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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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버지께 여쭈어 봤는데 이 탑은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모습을 표현한 석탑으로 지장율사가 세웠다고 하셨다.
속세를 떠나 불가에 귀의를 하면은 세속에서의 부모자식의 연은 물론 모든 연을 끊어야하는데 세속의 연을 불가에 귀의를 했음에도 어머니를 위하여 이 탑을 세웠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님들의 고뇌가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에 이런 고귀한 문화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문화재가 단지 나의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낮게 보고, 그 가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 보지 않았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평소에 많이 봐왔던 내 고장의 문화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약 4시간이 걸리는 먼 여정이었음에도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했다.
지금은 가까이 할 수 없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살아온 구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다.
아 그리고 화엄사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던 우선스님께 이 자릴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화엄사 연혁
백제 성왕 22년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때 3천여 명의 쓰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 피웠습니다.
신라시대는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지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우셨습니다.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랑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또 문무왕 17년에 의상조싸는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 (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습니다.
경덕왕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고 신라말기 헌강왕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시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고려 태조 26년에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하였고 홍경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하였습니다. 문종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인종때 정인왕사가 중수 명종2년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때 조형왕사에 의한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세종 6년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루었습니다. 임진왜란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강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릅니다.
인조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거립과 더불어 선교 양종대가람이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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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4.20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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