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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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의 미술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중세
2. 고딕·르네상스·바로크
3. 근대

본문내용

다. 작품에 나타난 인물과 장식성의 멋진 융합은 오히려 건축가의 재능을 느끼게 한다.
선의 강조가 두드러진 고딕 조각을 극복한 것이 높이 평가된다
*크뤼거 [ 1797~1857 ] 독일의 화가
주요작품 : 《오페른광장의 행진》(1829)
쾨텐 출생. 1812∼1814년 베를린미술학교에서 배우고 동교 교수를 거쳐, 1825년 프로이센의 궁정화가로 있었으며, 러시아 황제의 보호도 받았다. 비더마이어(Biedermeier)시대의 베를린에서 가장 사랑받던 역사화·풍속화가로서 그의 명성은 정확·세밀한 현실파악, 세련된 채색, 고아한 취미에서 연유하였다.
특히 그는 '말[馬]의 크뤼거'로 불릴 정도로 말을 좋아하여 승마도 등을 즐겨 그렸다. 또한 행진광경 등 군중화도 그렸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시 베를린의 저명인사들의 모습으로 그려서 인기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오페른광장의 행진》(1829, 에르미타즈미술관 소장)이 있다
*키르히너 [ Kirchner, Ernst Ludwig , 1880.5.6~1938.6.15 ]독일의 화가 ·판화가
주요작품 : 《거리의 5인의 여인》(1913), 《베를린의 거리》(1913)
바이에른주 아샤펜베르크 출생. 1901∼1905년 드레스덴의 공업전문대학에서 건축을 배우면서 그 사이 뮌헨의 미술학교에서 H.오프리스트에게 사사하여 회화를 배웠다. 드레스덴에서는 E.헤켈과 사귀었고, K.S.로틀루프와 F.브라이엘 등과 함께 그룹 ‘브뤼케(Die Brcke:다리)’를창설, 화려한 표현주의운동을 전개하였다.
독일 중세의 목판화나 동양의 풍속화에서 받은 영향이 선과 넓은 평면을 쓰는 화면에 잘 나타나 있으나, 특히 판화에서 두드러졌다. 표현주의회화로서의 본질적인 영향은 E.뭉크에게 받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원주민의 원시미술에서 단순하고 강렬한 조형과 상징적인 표출력을 받아들였다. 브뤼케 그룹은 1911년 베를린으로 옮겼으나, 그 뒤 잡지 《폭풍우 Der Sturm》 및 청기사(Der blaue Reiter) 운동에 참가하면서 표현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거리의 5인의 여인》(1913, 쾰른 발라프 ·리하르트미술관 소장)과 《베를린의 거리》(1913,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그리고 《누드와 남자의 머리》(1908) 등이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1917년 이후는 스위스의 다보스 교외에서 요양생활을 하다가, 1937년 나치스로부터 퇴폐 예술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품을 몰수당하고 탄압받자 절망에 빠져 1938년 자살하였다.
*프랑케 [ Francke, Meister , ?~? ]독일의 화가
주요작품 : 《바르바라 제단화》(1410) 《토마스 제단화》(1424)
니더라인 지방 출생. 도미니크수도회의 수도사로서 베르트람 폰 민덴과 나란히 당시의 북독일을 대표하는 중심적 마이스터[畵匠]의 한 사람이나 그 내력은 상세히 전하지 않는다. 함부르크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활약하였으며 함부르크에 정주하기 이전인 1405년 무렵, 프랑스에 체재하여 미니아튀르회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화풍상의 특징은 베르트람보다 콘라트 폰 조스트 쪽에 가까우며, 그와 함께 ‘유연한 양식(樣式)’의 대표자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바르바라 제단화》(1410, 헬싱키국립박물관) 《토마스 제단화》(1424, 함부르크미술관)가 있다
*프리드리히 [ Friedrich, Caspar David , 1774.9.5~1840.5.7 ] 독일의 화가.
주요저서 : 《고백록 C.D.F.Bekenntnisse》(1924)
주요작품 : 《산중의 십자가》《북극의 난파선》
그라이프스발트 출생. 드레스덴에서 죽었다. 처음 코펜하겐에서 배웠으나, 1798년 이래 드레스덴에서 활약하고, 1816년 그곳의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장 순수하게 독일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풍경적인 제재(題材)에 시종하여, 특히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정적감(靜寂感) 속에 표현하였다. 작풍은 드레스덴 이외로는 거의 전파되지 않아서 독일화단에서도 잊혀졌으나, 20세기 초 이래 재평가되어 오늘날에는 19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꼽힌다. 작품은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의 미술관에 많은데, 거의가 초기 ·중기의 것으로 만년의 작품은 오히려 러시아 각지에 산재되어 있다. 《산중의 십자가》《북극의 난파선》 등의 작품이 전하며 그의 글도 《고백록 C.D.F.Bekenntnisse》(1924)으로서 출판되었다.
*피셔 [ Vischer, Peter , 1460~1529.1.7 ] 독일의 조각가·금공가(金工家).
주요작품 : 《엘른스트 대주교의 묘비》(1495)
1450∼1550년의 거의 1세기 동안을 독일 조각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피셔 일족(一族)의 중심인물이다. 일족의 공방(工房)은 울름 출신의 H.피셔에 의해 1453년 뉘른베르크에 설립되었으며, 그의 아들 페터와 화가인 뒤저 등과 함께 뉘른베르크를 독일 르네상스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대표작은 마그데부르크성당의 《엘른스트 대주교의 묘비》(1495), 뉘른베르크의 성세바르도스성당의 《성 세바르도스 묘비》(1519) 등이다. 1530년 공방은 아들 한스(1489∼1550)가 계승하였으며, 대표작은 뉘른베르크 시청 안뜰에 있는 《아폴론의 분수》(1532)이다. 그 밖에 야곱·바울이 있으며, 피셔 일족 3대의 작품 가운데 독일 조각의 후기 고딕양식에서 르네상스로 발전하는 작풍이 보인다
*홀바인 [ 1465?~1524 ]독일의 화가
주요작품 : 《제바스티안 제단화》(1515∼1517), 《생명의 샘》
아우크스부르크 출생. 한스 홀바인 d.J.(Hans Holbein d.J.)의 아버지이다. 그의 그림은 긴밀한 구성, 명확한 형태, 예리한 세부묘사, 부드러운 색조가 특징이며 인물상이나 두부 데생에서 모델의 개성을 포착한 선에도 특징이 있다.
고딕에서 르네상스에의 전환기의 독일 화단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며 대표작에 《제바스티안 제단화》(1515∼1517), 그리고 《생명의 샘》 외에 많은 초상화가 있다. 제작날짜가 밝혀져 있는 것은 1493∼1519년에 그린 것에 한정되어 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9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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