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리옹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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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카스텔리옹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 카스텔리옹은 누구인가?
1. 약력
2. 그의 사상과 이단론

Ⅱ. 본론
1. 이단론 (De haereticis an sint persequendi)
2. 칼뱅 글 논박 (Contra libellum Calvini)

Ⅲ. 결론
1. 폭력에 대항한 양심인가? 이단의 부질없는 외침인가?
2. 현대 한국 교회는 무엇을 외칠 것인가?

본문내용

에 매달리고, 10명이 목이 작리고, 35명이 화형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 테러를 피해서 제때 도망친 사람의 수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 그 정도이다. 이 ‘새 예루살렘’에 있는 감방마다 죄수들로 가득차서 드디어는 간수장이 시 당국에 단 한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하기에 이르렀다.”로 말한다. 그는 또 시 의회 기록자료를 언급하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떤 시민이 세례식에서 웃음지었다:사흘간 감방, 어떤 사람은 여름철 더위에 지쳐서 설교 시간에 잠들었다:감방, 어떤 남자가 자기 아들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였다:감방,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가 춤곡을 연주하였다:도시에서 추방”등 이와 같은 보고서의 내용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것이 과연 종교적 정당성에 따른 적절한 권징인가? 칼뱅은 종교개혁자이며 이에 따른 아픔과 고통은 종교 개혁에 따른 필연적 조치일 수 밖에 없는가?하는 것은 끊임 없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콘스탄틴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부터 교회와 세속적인 당국에서는 이단을 합법적으로 처벌하기 시작했다. 이는 16세기 이후의 유럽사회에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종교 개혁 마저도 이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세르베투스는 이단이었으며 결국에는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합법적으로 죽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진행의 과정에 있어서 칼뱅이 주도적 인물로 부각되었으며 그 역시도 정통의 수호자로서 이단의 처형을 정당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칼뱅과 카스텔리옹의 차이는 무엇인지,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박건택, 신학지남, 1999, 가을호, 칼뱅과 카스텔리옹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
첫째는 한 사회의 종교적 기반에 대한 문제이다. 제네바 개혁자의 경우 국가는 종교적 기반위에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국가의 실정법이 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카스텔리옹의 경우는 국가는 자연법의 기반에서 세워질 뿐이다. 어떤 종교든지 종교적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둘째, 개혁자는 이단은 교리와 관련시키지만, 카스텔리옹은 이단은 삶과 관련시킨다.
셋째, 개혁자(칼뱅)는 사형까지도 언도할 수 있으며 그 대상은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순전한 교리를 반역케 하려고 획책하는 자들이다. 반면 카스텔리옹은 신앙상의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없으며, 흉악범의 경우는 가능하다고 말한다(자연법을 근거로).
넷째, 개혁자에게 있어서 위정자는 양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해야 한다. 그러나 카스텔리옹은 위정자는 어떤 이유로든 신앙의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한다.
다섯째, 칼뱅과 카스텔리옹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다.
마지막으로는 관용의 문제이다. 개혁자에게 있어서 관용은 엄격성을 포기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처벌하려 할 때 관대한 마음으로 기울어지는 마음” 칼뱅의 인문주의와 정치 윤리, 칼뱅작품선집 Ⅰ, 총신대출판부, 1998
이다. 그러나 카스텔리옹에게 있어서 관용은 엄격성으로 인한 죽음을 거부한다. 칼뱅의 엄격성은 결국 잔인성일 뿐이며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칼뱅과 세르베투스, 그리고 칼뱅과 카스텔리옹과의 사건은 종교가 국가의 최고 이데올로기였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대적 배경 안에서 최고의 이데올로기이던 반 종교적 사상은 철저하게 국가에 의하여 부당하게 판결받았으며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와 같은 갈등과 상황은 두가지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그 당시 국가 공동체의 하나님 나라 실현이라는 적법성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앙의 양심에 따른 개인의 문제와 인권에 따른 부당성이다. 결국 기독교사회는 많은 폭력과 피를 흘린 후에야 이 적법성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칼뱅의 그와 같은 행위는 신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여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진정한 의미로 관용을 베풀었다면 그의 신학과 삶은 더욱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2. 현대 한국 교회는 무엇을 외칠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칼뱅과 카스텔리옹의 대립에 있어서 오늘의 한국 교회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생각해보려한다. 하나는 칼뱅으로부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카스텔리옹으로부터 적용점을 찾아보자.
우선 오늘의 현대 사회는 칼뱅의 종교개혁시대와 같은 사회적 상황은 아니다. 그 당시에는 종교가 사회와 정치를 움직이던 시대였으나 오늘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칼뱅이 추구했던 종교개혁의 정신과 사상이 오늘의 교회를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개혁자들의 후예로서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신학노선의 분리와 변질은 이미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올바로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또한 개혁 신학과 신앙의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는 한국의 사회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의 협력과 일치를 위한 공동신앙 선언문, 2007,
곧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하나님께만 영광‘의 정통과 삶을 위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교회와 사회가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카스텔리옹의 양심의 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 교회의 양심의 소리가 되어야 함을 보려고 한다. 카스텔리옹은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권력에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대항하였다. 비록 교리적 이단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지만, 한국의 교회에는 이와 같은 양심이 있는가?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한국의 교회를 언급하는 것이 너무 크다면, 우리 학교는 어떠한가? 학교 내에서 과연 양심의 소리는 있는가? 교회의 크기 앞에, 그리고 교계의 명예와 권위 앞에, 그리고 교인의 숫자 앞에, 우리는 잠잠하지는 않은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를 비추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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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30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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