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사학자) 저, 김원중 역 민음사 1권만 전체요약 15p이상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사마천(사학자) 저, 김원중 역 민음사 1권만 전체요약 15p이상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 백이(伯夷) 열전
제 2 관중, 안영 열전
.
.

본문내용

였다.
<죽기 직전 몽염은 슬피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가 있기에 허물없이 죽는단 말인가?"
한참 후에 천천히 말했다.
"나의 죄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일으켜 요동까지 이어지는 장성(長城)이 일만여리가 되었으니, 그 가운데는 지맥(地脈)을 끊은 것이 없을 수 없겠다. 이것이 바로 나의 죄다."하고, 사약을 먹고 죽었다.>
이 말에 대해 사마천은 아래와 같이 준엄하게 비판한다.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내가 몽염이 쌓은 장성을 보았다. 산을 끊고 골짜기를 메꾸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노고(勞苦)시키면서 그것을 가볍게 여겼다.
진나라가 통일을 이룬 후 천하의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며, 전쟁의 상처가 낫지 않았다. 그런데 몽염은 명장(名將)이었는 데도 강력하게 간하여 백성의 위급을 구제하지 않고 시황의 뜻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가 사형당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무슨 지맥(地脈)을 끊은 것에 죄를 돌리려 하는가?>
위의 내용이 사기 열전 중에 진나라의 통일까지를 다룬 것이다. 이 후에는 통일된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에 기여한 인물들의 열전이 나온다. 남의 다리 사이로 몸을 굽혀 지나간,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장군 한신(제 32 회음후 열전), 계포일락(季布一諾; 그 당시 사람들은 계포 장군의 한 마디 승낙을 천금(千金)보다 더 귀중히 여겼다.)의 숙어를 남긴 초나라 장군 계포(제 40 계포, 난포 열전) 등 수 많은 사람들의 열전이 있다.
그 다음에는 통일된 한(漢)나라를 안정시킨 정책을 편 사람들의 열전이 나온다. 그 중 만석(萬石)군(제 43)이 우리에게 조금 알려져 있다. 이 시대의 영리하며,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들 속에서 근실하며, 실수하지 않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아들 네 명도 모두 근실함으로 장관급에 올랐다. 장관급의 연봉(年俸)이 쌀 2,000 석이었으므로 다섯 사람의 장관급을 배출하였다고 하여 만석군이라고 불린다. 이 때에 의사로 유명한 편작 열전(제 44)가 함께 있다.
일단 한나라가 안정된 다음 북쪽의 흉노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장군(순박한 성품으로 유명하다.)의 열전 제 49, 위장군 열전 제 51, 그리고 흉노 열전 제 50 등이 있다. 이 흉노족은 결국 한나라에 의해 서쪽으로 쫓겨가서 유럽을 흔들었으므로 세계사적인 가치를 가진다. 유럽의 중부를 거의 다 점령할 만큼 무력이 강한 종족이어서 한나라로서도 어려운 상대였으나 결국은 점령당한다.
흉노를 무찌른 힘으로 동월(제 54), 남월(제 53) 그리고 서남이(제 56)을 힘도 안들이고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장군들이 군사적인 공으로 제후(諸侯)가 된다.
마지막 과정으로 우리 고조선을 침략한다(제 55 조선 열전). 결국 우리가 지기는 하였으나 이 전쟁에 참여한 한 나라의 장군은 모두 사형당하거나 평민으로 된 것으로 보아 한나라로서는 유래없는 힘든 전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 참여하여 실패한 한나라의 장수들은 위의 여러나라와의 전쟁에서는 모두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사마천의 평을 적는다.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고조선의 왕] 우거는 험고한 것을 자부(自負)하여, 나라의 제사가 끊어지게 하였다. 섭하는 공을 속여 전쟁을 발생시킨 최초의 장본인이다. 누선장군은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난(難)에 미쳐서 허물에 걸렸다. 실패를 후회하다가 도리어 의심을 받았다. 순채는 공로를 다투다가 수와 함께 다 베임을 당하였다. 두 장군의 군대는 모두 곤욕을 당하였다."
여기 언급된 사람은 모두 한나라의 장군들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신하들은 다음과 같이 한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얻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항복한 사람이 이렇게 대량으로 후(候)가 된 적도 또한 없었다.
"참(參)을 봉하여 획청후로 하고, 음을 적저후로, 협을 평주후로, 장을 기후로 하고, 최는 아버지가 죽기 전에 공이 있었다고 하여 온양후로 하였다."
그 다음에는 착한 관리의 열전(제 59), 악한 관리의 열전(제 61)이 있다. 유협(遊俠) 즉 협객(俠客)의 열전(제 64)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분이며, 아첨으로 발탁된 신하의 열전(제 65)이 있고, 현재의 개념과는 다르나 웃음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출세한 사람의 열전(제 66 골계(滑稽)열전)이 있다.
제 49 화식(貨殖) 열전에는 부자와 여러 지방의 특산물에 대한 것을 모았다. 사마천의 말을 몇 가지 옮겨보자.
"암혈(巖穴)에 은둔(隱遁)하는 기이한 선비의 행실도 없이, 오래 가난하면서 인의(仁義)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다."
"무릇 보통 백성은, 상대방의 부가 나의 10 배가 되면 이에 몸을 낮추고, 백 배가 되면 이를 두려워하며, 천 배가 되면 부림을 받고, 만 배가 되면 노예가 된다. 이는 사물의 이치다."
"무릇 가난한 데서 부를 구하는 것은 농업이 공업만 같지 못하고, 공업이 상업만 같지 못하다."
"대저 아끼는 것과 근면은 생업을 다스리는 정도(正道)다. 그러나 부유해진 자는 반드시 기인한 방법을 사용한다. 농사짓는 것은 그다지 큰 기업이 아니나 진양이라는 사람은 이것으로 한 주(州)를 덮었다. 무덤을 파고 보물을 훔치는 것은 간악(奸惡)한 일이다. 그러나 전숙은 이것으로 일어났다. 도박은 나쁜 직업이다. 그러나 환발은 이것으로 부유해졌다. 행상(行商)은 남자로는 좋은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옹락성은 이것으로 넉넉하여졌다. 기름을 파는 것은 작은 직업이다. 그러나 옹백은 천금을 모았다. 간장을 파는 것도 큰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장자는 천만을 벌었다. 칼가는 것은 변변치 않은 기술이다. 그러나 질씨는 이 기술로 진수성찬을 벌여놓고 먹었다. 양의 위를 말려서 파는 것은 간단하고 미세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탁씨는 이 일로 기병(騎兵)을 늘어세우고 출입하였다. 마의(馬醫)는 천박한 의술이다. 그러나 장리는 종을 쳐서 하인을 부를 지경이었다. 이것은 모두 한 가지에 정성을 들인 소치이다.
이것을 본다면, 부유하여지는 것이 일정한 직업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재물도 일정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유능한 자에게는 몰려들고, 무능한 자에게는 무너져버린다."
  • 가격5,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437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