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와 ‘유다복음’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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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역사적 예수

3. 포스트모더니즘

4. 뉴에이지 운동

5. 유다복음?

6. 다빈치코드

7. 결론

본문내용

전과 복구된 후의 요한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복구 전의 그림은 남자임에는 틀림없고, 누구든 복구 후의 그림은 여자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즉 사도 요한임으로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라는 제자는 귀속말로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3:21-24에서 분명히 나와 있다. 더욱이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양만 보고 그녀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다. 신성모독을 해서는 안됩니다
전설만 아니라 왜곡된 역사적 상상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며 결혼했다는 억지 주장은 문학이라고 하지만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물증이 있으면 분명히 제시하지도 않고 영지주의자들이 쓴 두, 세 가지 책의 한 두 줄에 나오는 ‘입맞춤’또는 ‘사랑’등이라는 단어들을 돈키호테처럼 상상하여 짜 맞추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은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영지주의 작품들은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책들이다. 이러한 사상에 대해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은 신약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다. 근거도 없고 관련도 없는 몇 단어들을 가지고 여성권위주의자들(feminists)을 부추기고 있다. 마리아가 당시 예수님의 남성 지도자들에게 시기와 억압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황되고 꾸며낸 이야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결혼설까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신성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지금까지 결혼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한낱 인간이었던 그리스도를 위해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화형이나 참수형을 당하면서 신앙을 고수했겠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숭고한 순교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한 푼 가지도 없게 만들고 있는 소설은 신성모독일 뿐만 아니라 인간 이하의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라.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소설 ‘다빈치코드’에 나타난 거짓말들의 물적 증거로서 ‘비밀문서’, 즉 1960년대에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비밀문서들’(Les Dossiers Secrests)을 등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에 출간된 ‘성전폭로’는 ‘비밀문서들’이 낡은 양피지 문서가 아니라 타자기로 쳤거나 싸구려로 조판해 찍어낸 것에 불과하다면서 그것을 발견했다는 플랑타르의 주장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였다. 결론적으로 ‘시온 수도회’가 중세 때부터 존재한 단체가 아니라 1956년에 생겨난 조직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플랑타르는 거짓문서를 파리 국립 도서관에 등록했고 조작된 시온의 수도회 족보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약성경이 위조된 것이라고 하며, “그리스도 이야기에 대한 교회의 진술은 모두 부정확하며,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속은 이야기”이며, “교회는 2,000 동안 그 비밀을 밝히려는 자들에게 위협을 가하면서 억압했다”고 한다. 2,000년 동안 진실로 받아들여 온 사실들을 한낱 소설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 기독교인들의 자세
첫째, 4,000만권이나 팔리고 44개 언어로 번역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138주 동안 베스트 셀러였던 ‘다빈치코드’는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즐겨 읽을 것이고 그 영화를 보고 즐길 것이다. 초신자들은 읽거나 보아서 신앙에 대해 의혹을 느낄 것이다. 기존 신자들은 읽지도 않겠지만 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다르다. 그들은 민감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통해 들으므로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들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역사를 가르쳐야만 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기독교 역사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역사를 왜곡시키면서 기독교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 쉽게 논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므로 그들 스스로 여러 유혹들을 이길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둘째, 이 소설 안에는 이단 사상을 갖게 하는 ‘영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영화나 소설 자체라기보다는 담겨져 있는 내용으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의심을 조장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에 대한 불만을 자극시킬 것이다. 믿는 교리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셋째, 영화와 소설의 호기심으로 표출된 시회 인식에 관해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향한 도덕성을 회복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주력해야만 할 것이다. 기독교 개개인들이 세상 안에서 모본이 되어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7. 나가는 말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고자 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열망은 곧 초대교회 이단자들의 열망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하나님이 되고자 추구했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이단자들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영지주의자들은 아리안주의를 만들어내었고,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던 펠라기안주의에게까지 영향을 주었고, 그리고 수도원 운동까지 연향을 주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영성신학 가운데 ‘관상신학’은 이러한 영향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밝히고 싶다.
‘나그 함마디’문서로 인해 다시금 영지주의는 재생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는 영지주의는 여전히 기독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특별히 노력하여 자력으로 신접하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고, 또는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영향은 1906년부터 있은 ‘1의 물결’, 1960년의 ‘2의 물결’, 그리고 1980년에 이른 ‘3의 물결’에 끼쳤다. 주로 오순절주의, 은사주의, 또는 기도주의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관상신학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21세기에 이르러 ‘다빈치코드’가 등장함으로 다시 한 번 영지주의가 현대인들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거나 영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기독교적 정통사상에 입각한 신학만 아니라 신앙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적 신학을 가르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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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01.08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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