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대사 (근대사,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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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국 변화의 특징

2. 중국 변화의 단계
- 제1단계 (1949년~1956년)
- 제2단계 (1957년~1966년)
- 제3단계 (1966년~1976년)
- 제4단계 (1976년~ )

3. 중국의 당대사

4. 천안문 사건과 3개 대표론
- 천안문 사건
- 3개 대표론

본문내용

에 입각한 지역 차별적인 정책은 계층간의 불평등과 지역간 불균형을 초래하였고,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나 실업문제가 양산되었으며, 공직자들의 부조리와 정치적 비민주성들 또한 문제점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4. 천안문 사건과 3개 대표론
- 천안문 사건
1989년 6월 4일 미명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당시 베이징에서는, 그해 4월 15일 호요방이 사망한 후, 방여지 등 지식인을 중심으로 호요방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은 노동자와 지식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시민층을 대표하여 5월 13일 이래, 베이징대학과 베이징사범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학생대표들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연좌시위를 계속했다. 5월 15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17일 발생한 100만 명이 넘는 대규모시위로 일정을 변경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당국은 학생들의 시위를 난동으로 규정, 베이징시에 계엄을 선포했다. 한편, 학생들의 요구에 유연한 대응을 보이던 공산당 총서기 조자양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의 해임설이 떠도는 가운데, 등소평의 후계자로 알려진 양상곤 국가주석과 이붕 국무원 부총리 등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6월 3일 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 무차별 발포로 천안문 광장의 시위군중을 살상 끝에 해산시켰으며, 시내 곳곳에서도 수천 명의 시민, 학생, 군인들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죽거나 부상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국과 소련의 수뇌회담 취재차 입국했던 외국 기자들에 의해 즉각 전 세계로 보도되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는 이와 같은 비인도적 처사에 항의, 강력한 비난성명을 냈다. 이 사건 이후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천체물리학자 방여지는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 사건 이후 중국 지도부는 반혁명분자에 대한 숙청, 개인숭배 조장, 인민들에 대한 각종 학습 등 체제굳히기와 함께 개방정책 고수를 천명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확립을 내세우는 등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여왔으며, 특히 동유럽의 민주화 물결을 극복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 3개 대표론
중국공산당은 선진사회 생산력, 선진문화 발전,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적이었던 자본가와 지식인을 품안에 끌어들이겠다는 내용으로 중국공산당을 유럽식 사회민주당 또는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정치개혁의 맹아가 내포돼 있다.
선진생산력 발전요구란 3개 대표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진생산력 발전요구이다. 선진생산력은 바로 물질적 부와 정신적 부를 형성한다. 따라서 당은 생산력의 해방과 발전을 추진하여 인민의 생활수준을 부단히 향상시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해야 한다. 이러한 생산력발전의 추진을 위해 경제건설의 중심과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선진문화 발전요구란 선진문화 발전요구는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을 강화하는 지도 사상이다. 선진문화는 인류 문명의 진보적인 결정체로 정신적인 동력과 지력·기술의 총체이다. 또한 선진문화는 건설적이며, 과학적이며, 미래지향적이며, 사회 전진적인 문화를 향상시킨다. 이러한 선진문화 발전을 위해 선진적인 사상도덕문화와 과학기술문화가 요구된다.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이란 선진생산력 발전요구, 선진문화 전진방향은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과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다. 그 중 3개 대표론을 관통하는 것은 인민의 광대한 이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민대중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을 계속해서 향상시키고, 인민에 대한 복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3개대표론은 표현을 바꾸어 말하면 중국공산당은 공산당의 교리나 강령에 묶여 중국의 국가로서의 선진화나 다양한 선진문화유입에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중국공산당은 노농계급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당에 머물지 않고 중국선진화에 이바지한 민간 기업가들에게 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당, 즉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이익대변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그것이 공론화되면서 공산당 내 보수파에서 적잖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는데, 우선 당내 보수파 거두인 화국봉은 당의 변질에 격분, 공산당 탈당을 선언했고 같은 보수파의 등려군도 강력 반발하였. 그러나 강태민은 그의 유명한 ‘위스쥐진’, 즉 시대의 흐름에 앞서지도, 뒤지지도 말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가야 당이 산다면서 3개 대표론에 대한 당내지지를 호소했고, 마침내 작년 제16차 당 대회는 중국공산당의 당 이론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주의, 등소평 이론과 더불어 강태민의 3개대표론을 당 이론의 하나로 채택하였다.
3개 대표론은 지금까지 공산당이 무산계급이라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대표해 온 기존의 성격에서 탈피하여 자본가를 포함한 광범위한 계급과 계층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정치적으론 앞으로도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계속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성장의 엔진인 민간 기업인, 자영업자, 전문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려고 하는 중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대만과의 이념적 갈등을 다소 완화시켜 양안 관계 개선에 일조할 수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대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긴 하지만 대만과의 다른 그들의 체제 속에서 발생하는 이념적 갈등 속에서 점점 변화해나가는 모습은 분명 양안관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최고의 자리에 앉아 권력은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 의해 주어지는 권위는 총구나 공식적 지위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택민이 명실상부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긴 했지만 ‘과거 모택동 등소평과 같은 그런 권위는 없었다.’ 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 때문에 고심하고 이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3개 대표론이 나왔다고 본다면 어느 정도는 사상적 지도자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고 여겨지지만, 이것은 여전히 후진타오 및 차기 중국을 이끌어 갈 세대들에게 큰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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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06
  • 저작시기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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