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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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일반이론

2. 중국 대외정책의 국내외적 요인
1) 구조 현실주의와 국제체제 결정론
(1-1) 구조현실주의와 국제체제 결정론
(1-2) 세계경제체제론과 대외정책
(1-3) 규범적 구조와 대외정책
(1-4) 국제체제 결정론의 한계
2) 국내적 요인: 외교정치를 국내정치의 연장선에서 설명
(2-1) 국가주의시각-정권유형과 대외정책
(2-2) 이데올로기와 전략 문화, 그리고 대외정책
(3-3) 사회중심적 시각-이익집단과 대외정책

3. 연계이론-국내외 요인의 상호침투와 상호영향

4.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이론과 실제

본문내용

tween decision-maker's perceptions of needs , interests, and beliefs and their perceptions of and responses to international material and normative pressures " (Samuel S. Kim, "Chinese Foreign Policy in Theory and Practice," in Kim ed., op. cit., p. 23)
4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이론과 실제
사회과학 이론의 예측 능력은 얼마정도 될까, 국제정치의 일반 이론이 중국의 외교정책을 얼마나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는 누구나 궁금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질문임에 틀림없다. 과연 사회과학의 일반 이론은 현실세계의 행동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예측하는데에서 적실성이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이론과 실제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 분석해 본 중국 전문가인 알랜 화이팅 (Allen Whiting)의 논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Allen S. Whiting, "Forecasting Chinese Foreign Policy: IR Theory vs. the Fortune Cookie," in Robinson and Shambaugh (1994); pp. 506-523 참조)
알랜 화이팅은 미국 국무성 근무의 경험과 국제정치 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4개의 사례를 선별하고, 그런 사례 연구를 통해서 중국의 대외정책 행동을 예측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국제정치 일반 이론과 중국 전문가의 접근방식이 가지는 유용성을 검토함으로써 이론과 실제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얻으려고 하였다.
여기서 화이팅이 선택한 사례는 (1) 1958년 대만 위기 상황에서의 중국의 대응, (2) 1962년 인도-중국간의 전쟁에서 중국의 대응 방식, (3) 1964-65년 미국에 대항하여 베트남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응, (4) 1969년 중소 유혈분쟁과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타협적 태도등이 그것이다.
화이팅은 이런 4개의 사례에서 중국의 대응에 대해 나름대로 국제정치 이론에 입각해서 예측해 보았는데, 4개의 사례중 2개의 사례에서는 중국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했지만, 나머지 2개의 사례에서는 부분적으로 맞았지만, 부분적으로 틀렸다고 지적하였다.
화이팅이 이론과 실제가 서로 맞았다고 지적한 사례는 1962년의 중국과 인도 전쟁에서 중국측의 대응에 대한 예측, 그리고 1969년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의 양보를 예측한 것등이 그런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1962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중국의 대응을 분석하면서 억지와 강압적 외교에 대한 일반 국제정치의 이론에 입각해서 중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인도에게 치욕적 굴복을 강요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양보를 얻어내는데 만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측대로 중국은 개전과 더불어 인도군의 군사적 저항을 분쇄하고도 더 이상 인도 국경지대 내부로 진격하지 않고 인도와의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1969년 소련과의 무력 분쟁을 계기로 미국 국무성의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세력균형 이론과 '기회의 창' (a window of opportunity) 이론에 입각해서 중국이 대만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화해를 수용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는 것이며, 그런 예측대로 대만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은 조건에서 닉슨의 중국 방문과 중미 화해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1962년과 1969년의 사례연구는 이론의 예측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지만, 1958년 대만 위기 당시 중국의 반응과 1964-65년 베트남 지원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 대한 예측은 부분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958년 대만 위기 당시 미국의 예측은 중국과 소련이 동맹국가이기 때문에 상호 지원할 것이고, 따라서 중국은 소련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만해협에 있는 인근 도서지방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측대로 중국은 대만해협의 인근 도서지방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했지만, 소련이 중국의 이런 군사행동을 지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중국 또한 더 이상의 군사적 행동을 확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만 해협의 위기는 중국의 공격 중단으로 일단 정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중국의 초기 군사적 행동에 대한 예측은 맞았지만, 동맹국가간의 상호 지원이란 가정과는 달리 소련이 중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련의 반응과 중국측의 대응에 대한 예측이 틀린 이유는 중국과 소련, 모택동과 후루시초프라는 강력한 개성을 가진 두 국가와 두 지도자간에 벌어지기 시작한 반목과 갈등을 미처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1964-65년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확대되면서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이 조성되면서 미국내에서 중국의 베트남 지원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와 같이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겠지만 월맹을 방어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는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소련과의 화해을 모색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결국 인민해방전쟁론을 강조하는 모택동과 임표의 주장이 우세하게 되면서 베트남에 대한 지원 문제는 사실상 거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은 당시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 전개되었던 전략 논쟁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베트남 지원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예측하는데 실패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1958년과 1964-65년 사례에서 모두 중국의 대응을 예측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국제정치에 대한 일반 이론의 문제점 때문이라기 보다는 행위자인 중국의 특수성, 특히 모택동과 같은 주요 행위자의 이데올로기적 선택등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보편적 국제정치 이론과 행위자의 특수성을 규명하는 지역연구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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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23
  • 저작시기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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