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역사-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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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시의 역사- 프랑스 파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요
1-1. 도시의 정의 
1-2. 都市史(urban history) 

2. 프랑스 파리
2-1. 파리 (Paris) 
2-2. 파리의 역사 

3. 파리대개조계획
3-1. 시대적 배경 
3-2. 파리의 변화 
3-3. 개조방법 
3-4. 계획의 영향 

4. 파리의 도시계획
4-1. 파리혁명프로젝트 
4-2. 신도시 개발 

5. 끝맺음 

출처

본문내용

Defense, Creteil, Bobigny에 개발하였는데 그 목적은 파리중심부의 사무실의 개발을 이 외곽으로 분산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총 9개의 신도시에 약 8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파리주변에 5개의 신도시(세르지-퐁뜨와즈, 마른느 라발레, 믈랭 세나르, 에브리, 생깡땡 앙 이브린)가 있으며, 지방(릴 근처 릴에스트, 루앙근처 보드뢰이유, 리용근처 리슬다보, 마르세이유근처 리브 드 레땅 드 베르)에 4개의 신도시가 있다. 그중 65만 명 이상이 파리 근처 신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중 망세르지-퐁뜨와즈에 약 18만 명이 살고 있다.
신도시 망세르지-퐁뜨와즈
세계 제2차 대전 후 50년대의 baby boom으로 인하여 프랑스 파리주변의 도시개발이 가속화되었으나, 대부분 팽창하는 파리의 인구분산에 급급한 나머지 파리주변을 이곳저곳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새로 작은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는 급격히 늘어나는 파리의 인구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고 수도권의 체계화된 도시개발을 위하여 60년대 중반부터 신도시를 계획했다.
파리 주변의 신도시 개발은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는 공공개발공사(EPA)를 설립하고 토지수용기반시설 구축에 착수하였다. EPA는 프랑스 수상실 산하 도시계획부 소속 기구로 신도시개발의 전권을 갖고 있었다. EPA는 망세르지-퐁뜨와즈의 개발에 있어서 두 가지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살고 싶은 자족도시’로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역 밀착형 도시개발’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계획방식은 마스터 플랜에 의한 전지역에 대한 단일한 계획이 아니라 1965년 계획 당시부터 현재까지 약 35년에 걸쳐 부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부분적으로 건설하는 단계별 개발방식(piecemeal development)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획일화, 단일화를 피할 수 있으며, 각 지구별로 하나의 시스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망세르지-퐁뜨와즈는 역사가 있는 신도시이다. 우선 망세르지-퐁뜨와즈라는 이름 자체가 옛 것과 새 것의 결합을 의미한다. 세르지와 퐁뜨와즈는 신도시를 구성하는 11개의 꾜문의 대표적인 2개의 지역이다. 세르지는 1969년 이후 신도시개발의 가장 큰 무대가 되었으며, 퐁뜨와즈는 가장 규모가 큰 기존의 시가지다. 퐁뜨와즈는 신도시 개발 때 발생하기 쉬운 지역, 인구, 사회적 공백을 막아주고, 세르지를 비롯한 주변의 개발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더욱이 도시개발과정에서 기존의 녹지나 숲 등을 완전히 보존하여 실제 밭과 농장은 물론이고, 농가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기존의 가로망 구조도 남아있다.
또한 망세르지-퐁뜨와즈만의 상징물인 벨베더르타워는 파리 기존의 중심축인 ‘루브루 박물관-샹젤리제 거리-개선문-라 데팡스’를 연결하는 축 선상에 있도록 계획하여 파리의 역사중심축 선상에 있도록 계획하였다.
파리의 벡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리 시는 시 외곽지대와 중심부 양쪽에서 개발의 문제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도시 기본계획에 있어서도 중대한 개념변화가 일어났다. 전후 성급히 시작됐던 외곽지대의 개발정책이 도시 인구증가와 경제논리에 편승하여 무분별하게 진행돼 가고 있어 정비가 시급했던 것이다. 또한 파리 시는 유럽의 다른 수도들에 비해 시내의 면적이 작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면 산업시설이 산재해 있던 시 경계의 마지막 언저리까지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껏 버려졌던 파리시의 동쪽 지역은 비로소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도시 중심권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벡시 구획정리지구는 Apur(Atelier parisien d’urbanisme: 파리 시 도시계획실)가 1987년에 계획한 프로젝트로 파리 동쪽 지역의 센 강 오른쪽에 접해 있는 6만여 평의 동서로 ‘긴 덩어리’ 땅이다. 북동쪽은 리옹 역으로 연결되는 기차선로로, 남서쪽은 센 강과 강변도로로, 시내 쪽은 새로 지어진 거대한 재무성 건물로, 그리고 외곽순환도로에 의해 경계가 지어진다. 이 지역은 경관이 좋을 뿐 아니라 역사적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박물관식 정원을 조성하기로 결정되었다. 도시 계획실은 오랜 연구 끝에 세 개의 중요 개발방침을 정했다. 이 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하되, 이 지역과 다른 도시구역과의 연결성을 유지하며, 주거와 시민활동과 자연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벡시 구획정리지구는 세 개의 중심지역으로 나뉜다. 센 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공원, 남동쪽의 농업 그리고 식료품 관련 비즈니스센터, 공원에 접한 북단의 1천2백 세대 규모의 주거단지가 그것이다. 단지전체의 정비는 파리 시가 대주주로 있는 SEMAEST사에서 담당했고 총 20팀의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주거단지를 총지휘했던 책임건축가 장 피에르 뷔피는 무려 4백 미터에 이르는 길이의 주거단지를 맡아 기본 모듈의 제한된 변화만으로 전체적으로 균일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각 건물의 높이, 폭, 재질과 발코니의 형태에 이르는 아주 세밀하고도 까다로운 규정을 마련했다. 또 파리 시내의 전통적 집합주거단지 형식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이 고안해 낸 주거형식을 적당히 절충함으로써 벡시가 지닌 독특함을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5. 끝맺음
시간과 공간이 맞물려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도시사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이 같은 것이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상지역을 한국이 아닌 외국, 동양이 아닌 서양으로 정한 것은 현대에 들어 동양적인 전통보다 서구화를 추구하는 주거문화의 근거지를 찾고자함에 있었다.
도시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도시는 국가적 차원이나 개인적 차원, 그 중 하나만의 요소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양방의 요구와 개입, 노력이 도시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며 발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출처 : 손세관,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 열화당, 2000
민유기, 도시이론과 프랑스 도시사 연구, 심산,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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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5.02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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