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조어도 분쟁에 대한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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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어도는?

2. 조어도의 개요

3. 조어도의 역사

4. 일본측의 견해

5. 조어도의 생태계

6. 조어도 분쟁의 원인 및 분쟁 진행상황

7. 조어도 분쟁에 대한 의견

본문내용

외교부는 “유감의 표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하였으며 앞으로 일본의 조어도 상륙사건이 재발하면 양국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당시 중국의 태도는 외교적 항의뿐만 아니라 홍콩 및 대만의 과격파청년단원 200여명은 26척의 대만 단정과 10여 척의 홍콩 선박에 분승하여 조어도 상륙을 시도하는 대규모 해상시위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일본은 해상자위대를 파견하는 대신 행상보안청 순시선을 조어도 인근 현장에 미리 보내 섬 전면에 거대한 그물 울타리를 설치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저지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 시위선박과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간의 충돌은 거의 육탄전 양상을 보였으며 일본측은 최루탄까지 사용하였다. 이 충돌에서 중국 청년 한사람은 물에 뛰어들어 수영으로 조어도에 상륙하려 하였으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중국은 전년도에 익사한 중국 청년 데이비드 첸의 사망 1주기를 기하여 시위가 잇달아 발생하였다.
이러한 충돌 이후에도 과격분자들에 의한 상륙시도와 해상시위는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1998년 6월 중국으로 귀속된 홍콩의 시민단체가 탑승한 100톤급 선박이 조어도 근해에서 일본 해안경비대와 충돌하여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9년 상반기 중국 해양탐사선에 의한 이러한 탐사활동의 수는 24회나 되며 조어도 근해에서의 탐사활동만도 4회에 달하였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항의에 대해 중국은 이들의 보호명분으로 Jingghu급 호위함과 Luda급 구축함을 조어도 북방 110∼260㎞해역으로 파견하였다.
중국은 2000년 8월 28일 조어도 부근에서 중국 해양과학연구선이 연구활동을 벌이던 중 4,000톤급의 일본 미사일 순양함 2척이 일본영해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자 즉각 북해함대 소속의 3,600톤급의 구축함 2척을 지원하였다. 이처럼 조어도 영유권을 놓고 중·일간의 외교적 마찰은 최초에는 정부의 항의논쟁으로만 그쳤으나 상황은 악화되어 양국간의 물리적 충돌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이용한 무력시위로까지 점점 더 격화되었다.
7. 조어도 분쟁의 대한 의견
조어도 분쟁은 일본에 대한 중국, 대만 등 범중화권의 자연스런 단결이라는 부산물을 낳기도 하였다. 조어도 분쟁을 계기로 중국을 중화권의 일치 단결에 회심의 미소를 보내면서도, 이로 인한 중·일 관계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있다. 동시에 일본 정부도 우익계의 반발을 의식하여 조어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조어도 분쟁으로 인하여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내심 우려하고 있다.
한편 대만은 조어도 문제에 대해 중국과 뜻을 같이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은 조어도 관련 시위가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반정부 운동으로 확대될 것을 염려하여 국내 시위를 철저히 억누르고 잇다. 이에 반해 대만은 민간 차원의 대규모 시위를 통해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하고, 일본과의 어업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실리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97년 3월 중국의 첸지천 외교 부장과 일본의 이케다 외상은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조어도 영유권 분쟁이 양국 관계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하지만 2004년 2월 24일 중국 활동가 7명이 조어도에 상륙하자, 일본 당국이 강제 추방시키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갈등이 야기 되었다. 계속해서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빚어짐에 따라 조어도가 일본 영유임을 확인하는 국회 결의를 가졌다.
2004년 4월 4일 중국과 일본은 외상 회담을 열어 영유권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양국은 그 외의 외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다른 중요한 현안이 많은 상태에서 외교 관계가 악화된다면 두 나라 모두 손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어도 분쟁은 극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소강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도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조어도 분쟁은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다. 조어도 분쟁은 미국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양국의 민족감정을 감안하면 어느 쪽도 조어도를 양보할 수 없으므로
, 장차 이 분쟁이 양국간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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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01
  • 저작시기2009.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2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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