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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관][캇시러의 예술관][칼 크라우스의 예술관][아도르노의 예술관][장자의 예술관][오지호의 예술관]캇시러의 예술관, 칼 크라우스의 예술관, 아도르노의 예술관, 장자의 예술관, 오지호의 예술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캇시러의 예술관

Ⅱ. 칼 크라우스의 예술관

Ⅲ. 아도르노의 예술관

Ⅳ. 장자의 예술관

Ⅴ. 오지호의 예술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렇다. 그 당시 서구의 조형이론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이거나 일본을 통한 것이어서 그 사고에 익숙지 못한 체 나름의 생명존중 자연관에 의거한 회화관의 범주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조류에 반기를 들고 추상에 대한 맹목적 편향에 대해 나름의 반기를 듦으로써 미술에 있어서 끊임없는 물음을 제기한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具象繪畵宣言>을 발표한 1959년은 우리나라 화단이 왕성하게 앵포르멜 회화운동을 펼치던 시기로 오지호의 이 주장에 대한 추상화가들의 집단적 항의는 대단한 것이었으나 이에 대한 반론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의 구상회화론은 철저히 인간과 자연과의 생명체 상호간의 유기적인 상관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격을 표현한다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의 일관된 회화관에는 회화가 ‘자연재현의 미적 쾌감의 표현’이라는 데 그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립스(Theodore Lipps)의 감정이입작용에 미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보링거(R.W.Worringer)가 인간 창조활동을 분류한 바의 감정이입충동과 추상충동 중 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지호가 추상미술을 회화가 아닌 장식도안의 일종, 장식미술이라고 규정짓고 있는 점도 보링거의 추상충동의 측면에서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보링거의 이론에 근거해 본다면 오지호의 구상회화론은 감정이입충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지호는 ‘美란 對象이 具有하는 하나의 性質이라고 정의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대상이 갖는 一種의 性質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다른 여타의 성질에 비해 가변적이며, 정확하게 포착(捕捉)하기 어려운 對象全體가 瞬間的으로 갖는 性質이라고 하여 실험이나 가시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자칫 불가지론에 빠지기 쉽다. 오지호는 이에 대해 대상이 갖은 미적 성질인 색이나 음이 가변적인 것은 물체 자체가 가변적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래서 미적 성질이 가변적이거나 순간적이라도 그것은 물체가 지니는 하나의 성질이기 때문에 객관적 실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미의 구성원리로 형과 색을 예로 들면서, 가장 조화로운 미, 절대적인 미로 형(생명성)과 색(정신성)의 조화로움을 제시하고 그러한 범례로 회화, 특히 자연재현의 회화를 으뜸의 예술로 간주한다. 요컨대 그의 ‘빛을 통한 자연의 생명력 표현’이라는 이론은 그의 회화의 본질이다.
오지호의 회화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빛에 대한 탐구로 시작되어 생명-인간-자연으로 연결되어 인간과 자연의 생명적 교감에 의한 회화로 귀결되어지는 그의 주체적인 논리이며, 그 이론은 철저히 생명존중의 자연관에 의존하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미론과 미술론에서 시사되어지는 바는 오지호가 추구하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 있는 것이지, 비구상에 대한 반론이나 추상에 대한 공박에 있지 않다.
또한 인상파 회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자연재현 사실주의의 회화관, 화풍은 호남, 특히 광주를 중심으로 전남지방의 서양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 광주에 정착, 1949년 조선대 교수로 초빙된 이래 오지호는 그의 신념에 찬 회화관을 펼치면서 호남화단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그에 의해 호남화단은 보수적 성향의 구상미술이 주도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이러한 보수적, 개방지양적 경향은 그의 순수회화론-구상미술론-미와 회화의 과학 등으로 전개되어 가는 그의 회화론에서 알 수 있는데, 그의 회화이론은 지나치게 독단적인 면이 강함으로써 후대에까지 학문적으로 수용, 연구되지 못했다. 그의 회화태도가 철두철미한 회화의 원리, 그 본질을 추구했다 할지라도 현대사회의 흐름, 예술과 사회, 예술과 과학, 예술과 철학 등 좀더 포괄적인 통찰이 이루어졌더라면 구상회화의 한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사상과 작품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은 민족적(지역적) 정서와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지호는 회화영역에서 시대성이 결여돼 있다. 시대흐름에 대한 통찰부족을 그는 순수미술의 추구에서 찾았던 것이다. 예술의 절대성이 곧 예술가의 지조이며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삶이라고 보는 그의 예술상은 굴곡된 시대의 반영이지 오지호 자신의 통찰결여로만 보는 평가는 직선적인 것이다. 그가 한글전용 문제에 강경히 맞서 투쟁한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평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지호의 회화세계를 평가함에 있어 그 회화 태도의 주체적 면모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분명한 인식 태도를 가지고 회화관을 정립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론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암흑성에서 탈피하여 한국의 자연미를 일본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광휘의 색과 빛으로 파악하려 한데서 인상파 기법에 몰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문에 서구 인상파 이론이 발전하는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과학적 분석에 의한 기법으로 변모되어가는 입장이라든지, 자연에 대하여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표현에 주력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주관화, 추상화 경향으로의 새로운 방향전환에 비해, 오지호는 철저한 자연재현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철저히 인간과 자연과의 생명체 상호간의 유기적인 상관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격을 표현한다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의 일관된 회화관에는 회화가 ‘자연재현의 미적 쾌감의 표현’이라는 데 그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립스(Theodore Lipps)의 감정이입작용에 미학적 근거를 두면서도 미적 형식의 원리와 미적 대상의 객관적 실재를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미적체험이 단순히 주관적 체험이 아닌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 체험임을 암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재열(1981), 장자의 예술론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손정연(1978), 오지호의 예술과 생애, 오지호 작품집, 전남매일신문사
- 신동집(1993), 예술가의 삶, 서울 : 혜화당
- 이가은(1998), 세계사 5000(서양편), 그린비
- 조요한(2003), 예술철학, 서울 : 미술문화
- 테오도르 아도르노, 문화산업 :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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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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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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