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삶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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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쉰의 삶과 사상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루쉰의 생애

2. 루신의 사상에 대하여
1) 청년시기 루쉰의 민족주의 사상의 성격
2) 루쉰의 사상변화
3) 루쉰의 리얼리즘
4) 루쉰의 양심

과제를 마치며…

참고문헌

참고사이트

본문내용

중국적인 인식의 양상을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현대중국의 대표적인 정치가 모택동과 문화 거인 루쉰의 존재에 대한 중국적인의 이해를 현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루쉰의 모습은 상당 부분 모택동 정권이 정치적인 필요성에 의해 실제보다 그 존재 가치를 확대 부연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루쉰이 차지한 기존의 위상에 어떤 평가절하도 없었다. 모택동의 기념관은 고향 후난 성 (湖南省) 창사(長沙) 근교의 생가인 사오산(韶山)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두 곳에 있지만 그것은 다분히 정치성을 띠고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루쉰 기념관은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디든 있다. 심지어는 일본 센다이에서까지도 루쉰 문학 탄생의 전환점이 된 곳임을 기념하고 있었다.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곳은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그리고 잠시 발길이 스쳐간 곳은 유물로 그의 발자취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어 중국문화의 거장 루쉰의 면모를 모택동과 비교하면서 현장에서 확인해주고 있다.」 전인초유중하송영배 외 지음 『루쉰 민족혼으로 살다』p.7
이런 비교가 과연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의 루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모택동이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홍위병이라는 정권의 꼭두각시로 이용한 것에 비해 루쉰은 당시 고뇌하는 수백명의 청년들을 친히 접대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그에게 보내온 2천2백여 명 가량의 청년들(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포함하여)의 편지를 손수 읽어보고 3천5백여 통의 답장을 쓰는 정성을 보였다.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루쉰에게 보내온 한 젊은이의 편지와 그에 대한 루쉰의 답장이 있는 자료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 편지에서 청년의 고민에 대한 상담과 진심으로 그 청년을 걱정하는 루쉰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교수님이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학생들과 고민을 주고받는 화면이 떠오르면서 그 당시에도 컴퓨터가 있어서 루쉰이 이를 이용했다면 훨쒼 더 많은 수의 젊은이들의 아픔과 좌절을 편한 방법으로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고생 덜해서 폐병같은 병에 걸려 그렇게 일찍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루쉰의 창작태도는 매우 엄격해서 그때 그때 마음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글을 쓰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글을 청탁 받고 시간이 모자라 더 이상 사색할 수 없을 경우에도 그는 절대로 성의 없이 대충 글을 써보내지 않고 차라리 적합한 외국단편을 찾아 번역해 보냈는데, 번역을 함에 있어서도 적당한 자료를 찾기 위해 꽤 여러 날 동안을 많은 외국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서론에서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를 읽고도 별 감동을 받지못했다고 한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여겨진다.
주제를 루쉰으로 정하고 나서도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아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사회주의사 수업인 만큼 그의 문학작품보다는 사상에 대해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거기에 비중을 두었고, 문학작품에 나타난 중국민중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중국 민중의 정신적 불구상태를 추호도 미화함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많이씀)는 먼저 철저한 자기 부정 없이는 그 어떤 긍정적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그의 사상적 기반에 의지한 투철한 리얼리즘 정신의 반영이라 생각해 그 부분을 첨가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문학계에서 공산주의가 우세해 지는 출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루쉰의 사상변화 부분에서는 루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짓는 자료를 인용하였는데 당시 루쉰은 사회적 불의에 대한 반발로서 공산당에 입당하지는 않았지만 공산주의의 주장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생각엔 루쉰이 혁명적 민주주의자냐 공산주의자냐 라는 식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냥 조국과 민족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고유명사 표기는 원음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마오쩌둥하고 톈안문은 영 어색한 것 같아 그냥 모택동과 천안문으로 표기했다.
루쉰은 “글을 다 쓴 후에 적어도 두 번은 읽어봐야 한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는 글자와 구절, 단락들은 조금도 연연해하지 말고 삭제해버려야 한다.”고 자신의 글을 쓸때의 습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부족한 탓인지 나는 몇 번을 읽어봐도 내 글에서 그런 부분들을 잘 못 찾겠다. 분명히 내용이 중복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한 구절을 빼버리면 말이 안될 것 같고 해서 그냥 부족한데로 내려한다.
글을 다 쓰고도 이걸 과연 내가 알고 쓰는 것인지 과제니까 그냥 여기저기 책을 베껴서 내는 것인지 하는 회의가 든다. 내가 쓰고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부분은 최대한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보충했다.
참고자료
왕스징지음, 『魯迅 傳』신영복유세종옮김, 다섯수레, 1992
전인초유중하송영배 외 지음, 『루쉰 민족혼으로 살다.』학고재, 1999
왕부인지음, 『중국으 노신연구』김현정 옮김, 세종출판사, 1997
전형준 엮음, 『루쉰』문학과 지성사, 1997
성원경 지음, 『노신(魯迅) 생애와 작품세계』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전형준 지음,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창작과 비평사, 1997
존K.페어뱅크 외 지음, 『동양문화사 下』을유문화사, 1992
조너선D스펜스 지음, 『천안문』정영무 옮김, 이산, 1999
페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지음, 『케임브리지 중국사』이동진윤미경 옮김, 시공사, 2001
王除光 주편, 『중국을 움직인 30권의 책』, 이동철 옮김, 지영사, 1993
참고사이트
http://www.aladdin.co.kr/authorfile/authorfile.asp?AID=12412&UID=1348521005
http://beeryong.com.ne.kr/luxin.htm
http://reflab.snu.ac.kr/~ready4/02bookmark0007.htm
http://shinyoungbok.pe.kr/story/loosin.htm
http://myhome.hananet.net/~quan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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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06.16
  • 저작시기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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