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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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와 설교자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 장 설교의 우월성
제 2 장 대체할 수 없는 말씀 증거
제 3 장 설교 내용과 전달행위
제 4 장 설교의 형식
제 5 장 설교행위

본문내용

다. 어떤 추측이나 생각을 실험삼아 말하는 것이 되어도 안 된다. 그것은 정말로 설교자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확실한 일을 선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사명을 띠고 권위로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보냄을 받은 사자로서 회중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자기 확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설교자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이다. 셋째, 자연스러움의 요소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 점에 대해 매우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설교내용이 앞에서 말한 방식대로 주의 깊게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설교자는 반드시 설교를 수행할 때 설교를 전하는 데 있어서 자유스러워야 한다. 자기가 준비한 것에 너무 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 점은 죽고 사는 문제처럼 중대한 문제이다. 이 점은 설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진수가 되는 정곡이다. 나는 그저 설교단에 원고를 가지고 올라가는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원고를 가지고 있지 않고도 얽매일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설교자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유로움은 순간적인 영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이다. 설교하는 일이란 성령의 감화와 능력을 뒷받침한 행위이고 설교준비란 것이 설교내용의 준비를 끝마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주목할 만한 일들 중의 하나는 설교자가 한 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설교준비를 할 때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실제로 설교를 하는 동안에 얻은 말이라는 것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넷째, 설교자가 말하는 동안 어느 의미에서는 회중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끌어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중가운데는 영적인 사람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 기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설교에는 상호교환의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점은 수필과 강좌가 설교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길이다. 자기의 수필을 낭독하는 사람은 자기의 청중들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 사람 앞에 있는 것은 쓰여진 것이 전부이다. 거기에는 새롭거나 창조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주고받는 일도 없다. 그러나 설교자가 - 비록 아주 조심스럽게 준비를 하였다 할지라도 - 이 영적 자유의 요소 때문에 아직 회중으로부터 어떤 것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다. 상호작용과 행동, 반응이 있게 되고, 종종 이것은 아주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자유로움의 요소는 아주 중요하다. 설교는 언제나 성령 - 그의 능력과 지배 - 아래에서 행해져야 한다. 또한 설교자는 무엇이 일어날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자유로우시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설교를 준비할 때 도우셨던 성령께서 설교를 행하는 동안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도우시며 셜교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열어 보여 주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다섯째, “진지함”의 요소이다. 설교자는 반드시 진지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결코 설교한다는 것이 가볍거나 피상적인 또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란 항상 그가 강단에 나타나는 순간에도 거기서 행하는 일에 대한 심각함의 인상을 창조하고 풍겨야 한다. 설교자는 반듯이 생기에 넘쳐 있어야 한다. 박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진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결코 흐리멍텅하거나 지루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열심, 열정감이다. 열심이라 말할 때 그 의미는 설교자는 반드시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자기 스스로 붙잡힘을 당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그것에 붙잡히지 못하였으면 아무도 그 진리에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점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설교자는 반드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붙잡힘을 당하고 끌려있다는 사실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는 그 문제로 충만해져서 그것을 나눠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 그것으로 너무 감동되고 감격한 나머지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갖기를 갈망해야 한다. 설교자는 회중들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돕는 것을 간절히 소원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힘과 열심과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진리에서 이탈된 것처럼 보이면서 그 자체로는 아주 훌륭하며 진실하고 탁월할지도 모를 몇몇 일을 말하는 것만으로 족하는 설교자는 결단코 설교자가 아니다. 설교자는 결코 냉담해서는 안 된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이 거의 옳고 정말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상적이지 않고 살아있지 못하며 차갑고 감동이 없는 것은 자기 스스로 감동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만일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것으로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뜨거움을 유발한다. 사도 바울은 “눈물로써”말씀을 전파했노라고 말합니다. 끝으로 로이드 존스는 말씀의 능력에 대해 언급한다. 능력이 없으면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 결국 참된 설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설교는 사람이 지껄여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 그는 성령의 세력 아래 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하였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5에도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되어 있다. 참된 설교에는 바로 그 진수가 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을 압축한다면 참된 설교는 이 두 요소, 즉 설교내용과 설교를 전하는 행위가 많은 비율로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이 행위는 설교내용에 첨가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른 설교이다. 두 가지 다 강조되어야 한다. 설교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존전에 있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다.
손웰 자신이 설교에 대해 무어라고 말했는지 설교자인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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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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