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가][박수근][유영국][김복진][나혜석][김환기][이중섭]근대시대 화가 박수근, 근대시대 화가 유영국, 근대시대 화가 정관 김복진, 근대시대 화가 정월 나혜석, 근대시대 화가 수화 김환기, 대향 이중섭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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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가][박수근][유영국][김복진][나혜석][김환기][이중섭]근대시대 화가 박수근, 근대시대 화가 유영국, 근대시대 화가 정관 김복진, 근대시대 화가 정월 나혜석, 근대시대 화가 수화 김환기, 대향 이중섭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근대시대 화가 박수근

Ⅱ. 근대시대 화가 유영국

Ⅲ. 근대시대 화가 정관 김복진

Ⅳ. 근대시대 화가 정월 나혜석

Ⅴ. 근대시대 화가 수화 김환기

Ⅵ. 근대시대화가 대향 이중섭

참고문헌

본문내용

개양상은 대체로 두 개의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전의 추상미술과 6.25동란을 거친 이후의 추상미술이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193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던 한국인 미술사들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30년대 일본의 전위 미술운동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한반도에서보다 일본 동경화단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이들의 활동내역은 자연히 일본의 전위미술운동의 한 영역으로 먼저 이해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불행히도 우리의 서양미술 도입이 서양과의 직접적인 루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하는 중간매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서양미술 초기단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화단의 사정도 아울러 점검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미술지망생들이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의 일본화단은 인상주의 미술이 아카데미즘으로 자리를 굳힌 이후로 한국의 미술가들도 자연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910년대엔 서구 미술의 진취적인 움직임이 활발히 소개되면서 지금까지 명치(明治)의 다소 고루한 분위기가 쇄신되고 있는 인상을 준다. 유학 초기단계를 지나면서 한국인 미술지망생들도 자연 이 같은 분위기에 익숙해져 갔을 것으로 본다.
한국 내에서는 본격적인 추상화의 도입이전 1923년에 이미 주경이 「파란」이라는 추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순수기하학적 요소인 색과 면, 선에 의해서만 표현된 작품으로 대상의 구체적 이미지가 아닌, 평면적, 입체적 배열만이 있을 뿐이다. 1920년 당시에는 서양화에서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는데, 그 시기에 추상화가 그려진 것은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상미술은 오지호 같은 유미주의자들에게는 취기의 미술로, 민족적인 경향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성을 망각한 유미주의로 배격 당했으며,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이해되고 실험되었다. 후에 이러한 표현주의 기법은 기법으로서의 표현적인 경향과 이념, 상징체계로서의 표현주의 경향으로 나뉘어 현대 서양미술을 이어가게 된다. 1930 년대 중반 추상미술의 선구적 화가들의 모임으로 <자유미술가협회>가 생겨난다. 이것은 동경유학생들을 주축으로 표현주의적 기법만이 아닌 기하학적 추상도 선보인 작가들의 모임으로 대표적으로 수화 김환기를 들 수 있다. 전위미술 운동이 그 정점을 장식한 30년대 후반, 「자유전」과 「미술문화전」의 출현이 중심에 놓여있다. 대체로 「이과전」, 「독립전」이 포비즘과 큐비즘의 영향을 짙게 수용하고 있다면, 「자유전」과 「미술문화전」은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단체들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진취적인 미술운동이나 그 화풍이 일본에 도입되었을 때는 일본 특유한 인식 개념으로서 신감각의 종합 주의적으로 모든 경향을 대범하게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시기에 <자유미술가협회>가 1937년에, <미술문화협회>가 1939년에 출범하면서 그 절정기를 이룬다. 「자유전」은 신시대 양화전(新時代洋畵展)의 동인이었던 하세가와, 야마구치, 야바시, 무라이 등을 중심으로 소그룹인 흑색의 고노, 포름의 난바다 등을 흡수하면서 발족한 단체였다. 여기에 한국인 수화 김환기가 회우로 참가하고 있고 1회전의 공모에 문학수, 유영국이 출품, 수상하고 있다. 「자유전」은 표현영역에 있어 다양한 매체를 수용하였는데, 예컨대 유화, 수채 데생 외에 판화, 콜라주, 오브제, 포토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2회전에 출품된 회원 하세가와의 판위에 여러 원형의 릴리프를 배열한 콤포지션이나 야마구치 가오루의 콜라주 작업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자유전이 추상미술의 거점이긴 했으나 순수 추상작가 외에 포비즘 계열, 슈레알리즘 계열도 수용되고 있었다. 문학수, 이중섭, 송혜수, 안기풍 등은 포비즘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로서 부분적으로는 초현실적 요소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순수한 추상작가로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을 들 수 있을 뿐이다.
Ⅵ. 근대시대화가 대향 이중섭
1916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초등과 중등 과정을 평양과 오산에서 보냈다. 오산보고 시절 미술부에서 유화가 임 용련, 백 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았다. 임 용련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에서 오래 수학한 재원으로 식민지민족으로서의 자주성과 창의를 중요시하는 미술가로 그의 지도 하에서 이중섭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1935년 일본 도쿄로 가서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나 곧 그만두고 문화학원을 졸업한다.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입선하고, 협회상을 받아 호평을 받는다. 이중섭은 비슷한 모색을 하던 일군의 젊은 유화가들인 문학수, 이쾌대, 진환, 김 종찬, 최 재덕 등과 [조선 신미술가 협회]를 만들었다. 이 모임은1941년 일본에서 창립전을 열었고, 이어 4회까지 서울에서 전람회를 열면서 민족 정서가 진한 화풍을 모색하였다. 이중섭이 활동한 시기는 1940년 전후로 일제가 우리 민족 정체성을 해체, 동화시켜 전쟁에 몰아넣으려고 획책하던 때였다. 이런 때에 그가 민족적인 특색이 강한 작품과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서 발표한 사실은 주목되어야 한다.
1945년 일본인 마사코와 결혼, 1950년 신 미술가협회를 결성하나 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한다. 6.25 전쟁으로 가족과 더불어 원산에서 월남하여 부산과 제주도서귀포, 다신 부산으로 옮겨 다니는 어수선한 삶의 와중에서도 틈틈이 남긴 귀중한 외침이며 증언이다.
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 친정으로 보내고 홀로된 이중섭은 이때부터 그림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1956년 9월 잦은 폭주와 신경쇠약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을 안은 채 홀로 숨을 거둔다.
참고문헌
◎ 곽경숙(1996), 나혜석의 회화연구, 대구 효성 카톨릭 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 박내경(1980), 유영국, 여성동아, 9월호
◎ 윤난지 저(1996), 김환기, 재원출판
◎ 오지호 저(1986), 현대회화의 기본문제, 서울 : 예술춘추사
◎ 정현웅 저(1992), 박수근 생애와 예술, 서울 : 삼성미술문화재단
◎ 최열(1995), 힘의 미학 - 김복진, 도서출판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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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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