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속의 교회> 나의 소견과 느낀점 및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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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담장속의 교회

한국의 기독교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회
크리스천으로 태어나다 - 모태신앙의 논리
크리스천이 되다 - 기독교와 민족
크리스천으로 살다 - 지역 공동체로서의 교회
크리스천임을 회의하다 - 신앙의 상실
크리스천으로 죽다 - 낙원의 꿈

본문내용

로 해결되어 버린다. 개인에게는 큰 무게를 가지는 죄가 교회에서는 그저 흔하고 흔한 죄에 불과하다는 사실 사이의 거리는 메워지지 않고, 결국 개인은 미워할 대상조차 잃어버린 채 붕괴하게 된다.
교회가 죽음을 논할 수 있다면 이러한 간극은 별것이 아니다. 본래 교회는 죽음을 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매주 신도들이 십자가 앞에서 맹세하는 신경(信經)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12항목에 대한 선언이다. 그리고 그 가장 마지막 항목에 ‘영원한 생명’의 선언이 있다. 만일 이 영생이 실제로 개인에게 와 닿았다면, 육친의 죽음은 정말 일시적인 것이다. 본디 생명은 모두 하늘에서 온 것이니 이별을 슬퍼하더라도 상실에 절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듯이 교회는 ‘생명’을 개인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모든 죄인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야만 한다. 이러한 모순을 견디지 못한 개인은 드디어 교회의 벽을 무너뜨려 버렸고 장벽 너머로 드러난 인공 정원을 향해 피맺힌 한을 토해낸다. 한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현대의 교인들에게 교회의 장벽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언제나 시야에는 담장 밖의 사막이 보일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할 수만은 없어졌다.
신앙을 위한 공동체로서 만들어진 교회는 이제 공동체를 위한 신앙을 모색하는 중이다.
크리스천으로 죽다 - 낙원의 꿈
비록 그 존재 의미는 변해버렸지만 교회는 여전히 건재하다. 구속(救贖)하는 교회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하더라고 구속(拘束)하는 교회의 기능이 살아 있는 한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교회의 관습이 체화된 교인은 생활의 일부로서 교회를 다닌다. 자연스럽게 찬송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도 관습이다. 이러한 관습의 벽으로부터 보호받으며 교회는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의 시대는 간 것일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체념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사고하고 움직이는 우리가 하나의 유기물 덩어리의 화학작용에 불과 하는가. 과거 생명의 범주를 뛰어넘는 도덕률을 제공했던 죽음 이후의 세계를 버려야 하는가. 이러한 세상의 각박함 때문인지. 노년층의 입교인 수는 꾸준하다. 교회는 고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교회는 그들의 미래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에 환자들로 가득하다는 점에 놀란다. 특히 정신질환은 현대 한국인에게 마치 비염이나 아토피, 알러지와 같이 누구나 가진 일반적 병상이 되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정상인의 영역을 환자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인지, 도시가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 교회가 휴식 할 수 있는 낙원을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노인복지는 그러한 사회의 니즈에 부합한 기독교의 변신이다. 사회에서 밀려나고,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한정적이지만 아주 안락한 낙원의 공간을 재현한다. 그 곳에서 생활하고 놀고 즐기며 또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위하는 역할은 종교단체이기에 가능한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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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2.01.04
  • 저작시기201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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