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용 전기 시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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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의 목적과 범위
2. 연구사 검토

Ⅱ. 문학형성의 요인
1. 외재적 요인
1) 동인지문학의 발전
2) 동인지《백조》
2. 내재적 요인
1) 성장배경과 생애
2) 문학관

Ⅲ. 식민지 시대의 좌절감
1. 유년회상의 퇴보적 공간
2. 낭만적 세계인식
3. 현실극복의 의지

Ⅳ. 민족적 현실 자각
1. 밝음과 어둠의 변증법
2. 유년회상을 통한 사회화
3. 민족주의 의식의 표현

Ⅴ. 결론

본문내용

이를 풋여린 마음이 수줍어 언뜻 봄이로소이다.
신부(新婦)의 고요히 휩싸는 치맛자락같이 달 잠겨 떨리는 잔살 물결이 소리없이 어린이의 신흥(新興)을 흐느적거리니 물고기같이 내닫는 가슴을 걷잡을 수 없어 물빛도 은(銀) 같고물소리도 은(銀)같은 가없는 희열(喜悅) 나라로 더벅더벅 걸어갑니다.
미칠듯이 자지러져 철철 흐르는 기쁨에 뛰여서­.
아­ 끝없는 기쁨이로소이다.
나는 하고 싶은 소리를 다 불러봅니다.
이러다 정처(定處) 없는 감락(甘樂)이 온몸을 고달프게 합니다.
그러면 안으려고 기다리는 이에게 팔 벌려 안기듯이 어릿광처럼 힘없이 넘어 집니다.
옳지 이러면 공단(貢緞) 같이 고운 물결이 찰락찰락 나의 몸을 쓰담아 주노나!
커다란 침묵은 길이길이 조으는데 끝없이 흐르는 밀물 나라에는 낯익은 별하나가 새로이
비췹니다.
거기서 웃음 섞어 부르는 자장노래는 다소이 어리인 금빛 꿈터에 호랑나비처럼 훨훨 날아
듭니다.
어쩌노! 이를 어쩌노 아­어쩌노!
어머니 젖을 만지 듯한 달콤한 비애(悲哀)가 안개처럼 이 어린 넋을 휩싸들으니.
심술스러운 응석을 숨길 수 없어 아니한 울음을 소리쳐 웁니다.
<백조(白潮)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백조》1호 (1922년 1월).
전문
앞의 시에서 나오는 ‘울음’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시를 쓴 홍사용의 눈물이다. 즉 그가 흘리는 눈물은 망국민의 한에서 여울지는 비탄의 눈물이다. 윤난홍,「1920년대 한국 현대시 연구」, 성균대 박사논문, 1987, p.42.
이러한 비탄의 눈물은 민족주의 의식의 분명한 표현이며 후기시에는 이러한 민족성이 민요시를 통해 우리전통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홍사용이 발표한 시는 초기부터 향토성이 짙게 서민들의 일생생활을 표현한 <통발>, <어부의 적>, <푸른강물에 물놀이치는 것은>, <그러면 마음대로> 등의 시가 있다. 그는 이 시들에서 구체적으로 서민의 삶과 애환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향토적으로 묘사하였다. 이시들에서 나타나는 짙은 서정성을 강조하여, 이를 식민지 지식인의 좌절감에서 비롯되는 도피의식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다. 성백원, 위의 논문, p.27.
이러한 도피의식은 유년 시절의 환상을 꿈꾸었다는 것에 근거하여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 시들에서 보이는 서민들의 생활 감정과 모습은 단지 우리 민족의 순수한 마을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며, 그 밑바탕에는 민족주의이념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홍사용의 시가 도피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고향을 떠나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으면서 까지《백조》를 창간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은 도피처의 역할도 하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즉 그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도피주의자가 아닌 독립을 향한 민족주의 이념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문인이었다.
Ⅴ. 결론
이상으로 본고에서는 1920년대의 홍사용의 시작품을 대상으로 시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고찰해보고 기존의 연구를 정리해보았다. 홍사용의 전기, 후기의 문단을 나누는 기준은 송재일, 정호창의 논저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본고의 작품은 가장 최근에 출판된 홍사용의 책에서 인용하였다. 김은철, 나는 왕이로소이다(외), 범우출판사, 2005.
또한 홍사용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홍사용의 작품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되도록 전문을 실어놓았다.
본고는 전기 시문학의 특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적립하고자 반영론적 관점에서 홍사용의 전기시가 창작된 1920년대의 시대상과 동인지《백조》에 대하여 살펴봤으며, 표현론적 관점에서 생애와 문학관을 조사하였다. 연구의 진행방향은 개인적인 사외의 인식과 민족적인 자각을 바탕으로 한 세계의 확장을 형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적인 측면과 시운동의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홍사용은 시창작에 있어 1923년에 시작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1934년에 민요조의 시를 주로 창작함으로서 성향이 다소 변화하였다. 많은 학자들이「조선은 메나리나라」를 홍사용의 문학관의 완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10년간의 공백을 1928년「조선은 메나리나라」평론으로만 설명하여 문학관에 맞추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전기시들을 한 시기로 보아 정리하여 어떤 제재, 주제,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연구하여 그 것을 바탕으로 후기의 문학이 이루어지기 위한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노작 홍사용의 시는 병적 낭만주의 또는 퇴폐적인 감상주의 소산만은 아니며 일제 간점기의 탄압의 상황에 대하여 민족적 자각과 민족주의 이념을 가지고 문학을 통해서 대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어나 정서가 눈물이나 비탄에 치우쳐 오해를 살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 사정은 당시의 검열제도 같은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홍사용 특유의 현실 대응 방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홍사용의 시속의 경험은 개인의 경험이자 민족적인 정서로 확대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문학사적 위치로 볼 때 1920년대 초 낭만주의운동의 선두에 섰던 그의 공적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홍사용의 대표적인 작품〈나는 王이로소이다〉에서 보인 ‘어머니’와 동심적 비애, 향토적 서정, 자전적 전기 등의 감상적 색채는 그의 시적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그는 이러한 비애의식을 민족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김은철, 임성조, 정삼조 등의 다양한 논문에서 그의 시에 대한 부정정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의 시에대한 평가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연구논문이외의 자료로 채택한 도서에서 1920년대 시사에서 홍사용의 위치는 부정적이고 미비하게 표현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홍사용에 대한 총제적인 시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흥보를 통해 그의 시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현대문학사에 대표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연구사에 대한 부분은 논문에 잘 정리되어 있어 접근하기 쉬웠지만 홈페이지가 닫히고 관련 책들이 모두 절판되어 연구자체에 힘이 들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노작 홍사용에 대한 저서가 출판되지 않아 안타깝다. 홍사용기념관과 함께 폐쇄된 홈페이지도 하루 빨리 재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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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2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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