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형성][유럽의 유래][민족 이동]동서 유럽 형성과 민족의 이동, 비잔티움제국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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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 형성][유럽의 유래][민족 이동]동서 유럽 형성과 민족의 이동, 비잔티움제국 심층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동서 유럽 형성과 민족의 이동
유럽론
1) 유럽의 유래
TIP. 지리로 본 유럽
TIP. ‘통일성의 유럽’
-유럽의 형성
-게르만족의 생활상
민족의 대이동
1) 이동 과정과 유럽의 재편
2) 의의
TIP. 게르만족 이동 후 이탈리아 풍경
-카롤루스의 크리스트교 제국 또는 크리스트교 공화국
-바이킹
-비잔티움제국
1) 제국의 평가와 의의
2) 비잔티움 존속의 힘, 경제
TIP. 그리스의 불
-동유럽 여러 나라
-슬라브족
-그리스 정교에서 러시아 정교로
-몽골의 지배와 러시아 사회의 변화

3. 참고문헌

본문내용

. 10세기 게조 대공은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여 아들 바이크를 세례받게 해 이슈트반(스테파누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이에른 공작 딸과 정략결혼을 통해 서유럽과 연대를 강화했다. 독일 황제와 교황 실베스트르 2세의 인정을 받아 1001년 1월 1일 왕으로 등극했다(이슈트반 1세). 신성로마황제에게서 왕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 이른바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 독립의 상징이 되었다.
슬라브족
스클라부스(sklaus)라는 단어는 6세기에야 라틴어에 등장한다. 이 단어는 슬라브어로 ‘명성’ 혹은 ‘구원’을 의미하는 민족 명칭 슬라바(slava)로 사용되었다. 전투력을 구비하여 종종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슬라브족은 동로마제국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때로 전쟁 포로와 가족에 의해서 팔려서 노예가 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이 용어가 유래했다.
현재 동유럽과 북아시아에서 생활하며, 러시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옛 유고슬라비아연방·불가리아의 주된 민족이다. 다시 동슬라브(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백러시아인), 서슬라브(폴란드인·체코인·슬로바키아인 등), 남슬라브(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마케도니아인·몬테네그로인·불가리아인)로 나뉘며, 약 1000만의 슬라브계 주민은 남·북 아메리카 등지에 살고 있다.
그리스 정교에서 러시아 정교로
945년 비잔티움과 러시아의 통상조약 체결, 955년 키예프 대공비 올가가 비잔티움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에게 세례받음, 980년 블라디미르의 거국적 개종, 이것이 비잔티움과 러시아와의 만남이었다. 러시아의 크리스트교 개종으로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생겨나고, 성직자들은 종교문제는 물론 도덕이나 가족관계와 관련한 사건에서 사법권을 행사했다. 정식 교육이 실시되고 러시아어 문학도 나타났다. 비잔티움 양식이 도입되고 모방되었으니 성소피아 성당은 대표적이다. 하지만 러시아교회는 독립적이었다. 가톨릭이 라틴어를 고집한 것과는 달리 예배에서 그리스어를 고집하지 않았다. 러시아 성직자는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었고, 러시아문자의 기초도 놓일 수 있었다.(키릴문자)
15세기에는 러시아의 황제 이반 3세가 스스로를 차르(Czar-Caesar에서 비롯된 말)라 일컬으면서 멸망한 비잔티움 황제의 후계자를 자처하였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는 그리스 정교의 중심지로서, 이른바 ‘제3의 로마’라고 불렸다. (이후 러시아의 팽창은 로마계승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몽골의 지배와 러시아 사회의 변화
몽골은 키예프 러시아의 유산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렸다. 키예프 시대의 찬란한 문화는 그 뿌리를 잘리고 문화의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도시와 마을의 파괴는 산업의 기반을 뒤흔들어 발달한 상업과 수공업을 소멸시키고 러시아를 농업 일색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몽골 지배하에서 러시아는 북부, 남서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역이 크게 쇠퇴하여 토지 경작이 유일한 주산업인 나라로 변했다. 더구나 혹독한 기후와 황폐한 땅에서 농업을 정착, 발전시키는 것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한 역사가는 몽골의 수탈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 거대한 기생충이 러시아 민중의 생체에 달라붙어 그 즙을 빨아먹었다. 그리하여 그 생명력을 고갈시켰고 때때로 그 생체 안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켰다.” 농민들의 지위는 계속 악화되어 점점 더 지주에게 예속되어갔다. 그와 함께 여러 단계의 군신 관계가 형성되면서 귀족들의 봉건제후화 경향도 강화되었다.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거치면서 봉건제하의 중세 유럽과 비슷한 사회구조를 갖게 된다.
몽골 지배하에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것은 러시아 교회였다. 가혹한 지배자였던 몽골인도 종교에 대해서만은 매우 관대했다. 교회와 수도원은 면세특권을 부여받았고, 재산도 보호를 받았다. 러시아의 여러 공(公)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대가로 교회에 많은 재산을 기증했다. 몽골 지배 말기에 이르면 경지의 약 1/4이 교회의 소유가 된다.
3. 참고문헌
만프레트 마이, 유럽의 역사, 웅진지식하우스, 2008.
윌리엄 랭어,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푸른역사, 2001.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이산, 2007.
윌리엄 맥닐존 맥닐, 휴먼웹-세계화의 세계사, 이산, 2007.
에릭 힐딩거, 초원의 전사들, 일조각, 2008.
자크 르 고프, 유럽역사 이야기, 새물결, 2006.
장-바티스트 뒤로젤, 유럽의 탄생, 지식의 풍경, 2003.
진원숙, 서양사이야기1, 신서원, 2003.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까치, 2001.
한국일보 타임 라이프, 비잔티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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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9.12.02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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