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론 시험대비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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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소설론 시험대비 요약정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약술>
1. 소설
2. 중국소설
3. 한국소설의 변화
4. 고전소설의 독자
5. 이야기꾼(강독사, 강담사, 강창사)
6. 세책업(세책가)
7. 방각본
8. 고소설 책의 형태

*고전소설발달사
1. 구비서사문학 시대(1~9세기)
2. 열전․문헌설화 시대(10~12세기)
3. 고려후기(13~14세기)
4. 조선전기의 소설

<서술>
1. 최치원은 왜 설화가 아니라 전기소설인가?
2. 「최치원」의 작자 문제
3. 원생몽유록의 작자문제
4. 설공찬전이 금서가 된 이유(필화사건)

본문내용

이다.
둘째, 박인량 작자설은 최치원이 「최치원」을 지었을 리는 없다, 즉, 그 내용으로 보아 최치원 자신의 창작일 수는 없으므로 훗날 증보 작업을 한 박인량이나 김척명이 작자일 가능성이 있는데, 작품의 빼어난 문장을 염두에 둘 때 그런 글을 지을 만한 사람은 박인량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박인량 작자설의 중요한 근거이다.
셋째, 최광유 작자설은 나말여초를 살았던 육두품 출신의 문인 지식인이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하며, 그 문인은 최치원보다 한 세대쯤 뒤의 후배였으며, 혼란스러운 사회 현실 속에서 최치원에 공감하는 인물이 아닐까하는 설이다. 「최치원」의 주인공인 '최치원'의 고독감과 우수, 그의 염세적 태도에 깊은 공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작품의 말미에 붙이 무려 63구나되는 장편 고시는 여간한 문재로는 짓기 어려운 수작이라는 점, 작품의 결미에서, "최치원이 심은 모란이 지금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 등이 그 근거이다. '최치원이 심은 모란이 지금도 남아있다'라고 말한 점을 보면 원작에 누군가 덧붙였을 텐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사람은 최치원의 집 안 사람으로서 최치원의 처지를 잘 이해하면서 그에 공감하고 있던 당나라 유학생 출신인 최광유라는 주장이다.
<최치원>은『대동운부군옥』에서는 <선녀홍대>로, 『태평통재』에서는 <최치원>으로, 『육조사적편록』에서는 <쌍녀분기>라는 표기로 쓰고 있다. <최치원>에 대해『태평통재』와 『대동운부군옥』은 '출 신라 수이전'이라 하여 출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수이전의 작자는 최치원 또는 김척명이거나 박인량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삼으면 <최치원>전은 최치원이 살았던 시기인 신라 말엽에서 박인량이 살았던 시기인 고려 초에 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3. 원생몽유록의 작자문제
「원생몽유록」은 이본에 따라 작자 표지가 서로 달라 임제 이외에 김시습 원호 등이 작자로 비정되고 있다.
먼저, 임제 설은 첫째, 이본 중 일부가 ‘임제소기’라고만 쓰고 있을 뿐 ‘임제 작’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있어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지만 그러나 작자를 밝히고 있는 이본 중 많은 수가 임제를 작자로 나타내고 있다.
둘째, 황여일의 『해월문집』에 「원생몽유록」에 나오는 해월거사의 시와 논평이 ‘제임백호원생몽유록’, ‘서임백호원생목유록후’라는 제목으로 각기 실려 있어 임제가 지었다는 설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시 되고 있다.
셋째, 북한의 『화몽집』을 보면 작품의 끝에 "해월거사=임자순"이라고 적혀있는데, 자순은 임제의 호로, 임제가 해월루를 자주 찾기 때문에 적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로 보았을 때 현재 임제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김시습 설은 첫째, 이본 중 일부가 매월당 김시습을 연상시키는 ‘매월거사(梅月居士) 식’의 형태로 끝나기 때문에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견해도 작품 속 자허의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이 매월거사(梅月居士)가 아닌 ‘매월거사(海月居士)’로 되어 있는 이본도 상당수 있으므로 근거가 미약하다.
둘째, 사상적 주조가 금오신화 중 <남염부주지>와 유사하고, 금오신화 다섯 편의 문체와 <원생몽유록>의 문체가 닮았다고 하여 김시습을 작가로 보는 경우가 있다.
셋째, 남효온은 세조의 정권을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남효온을 복건자로 보았다. 이러한 남효온은 김시습과 함께 생육신에 해당하므로 관련이 있는 김시습이 지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호로 본 것은 첫째, 주인공인 원자허의 ‘자허’가 원호의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비판적 속내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내용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노출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즉, 해월거사가 해월 황여일이 맞다면, 작품의 내용이 알려졌을 경우 생명까지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기에 등장인물 해월거사는 허구적 인물이라는 견해이다.
둘째, <원생몽유록> 말미에 실려 있는 부기에 원호가 그 작자로 명시되어 있는 책이 있다.
하지만 원호 설의 비판을 보면, 원호는 15C사람인데, 초간본은 19C에, 중간본은 20C에 나왔으므로, 그 기간이 몇 백년이 된다는 점으로 보아 근거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4. 설공찬전이 금서가 된 이유(필화사건)
<설공찬전>의 내용을 보면, 설충란에게는 남매가 있었는데, 딸은 혼인하자마자 바로 죽고, 아들 공찬도 장가들기 전에 병들어 죽는다. 딸의 혼령은 설충수의 아들 공침에게 들어가 병들게 만든다. 설충수가 방술사 김석산을 부르자, 혼령은 공찬이를 데려오겠다며 물러간다. 곧 설공찬의 혼령이 사촌동생 공침에게 들어가 왕래하기 시작한다. 설충수가 다시 김석산을 부르자 공찬은 공침을 극도로 괴롭게 하는데, 설충수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자 공침의 모습을 회복시켜 준다.
필화사건이란 말 그대로 글 때문에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하는데, <설공찬전>이 그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설공찬전>이 금서가 된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내세웠는데, 불교의 윤회하복 사상을 주요 소재로 한 <설공찬전>은 무당이 나와 귀신을 퇴마한다는 불교적 내용을 담고 있어 나라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즉,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백성들을 현혹했다는 점에서 위험스러운 소설로 인식되었다.
둘째, 당시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였는데, <설공찬전>은 유교의 정신인 '남존여비'를 부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성리학적 사회질서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무리 여자라도 각자 제 능력만 있으면 제 소임을 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금서가 된 것이다.
셋째, 그 당시 중종과 훈구세력들은 다 반역자였다. 그런데 <설공찬전>은 비록 임금일지라도 반역자는 모두 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대목은 채수가 중종과 훈구세력들에게 던지는 경고장이기도 하였다.
넷째, 저승의 염라왕을 중국 황제보다도 높은 최고의 지위로 파악한 점은 국왕 중심의 현실 정치, 나아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비판한 것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설공찬전은 민심을 어지럽게 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정해지고 모두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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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20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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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6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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