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혁명관에 대하여(클로드 마조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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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새로운 혁명관에 대하여(클로드 마조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8장 새로운 혁명관에 대하여(클로드 마조릭)

1. 퓌레가 본 혁명의 원인들

2. 세 혁명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그리고 일탈

3. 리쉐가 본 혁명의 측도(側道)

4. 열월의 반동과 무월의 쿠데타

5. 새로운 해석인가 아니면 새로운 편견인가?

본문내용

의 관점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나쁜,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는 직접적으로 이로운 1789-91년의 타협은 끝내 법적으로 지배적인 사회세력인 귀족을 청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초기에 반혁명은 국외에서 혁명과 싸우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반혁명은 오직 새로운 정치구조의 내부에 자리를 잡고 부르주아지가 요구하는 국가의 조직화운동을 억제하려는 시도에서 행동의 기회를 발견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국왕의 탈주사건은 그런 환상을 깼다.
바로 그런 점에서 특권계급이 봉건적인 사회관계의 불가피한 소멸과 부르주아적인 사회관계로의 대체를 억제하거나 그 의미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조정의 정체가 드러난다.
반혁명의 다양한 경향들은 그것이 출현하는 계기에 따라 그것이 계획된 반동에 부여하는 한계에 따라 규정된다. 결국 대외 전쟁에의 호소는 보다 잘 대응하기 위해 점점 불리해져 가는 타협을 받아들이고 끝내는 혁명과정의 예측 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 체제가 지녔던 논리의 결과였다. 우리는 마티에즈, 르페브르, 고드쇼, 소불의 뒤를 이어 대외전쟁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로 이제까지 사회경제적 구체제에 대항하여 결합하였던, 그러나 독자적 방식으로 행동했던 혁명세력들이 그들 사이에 깊은 통일성이 있음을 확인할 기회를 발견했던 것이 바로 방어전쟁이었던 것이다. 국민의 혁명, 그 혁명에서 이득을 본 모든 사람들의 조국, 이런 것이 혁명력 2년 사회 정치적 언어의 주된 내용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이 설사 혁명의 이른바 일탈의 자연적인 구성요소라 할지라도 그것의 원인이라 확언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설사 우리가 8월 10일 사건 이후의 혁명이 ‘비참함과 분노의 어두컴컴한 힘의 혁명’에 불과함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외 혁명에서 비롯된 절대악의 보상물로서 덕의 숭배가 끝내 비관주의로 흘러야 했는지 어떻게 타락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이 이해관계와 효용성이라는 새로운 도덕에 의해 세속화된 형태로 중세적 공동체와 박애가 깨어졌다는 의식과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생-쥐스트의 표현을 따르면 왜 혁명이 동결되었는지 열월 9일 사건 이후 왜 로베스피에르 파가 무력했는지 그 사건이 왜 돌이킬 수 없는 속성을 지녔는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 점에서 패배의 원인을 그 비극적인 날 저녁 앙리오의 군대를 흩어지게 했던 천둥과 비바람에서 구하는 것이 오히려 보다 설득력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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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2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9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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