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스트라스부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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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빈과 스트라스부르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호텔에서 조반이라며 챙겨준 샌드위치와 포도 몇 송이를 들고 동도 트기 전인 새벽 5시에 파리역으로 갔다. 바젤로 가는 떼제베(TGV)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리를 떠난 초고속열차는 우리 일행을 스트라스부르그에 짐짝 내려놓듯 하고 순식간에 떠났다. 긴 나선형 우주선처럼 생긴 역사(驛舍)가 무척 신기했다. 마치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온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프랑스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스트라스부르그를 훑어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보다 잿빛 색깔의 고풍스런 가옥들이 도시의 무게를 한껏 대변하고 있었다. 거기다 도로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과 수로의 한적한 물줄기는 ‘작은 프랑스’라는 애칭답게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칼빈은 1538년 시의회가 사흘의 말미를 주며 제네바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자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학자로서 살기 위해 바젤로 갈 것을 결심한다. 바젤은 〈기독교강요〉 초판본을 쓸 때 조용히 은둔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난민을 위해 스트라스부르그에 와 달라는 마틴 부처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해 9월 갑작스럽게 이곳에 정착했다.

칼빈의 흔적을 더듬으며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노트르담대성당으로 향했다. 1176년 짓기 시작하여 19세기에 완성했다 하니 무려 700년에 걸쳐 작업을 한 셈이다. 대성당의 남쪽 회랑에 시간뿐 만 아니라 행성의 위치까지 알려주는 귀중한 천문 시계가 걸려 있었다. 매 시간마다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황금상이 튀어나와 종을 쳤으며, 특히 베드로가 시간을 알릴 때는 수탉이 나와 울었다고 한다. 성당 좌우 날개는 로마네스크, 예배당 회중석과 서쪽 문은 고딕양식이다. 게다가 시대에 걸쳐 다양하게 새긴 스테인드글라스가 일품이다. 돈이 없어 제대로 보수공사를 하지 못하다가 최근 그나마 제 모습을 찾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빈이 위그노 난민에게 성경을 가르쳤던 부클리에교회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틴 부처가 사역했던 성 토마스교회로 천천히 걸어갔다. 1531년 성 토마스성당은 개신교회로 바뀌고 마틴 부처가 부임했다. 공사 중이라서 그런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관계자의 허락을 받아 쪽문을 통해 겨우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개신교회에 맞게 성상과 제단은 철거되어 있었다. 강대상 맞은편 뒷쪽에 자리하고 있는 파이프오르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추앙받는 슈바이처 박사와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기록과 함께 그림 입상이 우리를 반겼다. 짤즈부르그도 아닌 스트라스부르그에서, 그것도 교회에서 이렇게 슈바이처와 모차르트를 만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에 한동안 부처의 집에서 머물렀다. 칼빈 뿐이 아니었다. 많은 피난민과 여행객의 숙소는 ‘당연히’ 부처의 집이었다. 부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며, 개신교 신앙에 바탕을 둔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스트라스부르그대학을 설립했다. 아마도 칼빈은 부처와 교육가 쟈크 등을 만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제네바대학교 설립도 부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지 생각된다.

-스트라스부르그 노트르담대성당 정문의 조각상

칼빈이 목회했던 위그노교회는 부클리에 4가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칼빈은 이곳에서 비록 적은 회중이었지만 즐겁고 기쁘게 사역했다. 예배 모범을 검토하고, 시편 찬송가를 출간하여 피난민과 함께 불렀다. 제네바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실천했다. 성도의 가정도 심방하고, 김나지움에서 성경강해를 가르치기도 했다. <성찬에 관한 소논문〉도 이곳에서 썼다. 파렐의 주례로 이들레트 판 뷔렌과 결혼도 이곳에서 했다.

스트라스부르그의 생활은 단꿈이었다. 제네바처럼 성례를 방해하는 자도 없었으며, 폭도들의 싸움이나 창문 아래서 터지는 총소리도 없었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로웠다.

본문내용

이 사역했다는 동판만 읽고 허전함을 달랬다. 그리고 어김없이 묵상을 한 뒤 일행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스트라스부르그가 배경인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에서 “국어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면 감옥의 열쇠를 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굳건히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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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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