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와 경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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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경제교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개항기의 경제와 경제정책

Ⅲ.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경제발전
1. 식민지 경제정책
2. 식민지 공업정책의 성격
3. 일제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민족사관과 식민사관의 재대결

Ⅳ. 8.15 해방과 미군정시대의 경제
1. 농업과 농지개혁
2. 공업과 귀속재산의 처리
3. 원조경제
4. 국토의 분단

Ⅴ. 정부수립과 6.25동란기의 경제상황

Ⅵ. 결론

본문내용

인 것이다.
Ⅴ. 정부수립과 6.25동란
-> 1948년 정부수립을 전후하여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하여 경제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경제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게 될 기구로서 기획처의 신설을 보게 되었다. 즉 1948년 7월 7일 제헌과 더불어 법률 제 1호로 제정 공포된 정부조직법에 의하여 국무총리 소속하에 기획처가 신설되었는데 동법 제 24조에 의하면 기획처는 “재정, 경제, 금융, 산업, 자재와 물가에 관한 종합적 계획의 수립과 예산편성에 관한 사무를 처리”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기본적으로 자유경제 체제를 지향하였으므로 기획처가 경제 운용에 있어서 수행할 기능, 특히 종합적 계획기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1950년 발발한 6.25동란은 대한정책에 대한 미국정부의 노력을 집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 경제는 해방 후 국토분단에서 초래된 자원의 불균형, 1950년의 6.25동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국의 원조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1953년 이후에도 미국은 계속해서 경제군사원조의 책임을 인식하였고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객국가가 되어버렸다. 1953~1961년까지의 경제원조는 약 20억 달러, 군사원조는 10억 달러에 달했고 실질 GNP는 연평균 4.2%로 증가했다. 원조를 매개로 하는 국가의 특혜적인 지원과 저임금 노동력에 힘입어 이기간의 제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1.5%로 국제적으로도 높은 편이었다. 중화학 공업이 경공업보다 빠르게 성장하여 제조업내의 비중이 1953년 21%로부터 1961년 26%로 상승하였다. 전쟁 후에 중소기업이 활발히 설립되었지만 대기업의 시장집중률도 상당히 진전하였다. 1953년부터 1957년까지의 급성장은 총 12억 9440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역시 해외원조에 크게 힘입었다. 그러나 물가 귀등 현상이 계속되어 원활한 경제활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1950년에서 1951년 사이에 빚어진 530%라는 전시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에는 성공적으로 제동을 걸었으나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물가상승률은 사용하는 지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아직도 연평균 36% 내지 37%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국은 이 같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1957년과 1958년에 강력한 긴축정책을 적용했는데 그 결과 1958년과 1959년에 물가가 안정되기도 했으나 성장 둔화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승만 정권이 갈수록 부패 무능해지고 독재화함에 따라 일어난 정치적 혼란, 1961년의 군사쿠데타 등으로 1962년까지 경제 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이 쿠데타는 장면 내각이 미국과 경제지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장 총리가 방미를 앞두고 있던 그 찰나에 일어난 것이었다. 1960년 8월 23일~1961년 5월 18일 사이는 의원내각제 민주정권인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당시 민주당 정권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었고,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장면 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은 즉각 이를 승인하고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박정희 장군이 주도한 1961년도의 군사쿠테타는 정부의 직접적 개입으로 시장기능을 전적으로 압도하고, 명령과 규제조치로 시장기능을 직접적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시발점이 되었다.
<국내 총생산의 산업별 구성과 연평균 실질성장률 >
구성비
실질성장률
연도
1953
1961
1953~61
경상국내 총생산액
13억달러
21억달러
4.1
농림 어업
47.3
39.1
3.4
제조업
9
13.6
11.5
중화학공업
21.1
26.3
14.6
건설전기가스수도업
2.6
4.4
9.2
서비스업
40
41
3.2
( 단위 : % )
Ⅵ 결론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정을 보면 세계 경제발전과정의 흐름과 연관되어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한 개항이 이루어지기전에는 우리는 폐쇄정책을 고수했었다. 단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중국과의 교류에만 의지해 경제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그 후 개항으로 인해 제국주의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무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물론 이것은 외국의 압력에 의한 타의적 개방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는 있으나 우리나라가 주변의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첫 포문을 연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현대의 경제에서의 국제개방화라는 시대적 특성과 어느 정도 상관성이 있다. 또한 선진국들의 개방화의 압력 등도 이와 비슷한 성격이다. 초창기의 폐쇄정책에서 해방 후 보호무역주의에 의한 경제정책으로, 그리고 경제가 발달된 현재에 와서는 국제 개방화정책으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보호무역주의를 다시 추구하면서 경제정책은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경제 순환 과정이 시사하듯이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이 이끌어지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잘 파악해야 하겠다. 그런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낙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개항기 때부터 시작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 그리고 6. 25전쟁으로 인해 피폐했던 사회현실을 극복해 왔다. 경제학원론에서 인간의 무한한 욕구 때문에 희소성이 발생하여 경제문제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계속해서 문제해결을 위해 궁구한다.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거의 경제 과정을 토대로 현재의 경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 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궁구해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세계화 시대를 위한 한국경제의 발전』 김성수/학문사 p39~43, p66~94
『대중참여경제론』 김대중/산하 p45~49
『한국경제의 이해』이명규/법문사 p51~81
『한국경제통사』이헌창/법문사
『한국경제론』변형윤/유풍출판사 p26~75
통계청 http://www.nso.go.kr
한국개발연구원 http://www.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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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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