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그리스)의 신들, 기독교 유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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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희랍의 신
2. 빛의 신 아폴론
3. 알렉산더 대왕 이후의 헬레니즘 시대
4. 기독교사상에서의 유일신 등장
5. 유대교
6.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의 절대적인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서 신의 응징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인간을 언제나 무오류의 절대자로 상정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지상에서 파멸하는 것이 숙명이다. 그러한 역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은 인간을 죄와 오류를 범하되 회개를 통해서 다시 신의 용서를 빌고 보속을 구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구원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차원에서, 그리고 구원의 실현이 즉각적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시련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어질 때 종말론적 역사관이 성립된다.
6.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
종교 개혁 이후 동방 교회와 달리 서양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성격의 근원을 되새겨보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이 현상을 통해서 늦어도 3세기 이후부터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그리스 철학의 정신에 영향을 받아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기독교가 대단히 불안한 시대였던 1세기와 2세기에 다름 아닌 동방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흘러 들어온 수많은 종교 운동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반인들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삼았던 부활사상이었는데, 만일 그리스 사상과의 융합과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부활 사상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측면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변적 요소가 바울로와 요한 이후 부활 사상에 도입되어 학문적인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시키고,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개념적으로 확고한 도그마로 정착시키는 문제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였던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개최하는 일에도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이 회의는 역사상 최초의 공의회로 기록되었다.
기독교 신앙 속에 그리스의 학문 정신이 처음으로 철저하게 침투해 들어간 과정은 시대적으로 볼 때 플라톤주의가 승리하게 된 과정과 일치한다. 플라톤주의는 3세기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 사상 창시자는 암모니오스 사카스(175?∼242)이고, 대성자(大成者)는 플로티노스(205?∼270)이며, 그 밖에 아멜리오스 ·포르피리오스 ·이암블리코스 ·테오드로스 ·프로클로스 등이 잘 알려졌다.
만물의 본원인 ‘일자(一者)’로부터 모든 실재가 계층적으로 ‘유출’하여, 보다 낮은 계층은 그 상위의 것을 모방하며, 보다 복잡 ·불완전하다. 또 만물은 ‘관조(觀照)’에 의해 일자에 계층적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쓴다. 이 상하 두 방향에의 운동이 실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이 운동에 의해 감각적인 것을 벗어나 일자로 향하며, 이것과의 직접적인 합일, 즉 ‘탈아(脫我)’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희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사상은 형성기에 있던 그리스도교에 받아들여져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등 교부(敎父)뿐만 아니라, 후의 그리스도교 사상에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
”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최초의 체계적인 기독교 사상가 오리게네스는 플로티노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다. 오리게네스가 생애의 대부분을 살았던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정신세계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오리게네스보다 한 세대 앞서서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한 유명한 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클레멘스(150~220)이다. 최초로 기독교 신앙을 광범위하게 학문적 성찰의 대상으로 만든 인물을 꼽는다면, “알렉산드리아”출신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플라톤 사상가로서 플라톤주의 정신에 따라 사고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클레멘스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서,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철학을 가르친 암모니오스 사카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사카스 밑에서 5년간, 플로티노스는 11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이 사실은 유럽 정신사에서 운명적인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플라톤 사상가의 스승과 학문적인 기독교 신학 창시자의 스승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과 교양을 플라톤주의라는 형태로 체계화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에 학문으로서의 기독교 사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참 고 문 헌
스털링 P. 렘프레히트 [서양 철학사], 을유문화사
김용옥 [기독교성서의 이해], 통나무
클라우스 헬트 [그리스ㆍ로마 철학 기행], 백의
Keith E. Yandell[기독교와 철학(종교 철학 입문)],이컴비즈넷,2007.03.15

키워드

희랍,   ,   기독교,   유일신,   종교,   사상,   헬레니즘,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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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07
  • 저작시기2012.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3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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