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창조주의 하나님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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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스라엘에서 우상을 만들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은 하나님은 살
아계시는 분이시 때 정체적인 형상으로 제한시킬 수 없다고 본 데 있다. 이
스라엘이 알게 된 하나님은 인간 역사 속에 깊이 개입하시어 출애굽의 구원사건
을 이룩해 주신 분인데 그분을 어떻게 하늘, 땅, 지하세계 그 어느 피조물의 모
습으로도 나타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폰라드는 이스라엘이 이해하는 역사의 하
나님은 우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애매하며 변화성이
많은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을 미래로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은 결코 고정된 형상
으로 제한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해릴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
나님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제의의 어떤 것도 그분을 나타낼 수 없고 단지 살아
있는 인간만이 그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제 4계명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과업을 마치시고 쉬셨으니까 그의 백성도 그
날에는 쉴 특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날은 하나님이 하신 사업을 명상
하며 인간 삶의 의미를 반성해 보는 귀중한 때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계명부터 열번째까지는 주로 사회 및 인간 가족 상호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다.
첫째에서 넷째를 신과 인간과의 수직적인 계명이라면, 다섯째에서 열번째까지는
평면적인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한 사회가 노약자를 돌보아주듯이, 자녀들은 그
부모를 공경함으로써만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
프 바르트는 이 계명이 단순히 부모 공경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
는 이들, 즉 가난안 사람, 억압받는 자, 과부와 고아, 나그네까지 돌보라는 의미
로 확대 해석하여 이 계명은 그들을 단지 동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 사
회 구성원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법 이해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윤리 행동 강령을 규정하는 도덕적인 법으로 이해하지 않
고, 이스라엘 역사의 한 특수 지점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기
위해 계시하신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폰라드는 십계명이란 야웨께 속한 사람
이 따라가야 할 넓은 삶의 자리에 서 있는 몇 개의 노정표들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는 하나님의 전체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도하며 이끌어나가기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토라
는 결코 고정된 법전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하님의 백성을 대
하는 것은 달라질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들
을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하는 것이 곧 토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폰라드
는 토라의 삶을 정황(Sitz im Leben)은 고정된 제의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구약성서에서 계약을 맺는다는 표현은 "계약을 자르다"로 나타내고 있다. 히브
리어의 berith는 아카지안어의 biritu(쇠고랑)에서 왔다고 본다. 계약을 맺는다
는 것은 쇠고랑을 함께 참으로서 계약 당사자간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것이다.
시내 전승과 출애굽 전승
시내산 계시를 살펴 보면서 한가지 느끼는 것은 구약의 하나님 법이란 것을 이
스라엘의 구체적 공동체의 계약적 삶과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리스도인이 신약적 견지에서 구약의 법만 보고 그 법의 구체적 시혜의 대상자
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라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시내산의 법은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선민으로삼고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주신 사랑의 선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앙으로 이 법을 받고 계약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진노하는 하나님이며 또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을 텅해 이집트
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다음에 그들에게 법을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
백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6.광야의 기적
광야의 랑데뷰
야웨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난 곳은 시내 사막이다. 야웨와 이스라엘과의 광야
에서의 랑데뷰는 광야가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이며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싹텄던
곳이다.
광야에서의 불평
우리는 광야가 갖는 신학적인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하나
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광야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던 불평의 장소라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근정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못 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40
년간을 지탱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새롭게 꺼닫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광야에서의 기적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다.
만나 기사는 결국 하나의 자연적인 사건을 야웨의 일상적인 돌보심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Smart)는 "그것들은 자연적인 사건이며 또 동시에
초자연적 사건이지만 자연적 역사 환경이나 결과에서 결코 분리된 것은 아니다"
하고 말한다. 광야의 기적은 인간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앤더슨(Anderson)은 신앙인은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표시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나 기사 같은 것도 실상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자연적
인 현상일지라도 그성을 신앙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하나님 임재의 표시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광야의 의미
탈몬은 이 광야 모티프를 새롭게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농경 문화권 속에 각
종 위험과 유혹의 시련을 당하는 그 삶의 현장, 즉 실존적인 삶의 정황에 하나님
은 농경 문화의 자연의 신이 아닌 역사적 신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은 그들 매일매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성에 부딪쳐 온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거쳐야 했으며, 이곳은 그들에
게 많은 깨우침을 준 곳이다. 브루거만은 그리스도교인의 생활 역시 거짓된 이집
트의 안전을 버리고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광야의 삶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버리고 가나안
복지의 참 자유를 얻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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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14
  • 저작시기2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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