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 과 ‘언(言)’의 정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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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간언이 정치적 기능을 하게 된 배경

3. 세종이 생각하는 간언(諫言)

4. 미래지향적인 군주

5. ‘협의’의 정치

6. 맺음말

본문내용

諫言)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그 사회가 밝아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국왕의 치적은 이를 이루어 내기까지 질책과 권고와 직언을 아끼지 않은 신하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 이전에 그 따가운 말들을 정연히 받아들일 줄 아는 국왕으로서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종은 사사로운 신하들의 말도 버리지 않았으며 공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협의와 토의를 강조한 국왕이었다. 당시 국왕은 하늘과 같은 존재로 일반 백성들과는 마주하기는 커녕 입에 담기조차 엄숙하던 시대에 ‘민’들의 의견까지 수렴했던 국왕이었다. 그는 신료들 뿐 아니라 민심을 바로 알아서 공론을 펴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간언하는 언관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 간언을 받아들이는 왕과 그 신하 모두 식견과 도량을 갖추고 있을 때 가능 한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김대중 대통령 때 한 의원이 “대통령께 간언을 드렸는데 그분이 남의 말 듣기를 싫어하셔서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질책 후 당시 당의 혼선 정책과 오류에 대한 내부 비판을 쏟아낸 적이 있다. 간언을 듣지 않는 지도자, 그리고 대통령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라는 의원의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고 느꼈었다.
적어도 대통령은 의원들과 함께 공치를 해나갈 생각이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의원은 서로를 남이라고 표현하며 받아주길 원하고 말하는 건지,, 도무지 상식 밖의 일들이 통치자층에서 일어나니 국민들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들이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차원자체가 조선시대 국왕과 관료의 발끝에 조차 미치지 않아 보인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해야 언론의 이슈가 되고 기득권 집단들이 그나마 꿈쩍이라도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조선시대 신하들은 그 진실 된 마음을 전하고자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한자 한자 써내려갔으며 이것은 국왕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무소불위의 자리에 있는 국왕이 그 많은 간언을 듣는 것 또한 어느 정도 도량의 경지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는 위대한 왕이었다. 단순히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단한 인격자이며 걸출한 인간이었으며 협의를 이끌어 낼 줄 아는 민주적인 지도자였다. 왕이기 이전에 훌륭한 학자였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였으며 공평무사한 판관이기도 했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에 그는 그 모든 것을 추진한 주체였다.
신료들의 간언에는 이미 신중을 기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번 더 생각할 줄 아는 왕이었고 신료들 간에 협의를 이끌어 준 지도자였다. 고금의 치적을 본받는 자세를 가졌으며 그것으로서 앞날을 내다보는 준비된 왕이었다.
얼마 전,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편지로서 상소문을 올렸었다. 한 농부의 간언을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 신건지, 벌써 잊으신 건 아닌지, 간언에 대답하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건지 궁금할 뿐이다.
21세기, 숨가쁜 현실의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사회를 이끌어줄 제 2의 세종이 나타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키워드

세종,   세종대왕,   간언,   정치,   국가경영,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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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16
  • 저작시기2006.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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