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리더십의 역사적 배경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목회 리더십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 배경
영적 권위를 기반으로 한 은사 중심의 리더십
교육 중심의 리더십
평신도의 은사(재능)를 활용하는 리더십
선교(전도) 지향적 목회 리더십
목회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상담 중심의 리더십

본문내용

다. 정상운, 배본철, 「세계교회 인물사」 194~195.
웨슬레는 잉글랜드 출신이었지만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웨일즈까지 구별하지 않고 다니며 복음을 증거 했는데 1790년 10월 7일 최후의 설교를 하기까지 51년간 그는 하루 평균 90마일 이상을 말위에서 보내야 했고, 일주일에 평균 15회 이상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의 복음 전도형 리더십은 개개인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부패한 영국 사회를 갱신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고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 많은 면에 있어서 유럽 전역에 새로운 이상을 보여 주었다. 웨슬레의 복음 전도의 영향으로 감리 교회가 나왔다.
목회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상담 중심의 리더십
근대 교회에서 현대 교회로 이어지는 전환기에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YMCA와 주일학교 운동가, 문서 전도자, 설교자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거듭난 체험이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시작한 무디는 1860년부터 교회를 설립하여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터로 달려간 무디는 군인 교회에서 1500여 차례 설교하였고 1870년부터 찬양사역자 생키를 만나 미국은 물론,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캐나다 등을 순회하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무디는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사역하므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복음을 전했고 19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837년 2월5일 미국의 동부 메사츄세스의 노스필드(Northfield)에서 태어난 무디의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매우 불행하였다. 그것은 석공으로 일하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었는데 무디 역시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1846년부터 그는 조그만 잡화 상점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무디는 신문사, 제화점 등에서 일하면서 자기의 앞날을 헤쳐가야만 했다. 정상운, 배본철, 「세계교회 인물사」, 215~216
1854년 무디는 보스톤에 있는 사무엘 홀톤(Samuel Holton) 삼촌의 제화점에서 일하기 시작 하는데 그곳은 무디의 삶에 있어 일대 전환점을 가져다 준 곳이다. 삼촌은 어린 무디를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제화점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교회의 출석과 특히 주일학교의 출석을 요구하였다. 무디는 삼촌의 인도로 마운트 버논 회중교회(Mount Vernon Congregational church)와 그 교회의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무디는 주일학교에서 킴볼(Edward Kimball)이 가르치는 반에 배치된다.킴볼은 리더십이 뛰어난 교사로 종종 젊은이들을 회심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킴볼은 무디가 성경지식이 빈약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을 알고 무디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보혈과 사랑을 가르쳤다. 어느날 킴볼은 새 제자인 무디에게 그의 영적 상태에 대해 말해 주기로 작정했다. 1855년 4월 21일, 교사 킴볼은 홀톤의 제화점에 무디를 찾아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이야기 했고, 무디의 자세는 진지했다. 무디는 교사 킴볼의 목회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상담의 지도력으로 회심하게 되었고 무디는 그날의 고백을 “내가 회심했던 그날 아침 밖으로 나가서 만물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을 비추는 밝은 태양이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 소리도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고 하였다. Arthur P. Fitt, The Life of D.L. Moody 「무디의 생애」, 서종대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26.
그날 저녁 하숙집에 돌아 온 무디는 노스필드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로부터 처음 세상에 태어난 날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월 21일은 제가 성령으로 거듭난 날입니다.” http://kr.blog.yahoo.com/mokpojsk/1882 인용.
자신에게 맡겨진 주일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식을 줄 몰랐던 킴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담당하던 주일학교 반에 무디가 들어왔을 때 영적으로 그 심령이 그렇게 어두워 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 진리에 대한 명확하고 단호한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고, 더욱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적으로 쓰임 받는 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Arthur P. Fitt, The Life of D.L. Moody 「무디의 생애」, 서종대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28.
가난하고 무지했던 제화점 청년 무디는 목회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상담의 리더십을 발휘한 교사 킴볼의 리더십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새 역사의 주역으로 준비된 것이다.
유재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55년 킴볼이라는 주일학교 교사가 보스턴에서 무디를 그리스도에게 헌신케 했다. 1879년에 무디는 영국에서 설교하면서 한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프레드릭 메이어 목사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메이어는 미국의 어느 대학교로부터 초대를 받아 설교하다가 일버 채프먼 이라는 학생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채프먼은 YMCA 사역을 하면서 빌리 선데이 라는 야구 선수를 만나게 되었고 선데이는 노스케롤라이나 주의 샤롯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그곳에 참석한 몇 명의 사업가들이 다시 전도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고 모디케이지 햄이라는 전도자를 초빙하였다. 햄이 인도하는 집회에 빌리 그래이엄 이라는 젊은이가 참석해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되었다. 1855년 킴볼이라는 무명의 교사가 무디를 전도하면서 시작된 연쇄 반응이 빌리그래이엄까지 이어졌다. 유재덕, 「재미있는 교회사」 (서울: 작은행복, 2001), 245.
지도력은 영향력이며 지도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킴볼의 지도력은 가난하고 무지한 제화공 소년 무디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전도자가 되게 하였고 계속된 영향력은 21세기 위대한 빌리그래이엄까지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04.17
  • 저작시기20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757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