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성리학)의 기능, 주자학(성리학)의 수용, 주자학(성리학)의 심화, 주자학(성리학)의 존주론과 명분주의, 주자학(성리학)의 학파형성, 주자학(성리학)의 퇴계학파, 주자학(성리학)의 율곡학파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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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자학(성리학)의 기능, 주자학(성리학)의 수용, 주자학(성리학)의 심화, 주자학(성리학)의 존주론과 명분주의, 주자학(성리학)의 학파형성, 주자학(성리학)의 퇴계학파, 주자학(성리학)의 율곡학파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주자학(성리학)의 기능
1. 효
2. 사림파와 훈구파
1) 훈구파
2) 사림파
3. 유향소의 설립과 운영과정
4. 향약
5. 향약의 시행
6. 기묘사화 이후

Ⅱ. 주자학(성리학)의 수용

Ⅲ. 주자학(성리학)의 심화

Ⅳ. 주자학(성리학)의 존주론과 명분주의

Ⅴ. 주자학(성리학)의 학파형성

Ⅵ. 주자학(성리학)의 퇴계학파

Ⅶ. 주자학(성리학)의 율곡학파

참고문헌

본문내용

궁구함에 따라 이르지 않음이 없다’는 이자치설을 반대하여 퇴계학파의 우복 정경세와 논변을 벌이기도 했다. 사계는 여기서 격물이물격을 ‘손님을 불러서 손이 온 것과 같다’고 설명한 우복의 비유에 대해 이는 물리가 객손이 되어 오심에 왕래하게 되고 지지의 한 단계가 간 데 없게 되어 오심과 상관이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계까지만 해도 퇴계의 학설에는 분명치 않은 점이 있다든지 의심스럽다든지 하여 상대방을 존중하고 논변에 당파적인 감정이 끼어들지 않았으나 우암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柳稷등이 율곡의 이기일물설은 주자에 어긋난 육상산의 도기론에 가깝고 율곡이 ‘주자가 참으로 이기호발이라고 생각했다면 주자 또한 과오다’하여 전현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율곡의 문묘배향을 반대하자 첫째 주자가 이기호발을 주장하지 않았고 둘째 율곡은 이기는 혼륜무간하다 했으니 일물로 본 것이 아니며 셋째 주자도 고승 도겸에게 배운 바 있으니 율곡의 출가도 용납될 수 있다고 율곡을 변호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우암은 평생에 걸쳐 율곡의 설과 주자의 성리설이 일치함을 논증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로 나온 저술이 <주자언론동이고>이다. 우암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 퇴율의 설이 나누어진 이유를 밝힌다.
“이기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이로 부터 말할 수도 있고 기로부터 말할 수도 있다. 시원으로부터 말할 수도 있고 현상으로부터 말할 수도 있다. 대개 이기는 혼륜무간하나 이는 스스로 이요 기는 스스로 기이어서 뒤섞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에 동정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가 기를 주재한 것으로부터 말한 것이고 이에 동정이 없다고 한 것은 기가 운행하는 것으로부터 말한 것이다. 선후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기의 개념에서 한 말이요 무선후는 이기의 현상에서 한 말이다.”
우암의 이 말만 놓고 본다면 퇴계와 율곡은 각각 이기의 한면을 말한 것으로 근본은 같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우암은 퇴계의 이기호발설이 주자어류의 ‘칠정시기지발 사단시이지발’에서 나왔음을 인정하지만 퇴계의 오류는 그 구절에 너무 집착하여 그와 모순되는 구절이 있음을 간과한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주자의 이 말이 혹 기록자의 실수인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는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의 논리를 계속 밀고나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므로 칠정과 마찬가지로 사단도 선악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성리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퇴계 고봉 율곡 우계는 모두 사단을 순선하다고 여겼으나 주자는 사단에도 불선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알지 못하겠도다. 네 분 선생님들은 주자의 이 말을 보지 못했는가. 사단이 어떻게 불선할 수 있는가. 사단도 기발이이승하기 때문이다. 발할 때 그 기가 청명하면 이도 순선하지만 그 기가 혼탁하면 이도 그것에 가리어지게 된다.”
우암의 율곡설 추종과 퇴계비판은 결국 주자학의 고수로 귀착되는데 우암의 이어한 순정 주자학에의 집착은 예송을 통한 정쟁중에 남인계열의 미수 허목과 백호 윤휴가 고례의 왕자례부동서인을 들고 나와 왕권을 옹호하면서 당시의 집권층이던 서인의 주자가례의 입장을 공격하자 더욱 견고해 졌다고 볼 수 있다.그래서 한학적 기풍을 지녔던 윤휴의 경전주석이 주자학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하여 윤휴를 적휴, 사문난적, 심어홍수맹수라고 극렬히 비난했고 더 나아가서는 윤휴와 교우를 단절하지 않는다고 하여 윤선거 윤증에게 휴당 종휴라고 비난을 가하여 마침내 노론과 소론이 갈라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의 성리학은 실로 우암에 이르러 완전히 주자학 중심으로 고착되었으니 우암의 성리학은 이전의 성리학설을 화석화하고 이후의 성리학을 제약하는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하겠다.
원래 우암의 문인중 학술과 문장이 뛰어나 우암의 의발을 전수받을 것으로 기대되던 명제 윤증이 懷尼是非이후 휴당으로 배척되었기 때문에 우암의 위와 같은 율곡 추종과 주자학 고수라는 과제는 遂菴 權尙夏에게 계승되었다
수암은 ‘학문은 주자를 주로하고 사업은 효종의 대의를 주로 하라.’는 우암의 가르침대로 <사칠호발변>을 지어 퇴계의 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사단칠정 기발이승일도설이 주자의 의도와 합치됨을 변증하고 있다. 수암의 성리설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심의 의미를 둘로 나누어 인심도심설을 설명한 부분인데 수암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심은 형기의 사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때의 기는 이목구비를 지칭한 것이다. 칠정은 기에서 발하는 것이니 이때의 기는 심을 지칭한 것이다. 글자는 같아도 의미가 전혀 다른데 옛부터 선현들은 항상 인심도심은 이같이 설명이 가한데 사단칠정만이 이런 설명이 불가한가라고 말하니 깊이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수암의 이 분석에 따르면 칠정이 곧 인심이 될 수 없으므로 사단과 도심은 곧 이의 발이고 칠정과 인심은 기의 발이라는 호발설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이상에서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을 계승한 사계, 우암, 수암이 어떻게 퇴계의 호발설을 비판하고 어떻게 율곡의 설이 주자의 본령에 일치함을 논증하는지를 대충 살펴보았다. 우암에서 수암에 이르는 과정에서 율곡학파는 지나치게 율곡의 기발이승의 입장을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확대 해석한 결과 주자학 본래의 이 강조를 도외시한 감이 있다. 여기서 퇴계학파가 율곡학파와 율곡의 성리설을 비판할 수 있는 소지가 생기게 되었고 또 후일 율곡학파 내부에서 호락논쟁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되고 조선조 말에 가서는 극단적인 유기론과 유이론이 모두 율곡학파에서 연유하는 원인이 제공되는 것 같다.
참고문헌
김호태, 퇴계혁명
변동명, 고려후기 성리학 수용 연구, 일조각, 1995
송석구, 율곡의 철학사상연구, 형설출판사, 1987
윤천근, 퇴계의 이단에 대한 태도, 퇴계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온누리, 1987
윤사순, 한국의 성리학과 실학
황준연, 한국사상의 이해

키워드

주자학,   성리학,   유학,   유교,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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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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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80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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