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도자기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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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릿말
Ⅱ. 통일신라의 무역
1. 통일신라의 무역과 장보고
2.월주요 청자
3.당삼채
4.청해진 유적
Ⅲ. 문화교류속의 도자기
Ⅳ. 경주 外 유적별 출토된 중국 도자기
Ⅴ. 맺음말

본문내용

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통일신라 말 10세기 초에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로 간주된다.
신금성 유적에서는 서진의 흑갈유전문도기가 출토되어 백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대중교섭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해준다.
중국의 무역자기는 제주에서도 발견되었다. 해안에 위치하여 해상활동과 관련된 제례가 이루어진 제주 용담동 유적은 전북 부안 죽막동 유적과 같은 제사 유적의 성격을 지닌다. 이 곳에서 통일신라의 토기장경병, 사각벽, 호 등 과 함께 중국 월주 청자가 함께 출토되었다.
이들 토기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문양장식인 주름문, 인화문으로 시문되었고, 중국 자기는 당말- 오대초의 도자 양식을 지닌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이곳에서 해상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중국 자기가 수입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유사한 청자가 완도에서도 출토되었다. 이렇게 출토된 중국의 무역자기를 근거로 하면 완도와 제주가 서해안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하는 하나의 해상 무역권 이었음이 분명해진다.
Ⅴ. 맺음말
통일신라 경주 외 중국출토도자라는 주제는 우리 땅에 당시 중국 도자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조차 금시초문이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 사실이 당시 왕족과 귀족들이 직접 무역을 통해 사들였고 장보고가 그것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더욱 놀라웠다.
무지하게도 진정, 무역은 조선시대 명성황후 이래로 시작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해신'이 나왔을 때의 파장이 이래서 컸던 것일까. 장보고는 지금의 시대에서도 요구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접해왔으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돌려도 수입품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기술이 우리의 기술이 되며 이미 나는 다국적 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처럼 교류라는 것 자체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도 역시 많은 물자적 교류가 오갔을 것이며 그 속에서 이루어진 도자기의 교류는 단순한 상품의 교류 뿐만이 아닌 기술과 문화의 교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FTA, 스크린 쿼터 등의 문제로 우리는 항상 시끌벅적했지만 이제는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은 억지로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타문화를 수용하며, 배우며 선의의 경쟁구도를 갖춰 더욱더 많은 부분을 개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 것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워드

통일,   신라,   도자기
  • 가격2,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1.10.06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6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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