

결론

본문내용

실명) 소식을 소릿재 주막 여인에게서 전해 듣는다.
7)사내와 여인이 주막집에서 만나 소리판을 벌이고 그냥 헤어진다.
8)여인은 아비(소리꾼 사내)의 유골을 선학동의 관음산에 도장한다.
9)사내가 여인의 발자취를 찾아 떠돌다가 선학동에서 여인의 소식을 듣는다.
10)사내와 여인은 각자 유랑을 계속한다.
한의 삭임은 결국 용서와 받아들임이다. 눈먼 여인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세상을 보듬어 안는다.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여인이 속에 쌓인 한을 토해내는 것은 아니다. 한은 소리로 삭으면서 외려 속으로 깊어져서 여인의 소리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다. 여인의 이런 자세는 연작 안의 단편「나무와 새」에서 '나무' 의 자세와 유사하다.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둥지이며, 대상을 속박하지 않으려 하는 자세는 눈먼 여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흡사한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 특히 어머니의 자세가 그러하다. 곧, '눈길'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모성, '새와 나무'의 어머니의 빗새에 대한 애정, '해변 아리랑'의 어머니의 한평생은 다름 아닌 한 맺음의 과정인 것이다. 이 어머니들은 한그루 잎이 무성한 나무로서 자식과 남편이 훌쩍 떠나가 버린 그 빈자리를 지키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편제>>의 눈먼 여인의 처지는 다른 여인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며 특수하다. 기다리고 웅웅거리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이 여인은 오히려 이청준 소설의 다른 남자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훌쩍 떠나는 모습이 그러하고, 웅웅거리는 콧소리가 아닌, '장부의 통한이 역연한 소리'<소리의 빛 중에서>역시 그러하다. 심지어 이 여인은 다른 여인과 대조적으로 가정을 꾸리거나 자식을 낳지도 않았다. 즉 이 여인은 나무인 동시에 새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인이 남성적이라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들처럼 한없이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한'은 승화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한을 삭여나갈 때 한은 승화되며 그 과정이자 결과물이 '소리'라고 파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어머니들의 소리는 울음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는 극성스러운 소리와는 다른, 도도하고 장중스러운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인, 한을 삭여낸 자들뿐이기 때문이다.
* 상징들-햇덩이, 학, 새, 나무,
<햇덩이>
햇덩이=소리=의붓아비=한
햇덩이는 사내가 의붓아비의 소리를 들을 때 그의 머리 위에 지글지글 타오른다. 그는 그것을 참기 어렵고 의붓아비의 소리가 최고조에 달할 때 그의 머리 위에서 지글거리는 햇덩이는 극을 달하여 사내를 괴롭힌다. 그래서 사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에게는 어렸을 적부터의 숙명의 태양인 햇덩이가 타오른다. 소년에게 햇덩이는 '소리'이자 어머니를 죽게 한 '소리꾼 아비'이자 '한'이며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의 표출이다.
<학>
학=눈먼 여인= 눈먼 여인의 소리
학은 <선학동 나그네>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상과 비슷하며 사람들은 눈먼 여인의 소리를 들을 때에 학을 본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학의 형상이란 마을 사람들이 여인의 한 깊은 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이 그들을 지켜주며 그들을 포용한다. 여인의 소리는 결국 학이며 그것은 선학동 사람들의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눈먼 여인은 주막을 떠나면서 오라비에게 자신은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학으로 남겠다고 전해주길 부탁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학이 되기를 그녀 자신의 소리가 학이 되어 비상하는 자신의 노랫가락 속에 자신의 한을 싣기를 소망했다는 학을 통해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새와 나무>
새=떠도는 사내
나무=용서의 자세
나무의 삶은 자족적인 것이다. 타의가 아닌 한 오로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그리고 스스로 땅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내리쬐는 햇빛을 막음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는다. 또한 나무는 스스로 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처음 주어진 자리에 꿋꿋이 머물며 그저 새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새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새로이 둥지를 찾아 떠돈다. 남도 사람 연작에서 보여주는 삶들은 바로 이런 새와 나무의 삶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이를 만나도 다시 한 맺힌 떠돌이 생활을 선택하는 사내는 작품에서도 언급된 '빗새'와 같다. 역시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도는 소리꾼 아비와 눈 먼 여인도 돌아갈 둥지 없이 떠도는 새이다. 한편으론 그들의 마음은 나무와 같다. 뿌리내린 한을 잘라내지도, 뽑아버리지도 않는다. 한이 뿌리를 내린 나무는 곧 '용서'이자 운명에의 '순응'이다. 한은 그들의 속에서 삭고 삭아 잎을 키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해서 눈먼 여인은 자신에게 한을 심어준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녀의 한이 맺힌 소리가 한 마리 학이라는 열매가 되어 포구를 훨훨 날아가는 것이다.
결론
우리가 살펴본 <<서편제>>에서의 한은 원한과 비통한 마음의 정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삭여서 용서와 받아들임으로 질적 변화한 삶의 창조적인 힘이었다. 이청준에게 있어서 한은 하나의 삶의 자세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세는 자신이 처한 불행을 스스로 어떻게 해보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하는 자세이며 어느 곳에 머물러 정착하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 원망할 법도 한데 서로가 서로를 알아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 오누이의 모습이나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말하는 여인의 모습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누이를 찾는 건 부질없다고 말하는 오라비의 모습에서 "말하지 않는" 침묵의 자세를 발견하고 어느 곳에서도 결코 정착하지 않는 오누이와 그의 소리꾼 아비의 모습에서 떠남을 발견할 수 있다. 한을 꺼내어 없애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삶의 한 방식을 보았고 그것은 삭임을 통해 더욱 정감 깊고 포용하는 자세로 성숙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한을 안고 사는 길은 결국은 한을 삭이는 과정이다. 한은 삭임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어지고, 사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든다. 이 삭임은 다름 아닌 용서와 받아들임이다.

키워드

이청준,   동편제,   서편제,   ,   판소리,   독후감,   감상문,   서평
  • 가격1,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8.08.04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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