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갑오경장][개혁법령과 홍범 14조]갑오개혁(갑오경장)의 의미,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과정, 갑오개혁(갑오경장)의 내용과 성과,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개혁법령과 홍범 14조,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쟁점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갑오개혁][갑오경장][개혁법령과 홍범 14조]갑오개혁(갑오경장)의 의미,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과정, 갑오개혁(갑오경장)의 내용과 성과,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개혁법령과 홍범 14조,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쟁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의미

Ⅱ.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과정
1. 제1차 개혁
2. 제2차 개혁
3. 제3차 개혁

Ⅲ. 갑오개혁(갑오경장)의 내용과 성과
1. 대외 관계 : 反淸反事大와 자주독립의 추구
2. 통치권력의 구조변경 : 왕권제한과 내각중심제
3. 경제개혁 : 재정안정을 위한 세제개혁과 차관 도입
4. 신분제도의 개혁 : 개혁의 실상과 한계
5. 교육 및 관리충원제도의 개혁
6. 군사·경찰제도

Ⅳ. 갑오개혁(갑오경장)의 개혁법령과 홍범 14조
1. 갑오개혁 개혁법령
2. 홍범(洪範) 14조

Ⅴ.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쟁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리고 확실히 자주 독립하는 기초를 확고히 세울 것. 왕실 전범(典範)을 작정하여 대통의 계승과 종실(宗室)이며 척신(戚臣)의 분의(分義)를 밝힐 것. 대군주가 정전(正殿)에 거하고 일을 보되,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재결하며 왕후와 비빈(妃嬪)과 종실과 척신이 간여함을 용납하지 않을 것.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모름지기 나누어 서로 혼합하지 아니할 것. 의정부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의 제정을 밝혀 행할 것. 인민이 부세를 냄을 다 법령으로 작정하고 망녕되이 명목을 가하여 범람(氾濫)히 거두지 아니할 것. 조세 과징과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이 관할할 것. 왕실 비용을 솔선 절감하여 각 아문 및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할 것. 왕실비 및 각 관부 비용은 일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세울 것. 지방관제를 속히 개정하여 지방관리의 직권을 제한할 것. 국중(國中)의 총명한 자제를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과 기예를 견습할 것. 장관을 교육하고 징병하는 법을 사용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정할 것. 민법과 형법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작정하고 범람히 사람을 가두거나 징벌하지 말게 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할 것. 사람을 쓰는 데 문벌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선비를 구함에 두루 조야에 미쳐 인재의 등용을 넓힐 것 등이 있다.
Ⅴ.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쟁점
갑오개혁이 타율적으로 진행되었는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진행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타율론은 일본이 제시한 내정개혁 강론을 토대로 일본인 지도에 의해 진행되었던 개혁이었으나 조선인의 무능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적인 입장에서 제시되어진 것은 자율론 인데 북한에서는 조선역사의 내재적 발전과 합법칙적 발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일반적으로 1894-1895년간의 개혁을 군국기무처 시기의 1차 개혁과 박영효 등장 이후의 2차 개혁으로 나눈다. 어떤 경우에는 전자를 갑오개혁, 후자를 을미개혁으로 부르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갑오개혁만을 개혁으로 을미개혁은 일본의 보호국화 정책으로 평가하여 제외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갑오개혁이 조선이 근대화에 기여하였는가의 여부를 떠나서 일본의 식민지 침탈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지 않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사실 어떤 연구자도 개혁 주도 세력들이 일본에 대해서 자주성을 견지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갑오개혁의 근대성을 높이 평가하는 연구자들도 문제의 복잡성, 이율배반적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군국기무처가 해산된 이후에 대해서는 갑오개혁의 범주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반면에 농민 전쟁이나 의병 연구자들은 일본이 앞잡이로 규정했고 이와는 별도로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심화되는 이정표로 보기도 한다.
갑오개혁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은 대체로 합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평가하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봉건적 지배계급 출신이라는 한계를 냉엄하게 지적하면서 변혁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위로부터의 부르조아 변혁 이외에 대안이 없었다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0,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국사편찬위원회, 2000
김혜승, 갑오개혁의 민족주의적 평가에 기초한 한말 \'민족주의의 전체상\'에 대한 재검토, 한국근대사의 시각
김운구, 조선왕조 행정사, 근세편, 박영사
류영익, 갑오경장연구, 일조각, 1990
이종항, 한국정치사, 251페이지, 1963
주진오, 갑오개혁의 새로운 이해, 역사비평, 1994
최덕수,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한국사 11, 한길사, 1994

키워드

  • 가격5,000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09.05.06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386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