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고, 나의 종교관을 비판적으로 제시 / 나니아 연대기에 나타난 종교적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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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니아 연대기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고, 나의 종교관을 비판적으로 제시 / 나니아 연대기에 나타난 종교적 질문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첫번째 레포트>
1.들어가며
2.나니아 연대기 분석과 C.S.루이스의 신앙관
1) 나니아 연대기의 세계관과 줄거리.
2) 작품에 깔려있는 기독교적 상상, 작가의 신앙관과 메세지.
3) 나의 시각에서 본 나니아 연대기와 루이스.
4) 나의 시각에서 본 기독교.
3.나오며

<두번째 레포트>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한 물음
희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
논리적인 세계에 관한 물음
나의 물음 1- 종교적 체험에 관하여
나의 물음 2- 악한 세상에 관하여

본문내용

의 고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이 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사람이지만, 이 ‘희생’의 위대한 의미에 대하여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신이건 아니건, 그리고 예수님이 진짜로 인류를 대신해 죽으셨던 아니면 그의 죽음이 그렇게 포장되었던 것이던 간에 말이다. 그 십자가의 희생 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충격과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슬란은 반역죄가 없는 무결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희생함으로 기적이 일어났다. 악의 마법이 풀리고, 선의 힘이 강하여 졌다. 악은 악을 통해서가 아닌 희생이라는 선한 행위를 통해 정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반면 주로 많은 사람들은 ‘복수’등의 또다른 악으로 악에 대응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악이 마이너스(-)고 선이 플러스(+)라고 하자.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를 0 또는 +로 돌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무한대의 +를 필요로 할 것이다. 절대 무한대의 +가 있다면 즉 절대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으로 상정할 수 있다. 따라서 신을 통한 희생만이 ‘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세계에 관한 물음
그것은 초반에 나니아를 다녀온 루시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형제들의 모습과 형제들의 질문에 답하는 커크 교수의 대답에서 잘 나타 난다. 피터와 수잔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세계에 대해 루시가 말을 하고 있다고, 루시는 꿈을 꾼 것이라고 여긴다. 커크 교수는 그러나 오히려 ‘너희는 왜 믿지 못하니?’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비논리적이라 믿지 못하겠다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루시가 미친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볼 때 루시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논쟁은 ‘논리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다. 아무리 지금이 포스트모던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는 합리와 논리를 기반으로 한 교육을 받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지식은 일종의 ‘미신’의 영역으로 밀려 나 버린다. 그러나 이 ‘논리’라는 것의 한계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비적’인 속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가끔 망망대해에 작은 조각배에 의지하여 홀로 표류하게 된 사람을 생각해 본다.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의지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논리와 이성일까? 아무리 논리적 지식이 많고 이성의 기능이 뛰어난 사람일 지라도, 자신을 시시때때로 덮쳐 오는 파도와 거대한 상어들의 위협, 추위...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분명 자신을 초월한 어떤 신적인 존재의 도움을 간구하게 된다는 것이 인간의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즉 인간에게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물음 1- 종교적 체험에 관하여
나는 ‘보이는 세계’만 인정하는 합리주의자다. 그러나 단지 인정한다는 것이지 ‘보이는 것’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가능성은 늘 열어 두는 것이 진정한 합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세계를 보고 자신들이 본 세계가 진리의 세계라고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얘기 한다는 것이다.
루시의 이야기를 믿지 않은 나머지 3형제는 옳았다. 자신이 체험하기 이전에 남의 경험에 대해서 100퍼센트의 확신을 갖을 수 없으며, 갖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경험한 세계를 무시하거나 100퍼센트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루시와 나머지 형제들은 옷장너머의 세계를 ‘체험’하면서, 나니아를 ‘알게’ 되었다. 많은 종교인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이러한 ‘체험’만이 종교적 세계로 들어가는 진정한 첫 단계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라는 소설 자체는 마치 컴퓨터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게임 속 나라 이야기 같았다. 4명의 케릭터들. 각자의 특성에 맞는 아이템들. 그리고 적절히 아이템을 잘 사용하여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왕이 되는 이야기. 이러한 사이버 세계도 하나의 새로운 체험으로 등장 하고 있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세상...여기서 나의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종교적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즉 종교적 ‘체험’을 위해서는 게임의 세상 속에 들어가기 위해 컴퓨터를 키고 로그인을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어떤 조건이 선행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루시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들어간 옷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처럼 아주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일까?
나의 물음 2- 악한 세상에 관하여
악한 소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한번 바라보게 된다. 나니아의 왕이 되었던 네 형제가 다시 돌아온 세상은 아직 ‘전쟁터’였던 것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러한 듯 하다. 세상은 악이 악을 부르는 복수극 속 전쟁터인 것 만 같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광우병이나 AI도 혹시 소와 닭들의 한이 이러한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이에 인간은 더욱 철저하고 잔인하게 그들을 학살하고 있으니...뿐만 아니라 어디를 보아도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수하는 세상인 듯 하다.
이러한 세상, 소위 악한 ‘제이디스식 세상’에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힘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니아의 세계에 따르자면, 그것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숭고한 ‘희생’에 있고, 그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선의 순환 고리가 악의 순환 고리보다 강한 세상이 올 것이다. 여기서 나의 또 다른 물음은 다음과 같다.
그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나니아의 세계처럼 ‘신적인 존재’가 그러한 희생을 담당한다면 세상은 악을 이기고 선해 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인간이자 동시에 신이신 예수님이 그러한 희생을 담당하셨다면 왜 악의 고리는 아직도 끊어 지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 보며 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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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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