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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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답사개요

답사에 앞서 알아본 ‘부산’

답사에 앞서 알아본 ‘북구’

자세한 일정

떠나기전에

우리가 다녀온 곳들
- 만덕동 석불사 마애석불
- 만덕사지
- 구포왜성

답사 의외의 곳들
- 금곡동 율리 패총 , 구포팽나무 , 금곡동 율리패총
- 덕천동 고분군 , 덕천동 고분군, 화명동 고분군

본문내용

피한 대한민국의 성인줄로만 알았는데, 조사후 왜군들이 대한민국을 침입했을때, 우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만든 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군들이 지은 성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고 역사적 귀중한 사료라는 말에 뭐가 그리 특별한가 이리저리를 둘러보았지만 예전의 위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여기서 출토된 유물도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고 하니 만덕사지와 함께 아쉬움이 커졌다. 이렇게 고생한 것도 있고 하니 다음에 시간을 내어 박물관에 가서 구포왜성과 만덕사지등의 출토품을 좀 구경해봐야 이 아쉬움이 풀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올라서서 쌓여있는 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성위의 언덕에서 보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금곡동 율리패총
이 유적은 1972. 12∼1973. 1월 사이에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 하였으며, 현재는 암굴만 남아 있다. 층위는 표토층을 제외하고 3개 층으로 마누어지나 층위별 윰루의 차이는 없었다. 집자리로 이용한 암굴 내부에서는 화덕자리 3개가, 암굴 외부 동쪽에는 적석유구 4개가 발견되었다. 3개의 화로자리 중 1개는 조개껍질층 위에 있었고, 2개는 조개껍질층 아래 생토층에서 발견되었다. 적석유구는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유물은 토기, 석기, 장신구 등이다. 이 패총은 겹아가리 토기의 표지유적이며, 규모는 작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암굴 주거지와 이 시대 무덤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의 주거와 무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물과 식량 자원이 풍부한 큰 강이나 바닷가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유적으로는 집터와 조개더미(貝塚), 무덤등이 있다. 이 시대의 집은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움집(竪穴住居)이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집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나 사각형이고, 크기는 직경 4~6m, 깊이 50~60cm정도이다. 집 가운데 돌이나 진흙으로 원형이나 타원형 테두리를 돌려 만든 화덕(爐址)을 설치하여 실내를 따뜻하게 하거나 음식을 조리하였다. 이외에 계단이나 경사로를 만들어 이용한 출입구와 밑이 잘린 토기를 집바닥에 거꾸로 묻어 만든 저장 시설이 있다.
구포팽나무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 309호이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남부 지방에서는 폭나무, 포구나무 등으로 불린다. 나무가 매우 크게 자라며 옛날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른 비보림(裨補林)이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으로 많이 심었다.
부산 구포동의 팽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8.2m, 둘레 5.74m이다. 구포역에서 백양산 방향으로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줄기 아래쪽에 기이하게 나온 돌기와 여러 갈래로 발달한 가지가 웅장함을 보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나무로 신성시되어 왔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부산 구포동의 팽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금곡동 율리 패총
이 패총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위 그늘 주거지이다. 바위 그늘은 너비 255cm~270cm, 깊이 약 230cm, 높이 약 200cm 내외로 사각형에 가까워 하나의 방을 연상케 한다. 집자리로 이용한 암굴 내부에는 화덕 자리 3개가 층위를 달리하여 발견되었다. 패총은 화덕자리가 있는 바닥으로부터 굴 앞쪽에 이르는 9*8m 가량의 면적에 조개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나온 유적으로는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갈아서 만든 화살촉과 끌, 바퀴날도끼, 삼각형 돌칼, 숫돌, 연옥제의 목걸이 등이 있다. 출토된 유적으로 볼 때 이 패총은 신석기 시대 말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화명동 고분군
부산시 북구 화명동 일대 이곳에 옛 무덤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도굴꾼들에 의해 파헤쳐진 묘소의 부장품 조각들을 보고 알 수 있었으나 학계에서는 1972년에 정식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고분은 동산의 능선을 타고 군집하여 있었는데 산의 능선에 무덤을 안치하는 것이 가야묘제의 특색이므로 이곳이 가야 문화권에 속한 것임을 우선 알 수 있었다. 이 고분군은 대부분 파괴되어 남아 있는 유물은 많지 않지만 7기의 무덤이 발굴되어 석실 구조와 함께 유물의 출토 상태를 분명히 알 수 있어서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 대단히 귀중한 것임이 밝혀졌다. 화명동 고분군 7기중에서 5호분의 무덤은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수혈식 석실묘로 만들어진 시대는 4세기 중엽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묘제의 등장과 함께 토기 문화의 정착을 나타내 주고 있는 석실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화명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고배, 소형토기 등은 고식 도질토기 문화의 2단계 전형적인 유물로 판정되고 있다. 화명동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들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덕천동 고분군
낙동강 하류의 동안, 부산 동래구와 북구를 경계하는 금정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데, 강과는 불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당시 이미 유적지의 일부가 잘려 나갔으며, 남은 부분도 조사 결과 장기간에 걸쳐 도굴되어 원형을 간직한 유구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조사된 69기의 고분 중 9기만이 구덩식돌방무덤이었으며, 나머지는 앞트기식 돌방무덤이었다. 특히, 평면 구조가 장방형인 수혈계 앞트기식돌방무덤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 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깊이 파서 양쪽의 긴 벽과 관벽을 할석으로 쌓아올리고 뚜껑돌을 덮었으며, 뚜껑돌과 돌방의 상단 벽은 지표 위에 드러나게 축조한 반지상식 이다. 이들 고분의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진 것도 있으나 거의 전면에 작은 할석을 깔아 주검받침을 마련한 것이 많으며, 특히 여기에서는 시상을 추가 설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정확한 추가장의 횟수가 밝혀지기도 하였다. 또한 앞트기식돌방무덤의 딸린 무덤으로 추정되는 소형의 석실도 2기가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은 적은 편으로, 토기류 철기류가 주류를 이루며 장신구 방추차도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아 이 고분군의 연대는 6세기 중엽~ 7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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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9.28
  • 저작시기2009.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4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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