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교수의 [교리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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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 칙령에서 디오도로스를 정통신앙의 옹호자로 칭찬하였다.
제15장 칼케톤 공회의(concilium Chalcedonese, 451)의 기독론 교리 확정
연합신경(sybolum unionis, 433)은 본래 에베소 공회의에서합의된 신경이 아니다. 공회의 2년 후에 떼오도레토스에 의해서 양측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작성되어 퀴릴로스가 찬성하므로 성립하게 되었다. 퀴릴로스는 자기의 주장대로 한 위격이 강조되고 또 그 위격이 영원한 로고스와 일치되므로 두 본성의 연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우파는 그가 연합신경을 받아들인 것에 경악하였다. 또 안디옥파에서도 퀴릴로스를 이단으로 선언하는 집단이 었었다. 그러나 퀴릴로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신학적인 논쟁이 절제되고 심한 격론에는 이르지 않았다. 444년 퀴릴로스가 죽고 그의 후계자로 디오스코로스(Dioskoros)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44-451)가 되자 그는 연합신경을 극력 반대하여 한 본성교리를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재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엽합신경을 반대하고 떼오도레토스의 가르침을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인 프로클레스는 떼오도로스의 글들에서 이단적인 가르침들을 가려내므로 연합신경에 대한 반동은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제16장 단일 본성론 논쟁과 제 5차 에큐메닉 공회의 : 553 제 2 차 콘스탄니노폴리스 공회의
칼케톤 공회의(451)의 기독론 교리 결정 후 칼케돈 신경에 대한 반대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레오 감독의 편지와 칼케돈 공회의의 교리 결정은 두 얼굴을 가진 우상으로 여겨져서 퀴릴로스의 단일 본성론을 다시 옹호하였다. 그리스도는 한 인격이므로 육이 된 한 본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성은 그 자체로는 인격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알렉산드리아 기독론의 추종자들은 칼케돈 신경은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들의 통일성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파의 대변자들은 칼케돈 신경을 거부하고 그 신경에 대항하여 백여 년에 걸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이 와서 자기들의 존립을 휩쓸어버림으로 그 논쟁이 끝나게 된다.
칼케돈 신경의 반대 세력들이 득세하여 정통파를 능가하였다. 애굽과 시리아 일부와 아르메니아 지방에서는 단일 본성론 자들이 우세하여 황제들이 협박과 양보를 하여도 그들을 정통파에로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 로마 제국의 지방들은 점점 제국과 제국 수도에서 멀어져갔고, 단일 본성론 신앙고백자들은 민족성과 결합하여 독립적인 민족 교회를 형성하였다.
제17장 단일 의지론 논쟁과 제 6 차 에큐메닉 공회의 : 680 제 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단일 의지론 논쟁은 황제 헤라클레오스 때부터 제 6 차 에큐메닉 공회의까지 계속되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신인 그리스도가 하나의 에너지를 갖느냐 두 에너지를 갖느냐, 또 하나의 의지를 갖느냐 두 의지를 갖느냐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에너지 공식의 한 의지론에 밀리웠으나 단일 의지론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신인 에너지로 구원을 이루었다는 공식이 이루어졌다. 이 공식은 아레오파지타의 권위에 근거하였다. 단일 본성론자들은 이 단일 에너지 공식을 승인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한 존재로 관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일 에너지 공식과 단일 의지론은 단일 본성론자인 세베로스가 인용하였다. 이미 536년부터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일한 일한 멘나스(Mennas)가 그리스도의 한 의지와 하나의 살리는 에너지를 고백하였다.
그러나 6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올로기오스(Eulogios, Patriarch 580-607)는 한 에너지와 의지를 단일 본성론적인 그릇된 교리라고 기술하였다. 또 유스티아노스 시대의 신학자들은 두 에너지와 두 의지를 보증하였다. 무엇보다도 레오 감독과 칼케돈 신경도 두 에너지를 인정하였다.(Chacedonese)
칼케돈 정통파는 두 에너지와 두 의지를 가르쳤다. 그러나 다른주교들은 한 에너지와 한 의지를 가르쳤다. 단일 본성론자들은 한 에너지와 한의지를 가르치고 싸웠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신학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다. 에네르게아(ενργεια)를 라틴인들은 활동으로 이해하였는데 이 에너지로 하나의 구체ㅐ적인 작용 혹은 활동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의지함을 의지능력으로 이해하였고, 의지를 실현된 원함과 특히 구체적인 의지행동으로 표기하였다. 또 반 단일 본성론자들 중에는 단일 의지론자들이 있었다.
제18장 성상숭배와 787 제 7차 에큐메닉 공회의
공교회가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들을 확정한 이후에는 신앙은 교리 공식을 받아들임으로 인정되어 신앙이 교리적 지식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백성들의 신앙은 교리지식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을 요구하였고 이것을 이루기 바란 것에로 모든 일이 진행되도록 조성되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열렬하게 바란 나머지 성물과 순교자들의 유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바란 열망에서 신비적인 신직관을 얻기에 전력하였다. 신직관에의 열망은 신비적 연합을 추구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의식이 강조되고 의식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의식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져 신화에 이를 줄 믿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아레오파지타의 신학이 영향이 컸다.
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지타의 영향이 널리 퍼져서 성찬의 요소들로 신비적인 연합을 이루어 신화에로 나아가기를 열망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육신한 몸은 신성과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몸이다. 성찬의 요소는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한 몸이다. 성찬의 요소를 받는 것은 신성과 하나로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을 받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여 성례전의 화체설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 성찬의식에서신화에ㅐ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였다.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는 길로 굳게 믿게 되었다. 이 성찬에 동참이 신적 본성에 동참하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모든 목적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동참하여 신성화되는 것이었다. 이일에 수도승들의 신학도 크게 역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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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24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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