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_ 존 칼빈(John Calvin)과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지도력 비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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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_ 존 칼빈(John Calvin)과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지도력 비교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2) 경제적 성화의 지도력

2. 차이점
1) 신정정치 실현의 지도자 칼빈
2) 성화수련(sanctification exercise)의 조직가 웨슬리

본문내용

회원들은 ‘만나기를 멈춘 자들’(ceased to meet)이라 하여 회원 목록에서 제명해 버렸다. 세 번 이상 무단결석한 회원들을 제명하였다. 1741년 브리스톨에서 모인 모임에서 40명의 이름이 제명되었다. 며칠 후에 킹스우드에도 똑같이 일어났다. 1747년 게이트헤드(Gatehead)를 방문하여 회원들을 심사하였을 때 800명에서 400명을 교인들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철저한 영성훈련으로 절반정도로 회원들이 줄어들었으나 다시 그다음 해에는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1751년 화이트해븐(Whiteheaven)에서는 근신해야 할 회원을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약 240명의 속도들이 한 번도 결석하는 일이 없었음을 발견했다. 다만 한 회원이 단 한 번 결석했을 뿐이다. 이러한 심사의 기준, 영적 분별의 방법은 간단했다. 웨슬리는 속장들에게 각 회원의 영적 상태를 물을 때 속회와 신도회의 출석 여부, 그리고 술 취한 적이 없는지, 가정의 불화가 없었는지, 구원을 열망하는 지 등 지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분별했다. 그러나 격식에 매임 없이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속회의 성격은 새 회원들을 돌보는데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었다. 웨슬리의 여생 동안 수많은 새 신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속장은 항상 일주일에 한 번씩 속도들을 방문하여 권면하고 위로하며 충고할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헌금을 받기도 했다. 또한 속장은 주 1회 재정관리 집사를 만나서 지난 주 속회 모금액을 전해 주고, 속도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나 조사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충고하고, 견책하고 위로하고, 권고한다. 그리고 주 1회 신도회의 목사를 만나서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는 속도들이나 병든 속도들이나 신앙생활이 흐트러진 속도들에게 작은 목사의 역할을 한 셈이다. 속장은 깨끗하고 건강한 종교 경험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되었음을 성령으로 확증해야 하며, 끊임없이 죄를 정복해야 하고, 은혜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했다. 속장은 항상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능통해야 했고, 교리적 진리에 대한 바른 식견을 갖고 있어야 했고, 도덕적종교적 의무를 바로 알아야 했다. 또한 각 속도의 특성과 개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고, 그들의 특수한 경험을 이해해야 하며, 속도로 하여금 속회 발전을 위해 열심을 다하도록 권고하며, 속도로 하여금 영적 생활의 진보를 이루도록 권면을 해야 했다. 속회는 속장의 인도에 따라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하고, 속장이 지난 일주일 동안의 자신의 영적 생활 경험에 대해 고백하는 간증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속장이 일주일의 영적 생활을 묻는 질문이 다섯 가지였는데, 일주일 동안 무슨 죄를 지었는가, 무슨 유혹을 받았는가, 어떻게 물리쳤는가 등으로, 이 질문에 따라 각 속도들이 돌아가면서 영적 자아비판의 간증을 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속장이 충고하고, 권면을 하고, 훈계하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다함께 간절히 기도하고 구속의 은혜를 위해 통회 자복한 후, 속장이 각 속도들을 위해 목회기도를 한 후 마쳤다.
웨슬리의 초기 감리교회운동은 바로 이 밴드와 속회를 통한 조직이고도 철저한 성화수련을 통하여 공동의 영적 책임의식을 통한 공동의 성화추구를 이루어 놀라운 영적 진보를 감리교도들이 나타냄으로써 영국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었고, 나아가 노동운동도 광부속회(class), 농민속회, 노동자속회로 발전함으로써 조직적인 대 사회변혁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속회처럼 12명을 단위로 1명의 지도자가 이끌었다. 웨슬리는 이 노동속회를 통하여 사회봉사(social service)만 아니라 사회구조변혁(social tarnsformation)을 일으켰다. 인류 최초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하였고,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도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인류최초로 형성된 노동운동이 감리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1831년 산업노동자중심으로 ‘전국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Working Classes)이 런던을 본부로 결성되어 처음에는 산업노조(trade union)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정치노조(political union)로 발전하였다. 1831년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 연합 산업노동조합”(The Grand Consolidated Trade Union of Great Britain & Ireland)이 결성되었다. 런던의 광부노동운동의 대표 12명 중 9명이 감리교 설교가들이었다. 감리교도들은 감리교의 깃발을 포기함 없이 노동조합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농부노동조합도 감리교 설교가들과 지도자들인 제임스 러브리스(James Loveless), 조지 러브리스(George Loveless), 조지 로메인(George Romaine)등이 농부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였다. 농부노조도 역시 감리교처럼 가입비 1실링과 매주 회비 1페니씩 냈다. 이런 격동과 전환의 시대에 감리교가 적극적으로 광부, 노동자, 농민의 사회 속에 참여함으로써 처음에는 박해를 받아 신도들이 줄어들기도 하였으나 1800년 교인수보다 1850년 교인수가 6배로 증가하였다. 감리교 예배당은 광부, 노동자, 농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조직화의 기술, 협동행동의 중요성, 친교의 기쁨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가 엘리 할레비(Elie Halevy)나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등이 감리교회운동은 프랑스 혁명 같은 위기에서 영국사회를 구원하는 운동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맑스도 그의 주저 [자본론]을 3년 간 영국에서 쓰면서 감리교회의 속회와 감리교회의 노동운동에서 세포조직과 자아비판을 배워서 공산당운동에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공산권 선교에 웨슬리적인 영적 책임의식에 근거한 영적 자아비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웨슬리의 조직적 성화수련은 오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배워서 철저한 공동의 책임의식(accountability)을 통한 소규모지도자 훈련과 교육을 이루어 성화수련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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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8
  • 저작시기201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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