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기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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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루어짐. 독일은 6·25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사업에 처음부터 참여한 국가 중 하나이며 1962년에 경제지원을 시작하여 13억 마르크를 제공.
- 1960년대에 한국의 광부와 간호원을 독일에 파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적 교류 바탕으로 경제 교류 활발해 짐. 1963년부터 1977까지 독일에 간 광부와 간호원의 수는 각각 8천여명과 1만여 명에 이름. 당시 이들은 외화획득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독일 사회에서 좋은 한국인 상 심어주는 데 기여.
-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공식방문과 뤼프케 대통령의 한국방문 계기로 한독경제협력이 강화되었고 한국은 70년대의 경제개발시기에 독일에서 많은 차관을 도입. 독일모델은 우리나라의 제2공화국 뿐만 아니라 제3공화국에서 집중적 관심의 대상.
- 현재 독일은 우리나라의 대외교역량 기준 6위의 교역상대국이며 유럽 내에서 영국에 이어 2위 교역대상국. 반면에 한국은 독일의 25위 교역대상국. 독일에 진출한 우리나라의 기업은 100여 개, 프랑크푸르트에 많은 인력 파견.
- 독일은 한국이 1997년 이후 외환위기를 겪을 때 우리나라의 입장 지지, 투자액수를 두 배로 늘려 과감한 투자를 계속하였는데 대부분 장기투자라는 점이 특징. 독일은 1962년부터 1999년 말까지 총346건, 약 28억 7천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여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제4위의 투자국. 이는 독일기업의 대 아시아 투자 중 48퍼센트. 현재 우리나라에는 320여개의 독일기업 진출.
2.3. 한독 문화교류
- 한국의 독일문화수용: 1898년 서울에 관립외국어학교에서 독일어학교를 설립해서 독일어를 가르친 것이 한국 최초의 독일어 교육.
- 독일어 학교의 설립 목적: 주로 독일의 군사제도를 배우는 데 있었음. 일본도 독일을 근대화 모델로 지목하였기 때문에 법, 사회, 교육, 문화의 여러 분야에 독일의 제도를 많이 받아들임.
- 1950년대부터 독일어와 독어독문학의 본격적 연구·수업 시작.
- 제2외국어로서의 독일어의 중요성: 독일어가 주요 통상언어로 쓰이는 동유럽 및 중부 유럽과의 접촉과 교류가 늘어가고 있으며 이때 독일어권 유럽과의 무역상의 애로점으로 항상 언어문제가 일차적으로 지적된다고 함.
- 최근에는 독일어문학 교육이 순수어문학 위주에서 벗어나 독일어권 문화 및 지역관련 강의로 점차 폭을 넓혀가고 있음. 언어교육뿐 아니라 독일문화는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 미침. 해방 전후에 이미 칸트, 헤겔, 하이데거의 철학과 괴테, 쉴러, 하이네, 헤세 등의 문인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음악가들은 널리 알려져 있었음.
- 현재 독일에는 3만여명의 한국인 거주. 독일은 유럽에서 한국 학생들이 가장 많이 유학하는 나라. 1923년부터 2003년까지 2330여명의 한국인이 박사학위를 받음. 한국인 독일박사 1호는 1923년 김중세 (라이프치히 대학 철학박사). 현재 약 5천여명의 한국 학생이 독일 유학 중.
- 한독 친선도모와 문화교류를 위하여 설립된 단체: 한독협회와 주한 독일문화원. 독일문화원은 어학강좌 개설과 한국 독일어 교사들의 현지 연수 지원, 독일의 문화예술가 및 단체의 초청 등 우리나라에 독일어 교육과 독일문화 소개에 중심적 역할.
2.3. 독일의 한국인:
- 이미륵(본명 이의경, 1899~1950):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 취득. 우리나라의 정서와 사상, 풍속,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이야기』 등을 독일어로 출판. 『압록강은 흐른다』는 일부가 독일의 국어교과서에도 수록. 뮌헨 대학에서 한국과 한국문학을 강의하여 우수한 동양학자 양성.
- 전혜린(1934~65): 60·70년대에 뮌헨의 슈바빙을 자유와 낭만이 숨쉬는 예술가 구역으로 묘사함으로써 한국에서 독일 멜랑콜리 붐을 일으킴. 많은 번역작품과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남김.
- 김영희: 한국의 닥종이 공예예술가이자 화가로서 현재 뮌헨에서 활약,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뮌헨의 노란 민들레』 등에서 독일인의 삶과 사랑, 독일사회를 한국적인 시작에서 분석·비판.
- 윤이상(1917~95): 베를린을 무대로 활약. 72년 뮌헨 올림픽 계기로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심청」으로 호평 받음. 5편의 교향곡과 오페라를 비롯하여 150여편의 작품 남김. 베를린 필하모니 100주년 기념작이 절찬리에 공연되었고 베를린 음대교수로 재직. 송두율 교수와 함께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과는 교류가 적었음. 북한에서는 해마다 윤이상 음악제가 열리고 있음.
-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를 개척한 전위적 작가로, 보이스와 더불어 이 분야의 선구자로 유럽에서 인정받음. 학자로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송두율 교수가 있으며 그의 주저는 『계몽과 해방』『역사는 끝났는가』. 그 밖에도 베를린 자유대학의 박성조 교수, 유럽 최초로 간이식 수술을 성공시킨 본 대학의 이종수 교수가 있음.
- 스포츠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팀에서 활약하면서 차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차범근 선수가 한국을 알린 대표적인 체육인. 특히 차범근은 1979년부터 10여년간 주전 선수로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으며 세계 올스타 베스트 11에 여러 번 뽑히기도 함. 그의 활약상은 독일 축구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1998년 독일축구역사가협회는 차범근을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축구선수로 선정. 현재는 그의 아들 차두리가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활약.
- 독일 속의 한국문화: 독일인들에게 한국의 인상을 깊이 각인시킨 역사적·정치적 사건으로 한국전쟁, 동베를린 사건, 군부독재, 학생시위, 올림픽을 들 수 있음. 90년대 들어서부터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들이 잇따라 소개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점점 높아짐.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주빈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어 수백종의 한국서적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음.
- 독일의 재즈앙상블 살타첼로: 리더인 페터 쉰들러를 중심으로 독일에서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뱃노래 등 한국음악 즐겨 연주.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 옹에게 헌정하는 음반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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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3
  • 저작시기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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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79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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