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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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유혹해 보란 듯이 하나님 면전에서 한 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녀가 보았다고 고백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란 무엇일까?
그녀는 한순간도 눈에 보이는 세계를 떠나본 것 같지 않다. 그녀는 끝내 참된 용서를 하지 못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의 딸이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것조차 참을 수 없어 미장원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수애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처 할 수 없었던 용서!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지기 전에는 섣불리 할 수 없었던 용서를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것은 그녀의 허영에 불과했다. 그 영적인 허영이 그녀에게 또 다른 파탄을 불러왔다.
종찬의 말대로 그냥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고 꾸준히 신앙생활을 통해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어느 날 진정으로 범인을 용서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수애의 허영과 함께 이 영화를 비극으로 몰고 간 것은 웅변학원 원장의 탐욕이다.
그는 돈이 탐나 자신의 학원을 다니던 어린아이를 유괴해 죽여버렸다.
물질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어 인면수심의 죄를 지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탐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애를 재차 비극으로 몰아넣은 것은 범인의 두 번째 탐욕이다. 바로 영적인 탐욕이다.
수애는 범인의 자기구원과 용서의 선포 앞에서 기절했다.
도대체 사람을 죽여 놓고 저렇게도 평안하게 뻔뻔하게 자기구원을 말해도 되는 것인가?
피해자는 피를 쥐어짜는 통곡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정작 가해자인 범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노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수애가 차를 운전하다가 잠시 딴 생각에 잠겨 있다가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칠 뻔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부부인 듯이 보이는 두 남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수애에 이렇게 따진다.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나는 이 대사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키가 된다고 본다.
그렇다. 사람을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다가 아니다. 죽인 죄에 대해서는 설사 용서를 받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죽임을 당한 피해자에 대해서 어떻게 면죄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최소한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는 영원한 참회의 자리에 남아야 하는 것이
진정 용서받은 자의 모습이 아닐까?

영화 속 범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 받은 수애 앞에서 참회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너무도 떳떳하게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고 구원받았음을 선언한다.
수애는 그의 모습에서 최소한의 죄의식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를 빌미로 내어버리고
사랑과 평안 운운하는 뻔뻔함을 보았던 것이다. 그 뻔뻔함 앞에 수애는 치를 떨었고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범인의 이 모습 속에 이른바 값싼 은혜를 탐하는 또 다른 탐욕이 감추어져 있다.
자신의 죄에 대해 뼈를 깎으며 참회하고 최소한 피해자 앞에서는 영원한 죄인으로 남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서둘러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선언하고 그 대가로 참회의
눈물대신 마음의 평안을 구가하는 것은 분명 신의 은총을 이용하는 것이다.

죄인 스스로가 신에게 죄사함 받았음을 선포하는 것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수애의 말이 그 점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셨다는 데 내가 용서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영화 밀양은 이 대목에서 중요한 신앙적 질문을 던진다.
죄인이 죄를 용서받음으로 죄의 형벌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신은 죄를 지은 가해자인 죄인의 구원에만 관심하는가?

죄인이 지은 죄를 용서받아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신의 은총이라면 그 죄의 피해자,
즉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영혼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범인은 감옥에서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살인죄를 용서받고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 시간 아무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가르치던 선생님
손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아이의 영혼은 어디서 어떻게 구원받으며,
어린 자식을 잃고 피를 토해내는 고통에 빠져 있는 수애의 영혼은 어디서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는가?
죄인은 값싼 은혜 덕에 최소한의 죄책마저도 안고 살지 않는 동안 그 죄인의 손에 죽어가거나
피해를 입은 가련한 영혼들의 구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영화 밀양이 기독교에 대해 던지는 중요한 신앙적 물음이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죄인의 영혼구원을 위한 사죄의 은총, 신의 사랑과 용서, 분명히 죄인에게 복음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영혼은 어디 갔는가? 그 영혼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피해자는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나?
피해자의 구원 없이 가해자의 구원만을 노래하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인가?

참된 사죄란 신의 은총으로 그저 자신의 죄만 용서를 받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피해자 앞에서는 영원히 죄인의 자리에 머물러 참회하며
피해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구원 없는 가해자만의 구원이 과연 신의 은총이랄 수 있을까?

Andrew Sung Park이라는 젊은 신학자는 그의 책 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통해 보건데, 교회는 인간의 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사실, 인간의 죄로 인한 희생자에 대해 간과해왔다>
죄와 죄인의 구원을 노래하는 복음의 그늘진 곳에 그 죄의 결과로 희생당한 피해자의 영혼은
통곡하고 있다. 고통에서조차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영화 속 수애처럼.

영화 밀양은 피해자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 않는 가해자 죄인을 구원하는 값싼 속죄의 은총이 아니라 죄의 희생자의 영혼까지도 구원하는 신의 은총의 햇살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용서, 속죄처럼 허영 가운데 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한 세계 속에 감추어진 신의 은총의 햇살, Secret Sunshine(밀양)속에 있는 것이다.

키워드

영화,   감상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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